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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입언(立言)을 배우고자 한다면 / 유몽인

만약 옛날의 이른바 '입언(立言)'*이라는 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묘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 한나라 시대의 사람(漢人)으로 삼대(三代, 중국 고대 왕조시대, 하(夏)·상(商)·주(周))를 배운 자는 삼대(三代)가 될 수 없고, 단지 한나라 시대의 사람(漢人)일 따름이다. 송나라 시대의 사람(宋人)으로 한퇴지(한유)를 배운 자는 한퇴지가 될 수 없고, 오로지 송나라 시대의 사람(宋人)일 뿐이다. 이에 나는 고인(古人, 옛 현인의 사상과 문장)을 배우고자 한다면 앞서 고인(古人)이 배운 바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경(西京,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의 도읍지인 장안, 즉 한, 수, 당 시대)의 문장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시대의 현인들이 배우고 익힌 바의 육경(六經)과 『좌전』․『국어..

[고전산문] 있고 없음의 유무

이 세상에는 있지만 없는 것이 있다. 없지만 있는 것도 있다. 있음에도 가지지 못해서 없는 것은, 있지만 없는 것이다. 없음에도 가질 수 있어서 본래부터 있는 것은, 없지만 있는 것이다. 진실로 그 있는 것에서부터 미루어 헤아려 있는 것을 없이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있고 없음의 유무는 모두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많이 가진 것은 오직 옛사람들의 책뿐인 사람이 있다. 어려운 시절을 만나 후미지고 외진 곳에 살게 되니, 예전에는 있던 것들이 지금은 많지 않다. 선비 중에 책이 없는 사람은 갖고 싶지만 얻지 못한다. 있지만 그가 사는 지역에는 없는 까닭이다. 있지만 없는 이것은 마치 세상의 것에 어두운 것과 같다. 이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고전산문] 죽어있는 말(語)

유교와 불교가 어찌 처음부터 다른 도였겠는가. 요(堯)임금은 ‘넉넉하고 부드럽게 하여 스스로 깨닫게 한다’고 하였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本性)으로 돌이켜 그것을 구하면 능히 스승으로 삼을만한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배우는 자들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고 문장(章句)의 부분만을 취하여 도리(道)를 추구하려고 하니, 어찌 대도(大道)와의 거리가 이미 까마득하지 않겠는가? 중용(中庸) 책 한 권을 읽고 중용을 지키는 성인(聖人)의 경지를 이룬다면, 어떤 사람인들 자사(子思)가 되지 못할 것이며, 대학(大學) 책 한 편을 읽고 치국평천하(治國 平天下)의 도를 얻는다면 어떤 사람인들 증삼(曾參)이 되지 못하겠는가? 성인(聖人)의 말은 간략하고, 현인( 賢人)의 말은 상세하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상세..

[고전산문] 오직 내 마음을 따를뿐

조정에서 사론(士論)들이 서로 편을 나누고 가르는 까닭에 벗을 사귀는 도리가 그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보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벗을 사귀는 도리는 오직 하나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나? 하나가 둘로 갈라진 것도 오히려 불행인데 어찌하여 넷이 되고 다섯으로 갈라져 버렸는가? 하나인 도리가 넷으로 다섯으로 갈라지고 제각각 한통속이 된 것은 모두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런즉 사람의 의리를 어찌 쉽게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편당에 휩쓸리지 않고 홀로인 사람은 어느 한편에 붙지않고 혼자라는 그것 때문에 다른 네 다섯과 적이 되고 만다. 그러하니 혼자인 사람이 어찌 외롭지 않겠는가? 하나의 세력이 성하면 다른 하나의 세력이 쇠하고, 하나를 지키고 나아가면 다른 하나..

[고전산문]내 마음의 귀결점은 오직 나에게 있을 뿐

조정에서 선비들의 논의가 나뉜 뒤로 붕우의 도리를 어찌 끝까지 지킬 수 있겠는가? 벗 사귀는 도리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둘로 나뉘었는가? 둘도 오히려 불행한데 어찌하여 넷이 되고 다섯이 되었는가? 하나인 도리가 넷, 다섯으로 나뉘어 줄을 세워 사당(私黨)을 만드니 한 개인에게 저버림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한 편에 들어간 사람은 각기 하나의 세력이 되어 나머지 네 다섯 편과 적이 되니 한 개인이 외롭지 않겠는가? …… 나는 혼자다. 지금의 선비를 보건대 나처럼 혼자인 자가 있는가? 홀로 세상길을 가나니 벗 사귀는 도가 어찌 한 편에 붙는 것이겠는가? 한 편에 붙지 않으므로 네다섯이 모두 내 친구가 된다. 그런즉, 나의 교유가 또한 넓지 않은가? 파벌의 차가움은 얼음을 얼릴 정도지만 내가 떨지 않으며, 파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