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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 정직이다 / 위백규

섭공이 공자에게 말하였다. “우리 향당 가운데 몸을 정직하게 행동하는 자가 있으니, 그의 아버지가 양(羊)을 훔치자 아들이 그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우리 향당의 정직한 자는 이와 다르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하여 숨겨 주고 자식이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 주니, 정직함은 이 가운데 있는 것이다. 매사에 단지 의리의 당연함을 따른다면, 정직에 뜻을 두지 않아도 절로 정직해진다. 만일 정직에 뜻을 둔다면, 사의(私意, 자기만의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가 일어나 어디를 가든지 정직할 수 없다. 이 사람이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이름이 났다면, 이는 정직에 뜻을 둔 자이니, 어떻게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증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옮긴이 주: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고발함으로써 자신의 ..

인설(人說 ): 사람의 도리에 관하여

사람은 만물 중 하나이다. 팔과 다리의 운동, 코와 목구멍의 호흡, 눈과 귀의 보고 듣기, 입과 입술의 먹고 마시기, 암컷과 수컷의 교미 등은 사람과 개ㆍ돼지ㆍ승냥이ㆍ늑대가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만물 중에서 귀하고 가장 신령한 이유는 단지 그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네 가지가 없었다면 5만 4000년 동안 한 번 태어나 다행히도 사람이 되는 일이 개ㆍ돼지ㆍ승냥이ㆍ늑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람이면서 저 많은 사물과 함께 천지 사이에 살면서 귀하지도 신령하지도 못하고 말이 문틈으로 지나가듯 잠깐 사이에 단지 따뜻하면 즐겁고 배부르면 기뻐할 줄만 알다가 인생 백 년을 지나자마자 새가 떨어지고 들짐승이 죽듯, 풀이 죽고 나무가 썩듯 할 것이니, 삶이라는 것이 어찌 허망하..

[맹자 고자상 10장 강해] 본심(本心)을 잃고 사는 삶

만약 무턱대고 의롭게 죽는 것을 삶보다 심하게 바랄 수 있다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분명 구차하게 큰소리치는 말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물고기나 곰 발바닥의 맛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물고기와 곰 발바닥으로 먼저 비유를 들었다. 진실로 완전한 바보이거나 지극히 완악(頑惡)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들 ‘의(義)’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은 ‘의’를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가장 뛰어난 자는 이 말을 구실로 삼아서 ‘의’가 삶과 더불어 나란할 수도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의’의 아름다움이 삶의 즐거움보다 훨씬 뛰어나서, 마치 곰 발바닥과 물고기의 맛이 현격하게 차이가 있는 것처럼 여기겠는가? ‘의(義)’의 아름다운 맛이 곰 발바닥을 대신할 ..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라는 ‘무치지치(無恥之恥)’ 네 글자는 종신토록 외워서 반성할 만한 글이다. 성현의 도는 다만 부끄러움을 면하는 방법이다. 세밀하게 공부하면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갈 수 있고, 공효가 극진해지면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부끄럽지 않으며, 땅을 굽어봐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진심 상 6장] “부끄러움을 쓰는 바가 없다.”라는 ‘무소용치(無所用恥)’ 네 글자를 읽노라니 사람으로 하여금 등에 식은땀이 흐르게 한다. 그 병의 뿌리는 바로 ‘스스로 속임〔自欺〕’이다.[진심 상 7장] 배우는 자는 향원(鄕原)이 덕(德)의 적(賊)이라는 사실을 깊이 잘 안 연후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진실로 “엄연히 세상에 아첨하는 자〔閹然媚於世也者〕”가 아니라면 절대로 온 고을 사람들이 원인(愿..

임진왜란의 의병(義兵) 김헌(金憲)

사람에게 보존되어 있는 것 가운데 충의(忠義)보다 큰 것은 없다. 명예가 한 시대에 드높고 훌륭한 이름이 백대 동안 전해지는 것을 어찌 사람마다 스스로 힘쓰고 즐겁게 실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만일 혹 고상하게 처신하고 은둔하는 뜻을 기른다면, 그 몸을 욕되지 않게 하여 성명(性命)을 보전하고 이런 명성을 오롯하게 누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작은 이해(利害)에 속박되어 제대로 처신할 수 있는 자는 매우 적다. 하물며 의리만 알고 제 몸을 돌보지 않으며 미소를 머금고 의연하게 흰 칼날을 밟으면서 한번 죽음으로써 지조를 지키는 자에게 있어서이겠는가? 아, 그 지극한 어려움이여!그렇지만 전투가 벌어졌을 때 아군의 북소리가 이미 잦아들고 적의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비분강개한 심..

