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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도(道)란 길을 가는 것과 같다 / 박지원

무릇 도(道)란 길과 같으니, 청컨대 길을 들어 비유해 보겠다. 동서남북 각처로 가는 나그네는 반드시 먼저 목적지까지 노정이 몇 리나 되고, 필요한 양식이 얼마나 되며, 거쳐가는 정자ㆍ나루ㆍ역참ㆍ봉후(烽堠, 봉화가 있는 보루, 즉 주요 거점)의 거리와 차례를 자세히 물어 눈으로 보듯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다리로 실지(實地, 실제하는 땅)를 밟고 평소의 발걸음으로 평탄한 길을 가는 법이다. 먼저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바르지 못한 샛길로 달려가거나 엉뚱한 갈림길에서 방황하게 되지 않으며, 또 지름길로 가다가 가시덤불을 만날 위험이나 중도에 포기해 버릴 걱정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지(知, 앎)와 행(行, 실천)이 겸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행하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

[고전산문] 껍데기에서 나를 찾아 본들 / 박지원

영처자(嬰處子 이덕무(李德懋) )가 당(堂)을 짓고서 그 이름을 선귤당(蟬橘堂)이라고 하였다. 그의 벗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비웃었다. “그대는 왜 어지럽게도 호(號)가 많은가. 옛날에 열경(悅卿, 김시습)이 부처 앞에서 참회를 하고 불법을 닦겠다고 크게 맹세를 하면서 속명(俗名)을 버리고 법호(法號)를 따를 것을 원하니, 대사(大師)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열경더러 이렇게 말을 했네. ‘심하도다, 너의 미혹됨이여. 너는 아직도 이름을 좋아하는구나. 중(승려)이란 육체가 마른 나무와 같으니 목비구(木比丘)라 부르고 마음이 식은 재와 같으니 회두타(灰頭陀, 행각승)라 부르려무나. 산이 높고 물이 깊은 이곳에서 이름은 있어 어디에 쓰겠느냐. 너는 네 육체를 돌아보아라. 이름이 어디에 붙어 있느냐? 너에게 ..

[고전산문]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서라도 배워야 한다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심지어 동복(僮僕, 나이어린 하인)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많이 안다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만 같지 못하다고 부끄러이 여겨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종신토록 고루하고 어쩔 방법이 없는 지경에 스스로 갇혀 지내게 된다. 순(舜) 임금은 농사짓고 질그릇을 굽고 고기를 잡는 일로부터 제(帝)가 되기까지 남들로부터 배우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는 젊었을 적에 미천했기 때문에 막일에 능한 것이 많았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막일 또한 농사짓고 질그릇을 굽고 고기를 잡는 일 따위였을 것이다. 아무리 순 임금과 공자같이 성스럽고 재능 있는 분조차도, ..

호곡장론(好哭場論): 한바탕 마음껏 울만한 곳

초팔일 갑신 맑음. 정사正使와 가마를 같이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리를 가서 한 줄기 산 자락을 돌아 나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몸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말 머리를 지나더니 땅에 엎디어 큰 소리로 말한다. “백탑白塔 현신現身을 아뢰오.”태복이는 정진사鄭進士의 말구종꾼이다. 산 자락이 아직도 가리고 있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채찍질로 서둘러 수십 보도 못가서 겨우 산 자락을 벗어나자, 눈빛이 아슴아슴해지면서 갑자기 한 무리의 검은 공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인간이란 것이 본시 아무데도 기대일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다닐 수 있음을 알았다.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서 말하였다...

마장전(馬駔傳 ):사귐의 태도과 사귐의 도리

말 거간꾼이나 집주릅(집을 팔고 사는데에 중간에서 흥정붙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손뼉을 치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짓이나, 관중(管仲)과 소진(蘇秦)이 닭ㆍ개ㆍ말ㆍ소의 피를 바르고 맹세했던 일은 신뢰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어렴풋이 헤어지잔 말만 들어도 가락지를 벗어던지고 수건을 찢어 버리고 등잔불을 돌아앉아 벽을 향하여 고개를 떨구고 울먹거리는 것은 믿을 만한 첩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요, 가슴속의 생각을 다 내보이면서 손을 잡고 마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믿을 만한 친구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콧잔등(準, 콧마루 준, 읽을 때는 ‘절(巀)로 읽는다)까지 부채로 가리고 좌우로 눈짓을 하는 것은 거간꾼들의 술책이며, 위협적인 말로 상대의 마음을 뒤흔들고 상대가 꺼리는 곳을 건드려 속을 떠보며..

