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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심은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 이익

(...)요즘 어떤 경전(經典)을 읽고 있습니까? 지난번 그대에게 《주자대전(朱子大全)》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말라고 권고를 했는데 얼마 후 그렇게 말한 것을 다시 후회했습니다. 주자서(朱子書)를 읽는 것 역시 유보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성인의 경전은 읽지 않고 지엽적인 책만 보면서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시속(時俗)을 염려한 것입니다. 지금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는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그 밖에도 《주문작해(朱文酌海)》와 《절작통편(節酌通編)》이 있어 빠진 내용을 매우 많이 보충하여 거의 물 샐 틈이 없을 정도로 내용을 잘 갖추고 있으므로 굳이 주자의 문집(文集) 전체를 다 읽어서 남을 이겨 보려고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시속의 요구에 부응하고 지식 자랑으로 남들에..

[고전산문] 배움(學)의 두 측면 / 이익

별지를 받고서 질문의 깊이와 득실을 따지지 않고 자세히 그 내용을 살펴보았더니 생각의 치밀함에 감탄하였습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學)’이란 본받는다〔效〕는 의미입니다. 저 사람에게 아는 것이 많아서 내가 쫓아가 그의 지식을 본받는 것은 마음의 측면에서 ‘학(學)’을 말한 것입니다. 저 사람에게 터득한 것이 많아서 내가 쫓아가 그의 행동을 본받는 것은 몸의 측면에서 ‘학(學)’을 말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어떤 일을 본받을 때는 반드시 마음의 힘〔心力〕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행(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독서(讀書)를 예로 들면, 책 속에 이미 그 의미를 전술(傳述)해 놓았으므로 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는 것은 마음의 ‘습(習)’이요, 의미를 이해한 다음에 끊임없..

[고전산문] 차라리 스스로 잊는 것이 낫다 / 이익

사람이 친애하는 것을 가깝다고 하고, 가깝다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소원하다고 하는데, 소원함이 심해지면 더러 저버려 절교하고 아예 생각지 않는 데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렇게 된 자는 무릇 좋고 나쁨, 근심과 즐거움이 있어도 아득히 그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서 마치 마비된 몸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너무나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사귀는 벗인 윤 상사(尹上舍) 모씨가 자신의 당(堂)에 양기(兩棄)라고 편액을 달았는데, 그 뜻은 “세상의 서로 친하고 편드는 이들은 부귀와 영화를 위하는 데 불과하니, 분주히 다니면서 즐거움을 나누고 사사로운 이익이 관련되면 절절하여 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비록 빈틈없이 결속한 듯이 보이지만, 그 마음은 단 하루도 이반(離反, 사이가 벌어져 서로..

[고전산문] 악(惡)을 지극히 미워함 / 이익

공자(孔子)가 “악(惡)을 미워하기를 항백(巷伯)과 같이 해야 한다.*” 했는데 이는 지극히 미워한다는 말이니 본받을 만하다. 무릇 누구든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지만 모름지기 지공무사(至公無私 지극히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음)하게 한 다음이라야 참으로 옳고 그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항백)가 과연 참소를 만나 궁형(宮刑, 생식기를 제거당하는 신체 형벌)을 당한 사람이라면 혹 사사(개인적인 감정 혹은 원한)가 없지 않았을 것인데 군자(君子)가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취했을 것인가? 대개 시인(寺人, 임금 가까이서 일상의 수발을 드는 사람, 즉 환관, 내시)은 임금에게 친근한 때문에 무릇 위에서 받아들이는 것과 밑에서 하소연하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소인이 아첨하는 말로 하소연하여 남..

[고전산문] 오직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알 수 있는 것 / 이익

사광(師曠 춘추시대 진(晉)의 악사(樂師))이 진 평공(晉平公)에게,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돋아오를 때의 햇빛 같고, 장성하여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오를 때의 햇빛과 같으며, 늙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켜놓은 촛불의 빛과 같다.” 하였으니, 이 말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오직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학문이란 사색(思索)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얻음이란 책만한 것이 없으니, 사색하여도 얻지 못하면 오직 책이 스승이 되는 것이다. 밤에 사색하여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분ㆍ비(憤悱, 마땅히 표현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고심하며 안타까워하고 한탄함 )하다가, 해가 돋은 뒤에 책을 대하면 그 즐거움이 어떠함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낮에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고전산문] 눈물이 있어도 감히 울지 못하는 심정 / 이익

