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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죽어있는 말(語)

유교와 불교가 어찌 처음부터 다른 도였겠는가. 요(堯)임금은 ‘넉넉하고 부드럽게 하여 스스로 깨닫게 한다’고 하였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本性)으로 돌이켜 그것을 구하면 능히 스승으로 삼을만한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배우는 자들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고 문장(章句)의 부분만을 취하여 도리(道)를 추구하려고 하니, 어찌 대도(大道)와의 거리가 이미 까마득하지 않겠는가? 중용(中庸) 책 한 권을 읽고 중용을 지키는 성인(聖人)의 경지를 이룬다면, 어떤 사람인들 자사(子思)가 되지 못할 것이며, 대학(大學) 책 한 편을 읽고 치국평천하(治國 平天下)의 도를 얻는다면 어떤 사람인들 증삼(曾參)이 되지 못하겠는가? 성인(聖人)의 말은 간략하고, 현인( 賢人)의 말은 상세하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상세..

[고전산문] 오직 내 마음을 따를뿐

조정에서 사론(士論)들이 서로 편을 나누고 가르는 까닭에 벗을 사귀는 도리가 그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보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벗을 사귀는 도리는 오직 하나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나? 하나가 둘로 갈라진 것도 오히려 불행인데 어찌하여 넷이 되고 다섯으로 갈라져 버렸는가? 하나인 도리가 넷으로 다섯으로 갈라지고 제각각 한통속이 된 것은 모두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런즉 사람의 의리를 어찌 쉽게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편당에 휩쓸리지 않고 홀로인 사람은 어느 한편에 붙지않고 혼자라는 그것 때문에 다른 네 다섯과 적이 되고 만다. 그러하니 혼자인 사람이 어찌 외롭지 않겠는가? 하나의 세력이 성하면 다른 하나의 세력이 쇠하고, 하나를 지키고 나아가면 다른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