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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짐승에게서 배운다 (雜說 三)

거미이야기 거미는 공중에 그물을 쳐서 날것들이 걸리기를 기다리는데, 몸집이 작은 모기ㆍ파리로부터 몸집이 큰 매미ㆍ제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거미줄로 잡아서 배를 채운다. 한 번은 벌이 거미줄에 걸렸다. 그런데 거미가 그 벌을 급히 거미줄로 동이다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다. 벌침에 쏘인 것이다. 어떤 아이가 벌이 거미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보고 손으로 풀어 주려고 하는데 벌이 또 침을 쏘았다. 그러자 아이는 화가 나서 벌을 발로 밟아 뭉개 버렸다. 아, 거미는 날아다니는 온갖 것을 다 거미줄로 잡는 솜씨만 믿고 벌이 침을 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였고, 벌은 침 쏘는 것만을 능사로 여겨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과 구해 주려는 사람을 막론하고 만나는 족족 예외 없이 쏘는 바람에 구해 주..

천하의 강함은 부드러움에 있다

천하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을 들어 보자면 몸에 있어서는 혀만 한 것이 없다. 음식을 먹을 때나 말을 할 때 모두 이것을 쓰니, 의당 쉽게 닳아버릴 것 같지만 죽을 때까지 닳지 않는다. 사물에 있어서는 물만 한 것이 없다. 물은 성질이 흘러가고 스며드니 의당 힘이 없을 듯하지만, 만곡(萬斛, 아주 많은 분량, 매우 큼을 뜻함)의 배를 띄우고 천 길의 절벽을 무너뜨리고도 여유롭다. 이 두 가지는 천하에서 아무리 강한 것을 가져와 대치한다 하더라도 감당해낼 수가 없다. 가령 혀가 강하다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닳는 것을 볼 수 있고, 물이 강하다고 한다면 힘에 반드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한 것은 강할 수 없고 부드러워야 강할 수 있으니, 부드러움의 덕이 지극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입술을 놀리고 입..

본 바탕이 물들어서는 안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색이다. 하늘과 땅, 사람과 만물, 자연의 색이 있고 복식(服飾)과 기용(器用)과 회화(繪畵)의 색이 있다. 그런데 숭상하는 색이 시대마다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자색(紫色)*을 싫어하는 것은 붉은 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고, 황색(黃色)*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중색(中色)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정색(正色)이 간색보다 우월하고, 중색(中色)이 오색 가운데 으뜸이라고 생각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물은 바탕이 있고 난 뒤에 색이 있으니 바탕은 색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백색은 또 색 가운데 바탕이 되는 색입니다.저는 색 중의 바탕을 먼저 말한 뒤에 다른 색을 언급하고자 하니, 그래도 되겠습니까? 백색의 속성은 깨끗하게 태소(太素)의 바탕을 가지고서 천연적으로 한 ..

밥벌레와 사람의 차이

《서경(書經)》에 이런 말이 있다. “배우지 않은 사람은 담장에 얼굴을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不學墻面〕” 이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주남(周南)〉ㆍ〈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담장에 얼굴을 바로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墻面而立也與〕” 주자(朱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담장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한 물건도 보이지 않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卽其至近之地 而一物無所見 一步不可行〕” 예로부터 배우기를 권면하고 배우지 아니함을 경계한 말이 많았지만, 이처럼 비근(卑近)한 말로 잘 빗대어 말한 경우는 없다. 그러나 너에게 말해 주어서 네가 혹시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뜻을 세울 수 있게 하려면 네 몸의 일을 가지고 비유해서 절실하게 ..

첨설(諂說):아첨에 대하여

아첨이란 남을 기쁘게 해 주어 자기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하가 임금에게 아첨하는 것은 임금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이고, 천한 자가 귀한 자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에게 도움을 받고자 해서이며,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부유함에 의지하고자 해서이다. 이는 모두 아래에서 위에 붙고,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구하는 것이다. 만일 정직하고 방정하여 이욕(利欲)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면 상정(常情)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은 이로움을 꾀하고 환난을 면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이한 것은, 남의 아첨을 좋아하며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기고, 남의 직언을 싫어하며 필시 자신을 소원하게 대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남이 높여 주는 말을 해주면 스스로 잘난 체하고, 남이 칭찬하는 모습..

