고전산문/형암 이덕무

천하에서 가장 민망스러운 것

優拙堂 2017. 12. 20. 13:13

자기의 기호에 따라 경전(經傳, 경전(經典)과 그것의 해석서(解釋書). 성경현전(聖經賢傳)의 준말)과 성현(聖賢,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함부로 끌어대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장기 바둑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논어》에 있는 ‘장기 바둑을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말을 이끌어대고, 해학을 잘 하는 자는 반드시 《시경》에 있는 ‘해학을 잘하도다.’라는 말을 끌어대고, 여색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대학》에 있는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하라.’는 말을 끌어대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공자는 술을 마시되 양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끌어대고, 재리(財利)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자공(子貢)의 화식(貨殖, 공자의제자인 자공이 재력가로 재물을 증식하는 일에 능했음을 이르는 말)을 끌어대고, 구기(拘忌 좋지 않게 여기어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꺼림)와 화복(禍福)의 설에 미혹된 자는 반드시 소강절(邵康節)이 술수(術數)를 좋아하던 일을 끌어대어 구실(口實, 핑계거리) 삼는 따위와 같은 것이다.


무릇 이 몇 사람들은 노망(鹵莽, 행동이 거칠고 서투름)하고 부박(浮薄, 행동이나 마음씀씀이, 생각따위가 얄팍하고 경솔함)하여 경의(經義, 경전에서 뜻하는 바 바른 도리)와 사리(事理)의 정엄(精嚴, 빈틈이 없이 깨끗하고 올바름)함을 알지 못하고 걸핏하면 반드시 끌어대어 그 잘못을 문식(文飾, 글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합리화하는 것)하니, 경서를 욕하고 성인을 업신여김이 이보다 심함이 있겠는가?


소자용(蘇子容)은 남이 고사(故事)를 말한 것을 들으면 반드시 사람을 시켜서 그 출처를 조사하게 했고, 사마온공(司馬溫公)은 새로운 일을 들으면 즉시 기록하고 또 말한 사람의 성명을 적었다.


아무런 지식도 없으면서 남의 시문(詩文)ㆍ서화(書畫)를 곧잘 품평하고 또는 의약(醫藥, 의술과 약품)ㆍ복서(卜筮, 길흉화복을 점치고 예언하는 일, 즉 점술)의 일에 손대는 것은 참으로 망령된 사람이다. 더구나 인재(人才)의 고하(高下)와 세도(世道)의 오르내림을 과감히 논함에랴?


천하에서 가장 민망스러운 것은, 한 가지 일도 모르면서 큰소리 치는 일이니, 집안에 이런 자제가 있거든 절실히 꾸짖어 금지시켜야 한다. 방희직(方希直)은 말하기를, “붓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처지에 벌써 안진경(顔眞卿)과 유공권(柳公權)은 진인(晉人)의 필법(筆法)을 모른다고 배척하고, 말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처지에 벌써 소자첨(蘇子瞻, 소동파 ,소식)을 아식(阿軾, 소동파를 얕잡아 일컫는 말)이라 부르며 그의 글을 헐뜯으려 하며, 공(孔)ㆍ맹(孟)의 글을 열흘도 제대로 읽지 않은 입장에서 벌써 정(程)ㆍ주(朱)가 경서(經書)를 풀이한 말의 오류를 지적하여 어지럽게 변박(辨駁)한다.” 하였다. 아! 지금의 학생이 이 말을 읽는다면 낯이 붉어지지 않겠는가?


고영인(顧寧人)은, “오늘날 인정(人情)에는 세 가지 상반되는 점이 있으니, 곧 너무 겸손하면 너무 거짓되어지고, 너무 친절하면 너무 범연해지고, 너무 사치하면 너무 인색해진다.” 하였는데, 나는 거기에 이어서 말했다. “너무 글을 읽으면 너무 노둔해지고, 너무 재물을 쓰면 너무 곤궁해지고 너무 약을 먹으면 너무 허약해진다.”


진제(陳第)는, “마음에서 구하지 않고 관상에서 구하며, 행실에서 점치지 않고 운명에서 점치며, 덕을 쌓으려 하지 않으면서 장지(葬地, 묘, 무덤자리)를 고르려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다. 의심하면 미혹되고 미혹되면 혼미하므로 화복(禍福)의 설이 비로소 맞아 들어간다. 화복을 말하는 자가 분분하니, 세상이 그로 해서 어지럽게 된다.” 하였으니, 아! 세상에서 술수(術數)에 빠진 자는 어찌 이 글을 한 장 써서 자리 위에 붙이지 않으랴?


담명(談命, 사주팔자로 사람의 운명을 해석하는 일)ㆍ석자(析字, 이름을 분석하고 글자로 길흉을 점치는 일)ㆍ관상(觀相, 사람의 얼굴로 길흉화복을 따지는 일)ㆍ감여(堪輿, 풍수지리술)를 하는 부류는 본디 마음이 삐딱하여 좋지 못한 사람들이다. 백성을 우롱하고 요망한 말로 마구 속이니 사군자(士君子)는 물리쳐 멀리해야 한다. 어찌 그의 술법에 빠질 수 있으며 따라서 그 말을 믿겠는가? 정가구(程可久)는 이렇게 말했다.


“역(易)이란 도의(道義,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과 바른 도리)를 화복(禍福)에 배합한 것이다. 그런 때문에 성인(聖人)의 글이 되는 것인데, 음양가(陰陽家, 천문, 역수(曆數), 풍수지리 등으로 일월(日月)의 행사(行事)를 정하거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사람)는 단순히 화복만을 말하고 도의로 배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술법이 이와 같아 아무렇게나 속여서 새만 잡으면 길(吉)하다* 하고 정도(正道)를 얻어서 죽으면 흉(凶)하다 한다. 그런 까닭에 왕중엄(王仲淹)은 ‘경방(京房)과 곽박(郭璞)은 옛날 상도(常道)를 어지럽힌 사람이다.’ 하였다.”


유속(流俗, 세상에 널리 퍼져 유행하는 풍속)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약간 글을 배운 자도 잡술인(雜術人)에게 어느 날 과거에 오르고, 어느 날 벼슬을 얻고, 어느 날 재물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가를 반드시 묻는다. 그래서 그가 아첨하는 뜻에서 길하고 좋다 하면 반드시 으시대고 그가 만일 겁을 주면 기가 꺾이니, 아! 그가 아무리 글을 배웠다 하더라도 실지 글을 모르는 사람이다.


※[역자 주]

1. 새만 잡으면 길(吉)하다 : 진(晉) 나라 대부(大夫) 조앙(趙鞅)이 왕량(王良)을 그의 행신(幸臣) 폐해(嬖奚)와 사냥을 하러 보냈다. 처음 사냥 갔을 때 왕량이 법도대로 말을 몰자 폐해는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돌아와 왕량은 서툰 말몰이꾼이라고 했다. 그 뒤 다시 갔을 적에 법대로 몰지 않고 쏘기 좋게 몰아줬더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나 잡아가지고 돌아와서 능한 말몰이꾼이라고 복명했다.《孟子 滕文公下》


-이덕무(李德懋, 1741~ 1793), '사물(事物)'부분 발췌,『청장관전서 제27~29권/ 사소절 5(士小節四)/사전 5』-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동주 (역) ┃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