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귀먹을 농(聾)’ 이란 글자에 담긴 뜻
무릇 ‘농(聾, 귀먹을 농)’이란 한 글자를 사람들은 모두 병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만은 홀로 아름답게 여기니 어째서인가?
귀가 먹으면 사람들에게 비록 선악과 시비가 있더라도, 나는 들은 게 없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비록 장단과 득실이 있더라도, 들은 게 없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하지 않는다.
남의 악담과 패욕이 저절로 내 몸에 미치지 못하니, 내 몸은 이 때문에 저절로 편안해지고, 마음도 이 때문에 저절로 바르게 된다. 그래서 거처하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모두 합당하기 마련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남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도 내 입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것이요, 남에게 실패를 당하는 일도 내 혀로 인해 당하는 것이다. ‘농’이란 한 글자를 굳게 지키고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남들이 모두 실패나 모욕을 당하더라도 나는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모욕도 당하지 않고 실패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 보면 ‘농’이란 글자에 담긴 뜻 또한 어찌 깊고 아름답지 않은가?
-장신강(張信綱, 1779~1856), '농재음(聾齋吟)',『농재잡사(聾齋雜詞)』-
주인옹은 과연 ‘농(聾)’ 자의 뜻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구려. 그러나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다고 할 수 있으니, 어찌 진짜 귀머거리겠는가? 예를 들면 자신의 몸을 닦고 자식을 훈도하는 도리, 재산을 다스리고 생업을 꾸리는 규범, 사람을 대하고 사물에 접하는 의리, 화목하고 겸양하는 풍모, 청렴하고 단아한 절도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처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 밝은 말도 여기에 있고 생각 깊은 말도 여기에 있도다. 한 조각 마음 속에서 유독 이 부분은 밝고 오로지 저 부분은 어두우니, 그렇다면 그가 귀머거리인가 아닌가는 그의 마음의 존재 여부에 달렸을 따름이다.(문계락(文啓洛), 「우거재화운(愚擧齋和韻)」의 서문(序文), 『농재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