호질(虎叱): 호랑이가 양반계급의 위선을 꾸짖다

범은 착하고도 성스럽고, 문채롭고도 싸움 잘하고, 인자롭고도 효성스럽고, 슬기롭고도 어질고, 엉큼스럽고도 날래고, 세차고도 사납기가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 없다.그러나 비위(狒胃)는 범을 잡아먹고, 죽우(竹牛 짐승 이름)도 범을 잡아먹고, 박(駮)도 범을 잡아먹고, 오색 사자(五色獅子)는 범을 큰 나무 선 산꼭대기에서 잡아먹고, 자백(玆白)도 범을 잡아먹고, 표견(䶂犬)은 날며 범과 표범을 잡아먹고, 황요(黃要)는 범과 표범의 염통을 꺼내어 먹고, 활(猾) 뼈가 없다.은 범과 표범에게 일부러 삼켜졌다가 그 뱃속에서 간을 뜯어먹고, 추이(酋耳)는 범을 만나기만 하면 곧 찢어서 먹고, 범이 맹용(猛㺎 짐승 이름)을 만나면 눈을 감은 채로 감히 뜨질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은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되 범..

세상물정 모르는 내가 살아가는 모습

유월 어느날 낙서(洛瑞)가 밤에 나를 찾아왔다가 돌아가서 기(記)를 지었는데, 그 기에, “내가 연암(燕巖) 어른을 방문한즉, 어른은 사흘이나 굶은 채 망건도 쓰지 않고 버선도 신지 않고서, 창문턱에 다리를 걸쳐 놓고 누워서 행랑것과 문답하고 계셨다.” 하였다. 여기에서 말한 연암이란 금천(金川)의 협곡에 있는 나의 거처인데, 남들이 이것으로 내 호(號)를 삼은 것이었다. 나의 식구들은 이때 광릉(廣陵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었다. 나는 본래 몸이 비대하여 더위가 괴로울 뿐더러, 풀과 나무가 무성하여 푹푹 찌고 여름이면 모기와 파리가 들끓고 무논에서는 개구리 울음이 밤낮으로 그치지 않을 것을 걱정하였다. 이 때문에 매양 여름만 되면 늘 서울집에서 더위를 피하는데, 서울집은 비록 지대가 낮고 비좁았지만,..

글이 능숙하지 못한 것은 글자의 탓이 아니다

글을 잘 짓는 자는 아마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써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앞뒤의 조응(照應)이란 봉화요, 비유란 기습 공격하는 기병(騎兵)이요, 억양반복(抑揚反覆)*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란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이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무릇 장평..

자신을 해치는 것이 제 몸안에 있음을 모르고

진사 장중거(張仲擧)는 걸출한 인물이다. 키는 팔 척 남짓하고 기개가 남보다 뛰어나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았으나, 천성이 술을 좋아하여 호방한 까닭에 취하게 되면 빗나가는 말이 많았다. 이 때문에 동네에서 그를 싫어하고 괴롭게 여기어 미친 사람이라 지목하고 친구들 사이에도 비방하는 말들이 자자하였다.이에 그를 가혹한 법으로 얽어 넣으려는 자가 생기자 중거 또한 자신의 행실을 뉘우치며, ‘내가 아마 이 세상에서 용납되지 못할 모양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비방을 피하고 해를 멀리할 방도를 생각해 내어, 거처하는 방을 깨끗이 쓸고 문을 닫아걸고 발〔簾〕을 내리고 살면서, 크게 ‘이존(以存)’이라 써서 당에 걸어 놓았다. 《역(易)》에 이르기를 “용과 뱀이 칩거하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다.(龍蛇之..

벗과 사귐에 대하여 (穢德先生傳 예덕선생전)

선귤자(蟬橘子, 연암의 벗 형암 이덕무)에게 '예덕선생(穢德先生)'이라 부르는 벗이 한 사람 있다. 그는 종본탑(宗本塔,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석탑) 동쪽에 살면서 날마다 마을 안의 똥을 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지냈는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엄행수(嚴行首)라 불렀다. ‘행수’란 막일꾼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칭호요, ‘엄’은 그의 성(姓)이다.자목(子牧, 이덕무의 제자)이 선귤자에게 따져 묻기를,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벗의 도를 들었는데, ‘벗이란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핏줄을 같이하지 않은 형제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벗이란 이같이 소중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이름난 사대부들이 선생님을 따라 그 아랫자리에서 노닐기를 원하는 자가 많았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