기축옥사(己丑獄事, 선조 22년(1589)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옥사)에 정승 정언신(鄭彦信)이 조정에서 매를 맞고 갑산(甲山)으로 귀양을 가게 되니, 그 아들 율(慄)이 단식(斷食) 끝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때에 자칫하면 연루죄(連累罪)가 파급되므로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였고, 심지어 집안사람들이 장사조차 예(禮)대로 하지 못하였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당시에 문사랑(文事郞)이 되었던 까닭으로 그 원통함을 알고서 바야흐로 관(棺) 뚜껑을 덮을 적에 시 한 수를 지어 비밀히 관 속에 넣었는데, 집안사람들도 몰랐던 것이었다. 급기야 그 아들이 장성하자, 천장(遷葬, 유골을 수습하여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하게 되어 관을 열어보니, 세월이 이미 30년이 지났는데도 종이..

닭에게서 배우는 지혜

암탉이 둥지에 있는데 한쪽 눈이 멀었다. 오른쪽은 눈동자가 완전히 덮였지만 왼쪽 눈은 감기지 않아 약간 사팔눈이었다. 낟알이 그릇에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쫄 수 없고 다녔다 하면 담장에 부딪혔다. 우왕좌왕하면서 슬슬 피하기나 하니 모두들 이 닭은 새끼를 기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날이 차서 병아리가 나왔기에 뺏어다가 다른 닭에게 주려고 하였는데 가엾어서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서 살펴보니 달리 하는 일도 없이 항상 섬돌과 뜰 사이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병아리는 어느새 자라나 성장해 있었다. 다른 어미 닭을 보니 거의 상해를 입거나 잃어버리거나 해서 혹 반도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 닭만 온전하게 둥지를 건사하였으니 어째서인가? 무릇 세상에서 잘 기른다는 것은 두 가지이다. 먹이..

소인의태(小人意態):소인의 생각과 행동

소인의 생각과 행동은 여자와 같다. 여자는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굴 모습을 예쁘게 꾸미려는 것에 지나지 않아 머리에는 가발을 쓰고 낯에는 분과 기름을 바르는데, 이는 자기 눈에 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다. 남들이 이 모습을 보고 모두 예쁘다 칭찬하고 부러워하면 아양떠는 웃음과 부드러운 말씨로 앞뒤를 재면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큰 수치로 생각한다. 대개 소인들은 자기 집에서는 험한 음식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남을 대할 때 떨어진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면서 혹 저자에 나갈 때면 반드시 좋은 의복을 입으려 하여 심지어 이웃집의 의복을 빌어 입고 남에게 뽐낸다. 혹 자기보다 더 낫게 입은 사람을 만나면 자기의 옷차림이 그만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비록 집안 ..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까닭

듣지 못하는 것을 귀머거리, 보지 못하는 것을 소경이라 하는데, 이것은 천벌[天刑]이지만,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면 귀머거리ㆍ소경과 뭐 다르겠는가? 이런 자를 남들이 귀머거리와 소경이라고 하나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니 그 병통이 너무나 심하다. 비록 보고 들으려고 해도 형체와 소리가 멀리 막혀서 그 총명을 쓸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모두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진실로 정성만 있다면 또한 형체와 소리 밖의 것도 보고 들을 수 있는데, 사물(事物)의 진가와 길흉이 어찌 신령하고 미묘한 마음을 막아 가릴 이치가 있겠는가? 옛날에 아주 큰 귀머거리와 소경이 있었으니 걸(桀)과 주(紂)란 자이다. 처음에는 용봉(龍逢)과 비간(比干) 같은 충신이 있었으나 오히려 그들의 간하는 것..

마땅히 해야할 바를 외면해선 안된다

어린아이가 위태로운 때를 당하면, 그의 부모로서는 그를 구하기에 급급하여 어떠한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물불에 빠지는 위험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강구할 뿐이요, 반드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하여, 가만히 앉아 죽는 것을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느 곳을 꼭 가려고 할 때, 차가 있으면 차를 타고 갈 것이고, 차가 없으면 말을 타고 갈 것이고, 말이 없으면 도보(徒步)로 달려갈 것이고, 앉은뱅이일 경우에는 포복(匍匐)을 해서라도 갈 것이다. 일단 간다고 마음먹었다면 어찌 끝내 못할 리가 있겠는가? 지금 시기가, 백성이 한창 고난에 빠져서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보다 더 위태로운 형편인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방법이 없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