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취하다
Posted by 優拙堂
나는 책을 좋아하고 또 술을 즐긴다. 그렇지만 거처하는 곳이 벽지이고 올해는 흉년이 들어 돈을 빌려서 술을 살 수는 없다. 바야흐로 따듯한 봄기운이 사람을 취하게 만들므로 그저 아무도 없고 어떤 집기도 없는 방안에서 술도 없이 혼자 취할 따름이다. 어떤 이가 내게 술단지속에 시여취(詩餘醉)란 책 한질을 넣어 선물 하였는데, 그 내용은 곧 화간집(花間集)과 초당시여(草堂詩餘)였고 편집한 사람은 명나라 인장(鱗長) 반수(潘叟, 반유룡 潘游龍)였다. 기이 하여라! 먹을 누룩으로 하여 빚은 술이 결코 아니고, 서책은 술통과 단지가 결코 아니거늘, 이 책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으랴? 그 종이로 장독이라도 덮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읽기를 사흘이나 계속 하였더니 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