관주설 (觀舟說)

나는 요즘 탁영정(濯纓亭)에 ☞우거(寓​居)하고 있는데, 탁영정은 도성 서쪽에 위치하여 긴 강을 굽어보고 있다. 강을 오르내리는 돛단배들이 아스라이 처마를 스치며 지나가는데 크고 작고 높고 낮은 모습들이 헛것인 듯, 그림인 듯 은은하다. 날마다 난간에 기대어 이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맞아 기분이 좋아진다. 배는 일개 ☞무정물(無情物)에 불과하건만 어쩌면 이리도 우리네 학문 수양과 닮았는지! 튼튼하고 질박한 모습은 인(仁)에 가깝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오가는 것은 신(信)에 가깝다. 가운데를 비워 외물(外物)을 받아들이는 것은 군자의 넓은 도량이 아니겠는가? 무거운 것을 싣고 멀리 가는 것은 죽은 뒤에야 그만두는 군자의 공부가 아니겠는가? 가까이는 물가에서 움직이고 멀리는 수평선까지 가..

마땅히 좋아해야 할 것을 좋아한다

사람의 마음에 유난히 즐기고 혹심하게 좋아하는 것을 벽(癖)이라고 한다. 벽(癖)은 병이란 의미인가? 벽(癖)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벌써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從吾所好, 원래 문장은 공자가 “부를 구해서 이룰 수 있다면, 말을 끄는 마부라도 내가 또한 하겠다. 그러나 만일 구하여 이룰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즉 내가 좋아하는 바는 의리에 따라 떳떳하게 사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하는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벽은 보통 사람의 편벽됨일 뿐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땅히 좋아해야 할 것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이 깊어질수록 아름다워지므로 벽(癖)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아해서 안 되는 것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이 깊어질수록 병이 되..

작사지법(作史之法):역사서를 짓는 방식

역사를 쓰는 법은 그 요점이 그 사실을 기록하는 데 있을 뿐이다. 사실을 기록하면 사람의 선악(善惡), 사실의 시비(是非), 세상의 치란(治亂)을 상고하여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흑백(黑白)이 뒤바뀌고 주자(朱紫)가 뒤섞여 후세 사람들이 무엇을 근거로 당시의 진면목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공자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셨으니, 그 문장은 역사이고, 그 의의는 포폄(褒貶, 옳고 그름이나 착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의 뜻을 붙여 천자의 일을 사실의 기록 속에 행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기록한 노나라 역사서가 없었다면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노나라 역사서의 사실을 따라 필삭(筆削)을 가한 데 불과한 것이지, 사실을 기록한 이외에 따로 자신의 뜻대로 헤아려 법칙을 삼은 것이 아니다...

천하 사람들의 공통된 미혹

《열자(列子)》 〈양주(楊朱)〉*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양주(楊朱)가 “백성자고(伯成子高)는 자신의 터럭 하나를 가지고도 남을 이롭게 하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터럭 하나를 뽑지 않고 천하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천하가 절로 다스려질 것이다.” 라고 하였다. 금자(禽子, 묵자(墨子)의 제자인 금활리(禽滑釐))가 “그대 몸에 있는 터럭 하나를 뽑아서 온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면 하겠는가?” 라고 묻자, 양주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맹자가 “양자(楊子)는 자신을 위하는 것만 추구할 뿐, 터럭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楊子取爲我 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라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자는 맹자의 말에 대해 “추구한다〔取〕는 것은 겨..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는 것에 대하여

천도(天道, 하늘의 도리)는 선한 자에게 복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화를 내리지만, 대체로 이와 반대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옛사람이 원망하는 말이 없지 못했던 것이니, 이는 또한 어디 원망을 돌릴 데가 없어서 한 말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포학한 상제는 그 명에 사벽함이 많도다.〔疾威上帝 其命多辟〕”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하늘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도다.〔視天夢夢〕”라고 하였다. 자사자(子思子 공자의 손자, 공급(孔伋)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제자로 공자사상의 정통을 이어받아 맹자에게 계승시킨 인물이다)는 “천지의 큼으로도 사람이 오히려 한스러워하는 바가 있다.〔天地之大 人猶有所憾〕”라고 하였다. 한창려(韓昌黎, 한유)는 “하늘은 저 높이 멀리 있고 귀신은 나를 싫어하네.〔天公高居鬼神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