성의(誠意)와 스스로 속임(自欺)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誠意 성의).’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고, 호색을 좋아하듯 해야 하니, 이를 두고 ‘스스로 만족스럽다.(自慊 자겸)’고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소인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 있을 때는 불선한 짓을 하되 하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하다가, 군자를 본 뒤에 시치미를 떼고 불선을 감추고 선만을 드러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폐와 간을 들여다보듯 보고 있으니 그렇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를 두고 ‘마음이 성실하면 밖으로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증자가 말하기를 “열 눈이 보고 있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으니, ..

뜻을 고상하게 가져라

선비는 뜻을 고상히 하는 자이다. 뜻이 고상하면 식견도 고상하고 문장도 고상하지만, 뜻이 저속하면 식견도 저속하고 문장도 저속하다. 이른바 고상하다는 것은 지나치게 꼿꼿하여 잘난 체하고 건방지다는 말이 아니라, 제일 뛰어난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하여 군자의 무리가 되려는 것이다. 낙(洛 정자)ㆍ민(閩 주자)을 비롯한 여러 선생이 성학(聖學)으로써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데도, 오히려 근래에는 오로지 과거로써 선비를 취하면서 선비가 과거 공부를 익히지 않으면 벼슬하여 군주를 섬길 길이 없으므로 과거 문장을 아울러 공부하는 것도 불가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진실로 그러하다. 대개 식견이 고상하면 독서할 때에 반드시 의리를 궁구하고, 완미하며 깊이 사색하고 이치를 탐구하여 밝히며, 말로 표현하지..

소인배가 무리를 이루면 도깨비외에는 모두 죽일수 있다

소인(小人)은 벗(마음을 같이하고 의리와 믿음으로 함께하는 가까운 친구)은 없지만 당(黨, 자기 필요에 따라 이해관계로 모인 무리)은 있으며, 군자는 벗은 있지만 당(黨)은 없다. 그런데 소인은 당(黨)이 많을수록 더욱 세력을 확장하고, 군자는 항상 소인의 당(黨)에 화를 당하는 것은 왜인가? 위에 있는 사람은 늘 받들어 주는 것을 좋아하고, 소인이 거기에 영합해서 아첨하며 기쁘게 해 주기 때문에 군주는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많으니까 더욱 기뻐하면서 소인의 당(黨)이 하늘에 이를 정도로 악행이 커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군자는 늘 귀에 거슬리게 비판하는 말을 아뢰기 때문에 군주가 처음에는 꺼리고, 오래 꺼리다 보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한..

의미를 취하되 문장을 흉내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요즘은 산골이나 바닷가 촌구석이라도 모두 한양 옷을 입고 한양 말을 쓸 수 있으니, 비루하고 속된 풍속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다.”라고 한다. 나는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바탕이 있은 뒤에 문채를 내고 멀리까지 지속될 수 있다. 요즘 풍속에 유행하는 한양 말과 한양 옷은 백성들의 마음이 불안하여 모두 겉으로 번다하게 꾸미기에 바빠 그 바탕이 전부 손상된 결과이니, 온 세상 애나 어른이나 충후(忠厚)하고 신실(信實)한 사람이 없다. 가죽이 없으면 털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 절대 붙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퇴옹(退翁 이황(李滉))이 영남의 발음을 고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옛 의미가 있다. 《주역》에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연못인 것이 이..

칠정(七情): 인간의 감정에 대하여

칠정(七情,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망(欲))은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장 훌륭한 성인이나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 기쁨으로 말하면, 부모가 장수하고 안락하면 기뻐할 만하고, 현명한 스승과 보탬이 큰 벗을 얻으면 기뻐할 만하며, 현명한 아내와 자손이 있으면 기뻐할 만하다. 안으로 나의 마음을 반성하여 남에게 말 못할 것이 하나도 없거나 나의 일을 점검하여 의리에 큰 괴리가 없으면 기뻐할 만하니 이것이 정당한 기쁨이다. 그러나 기쁨이 마음에 더해져서 나만 홀로 차지하려는 뜻이 있게 되면 기뻐하는 것이 비록 정당하더라도 곧 사사로운 마음이 되고, 도리어 기쁨이 넘쳐 부정한 데로 흘러간다. 예를 들어 실제가 없는 명성이나 재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