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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황련(黃連)한 짐을 먹고 나야만 비로소 단 것을 말할 수 있다 / 이덕무

좋은 말도 지리하면 듣는 사람이 오히려 싫어하는데 하물며 나쁜 말을 많이 함에랴? 남을 ‘이놈, 저놈’이니 ‘이물건, 저물건’이니 하고 칭하지 말고 아무리 비천한 자일지라도 화가 난다 해서 ‘도적’이니 ‘개돼지’니 ‘원수’니 하고 칭하지 말며, 또는 ‘죽일 놈’이니 ‘왜 죽지 않는가’느니 하고 꾸짖지도 말라. 한 가지 일이 뜻처럼 되지 않는다 해서 성을 왈칵 내어 나는 죽어야 한다느니, 저 사람을 죽여야 한다느니, 이놈의 천지 무너져야 한다느니, 이놈의 국가 패망하라느니, 떠돌아 다니며 빌어먹는다느니 하는 따위의 막말을 해서는 안 된다. 경박스러운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 하거든 빨리 흉중을 짓눌러서 입 밖에 튀어 나오지 말게 하라. 남에게 모욕을 받고 피해가 따르게 될 터이니 어찌 두렵지 않은가? 남의 ..

[고전산문] 사람들의 병폐 두 가지 / 이덕무

재주 있고 경박한 사람은 기교(機巧)를 부림이 간사하고 천박하며, 어리석고 둔한 사람은 기교를 부림이 간휼하고 노골적이기 때문에, 군자들의 안목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중에 혹 간사하면서도 음침하거나 간휼하면서도 비밀스러우면, 이런 사람은 못할 짓이 없는 것이다. 아아, 고금에 기교 부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옛사람들은 자기의 재질을 부릴 줄 알았으나 후세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재주의 부림을 받는다. 자기 재질을 부리는 사람은 마땅히 쓸 데다 써먹고 또한 그만두어야 할 적엔 그만두지만, 재주의 부림을 받게 되면 한없이 날리어 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두려운 일이다. 사람들의 병폐는 부박(浮薄, 천박하고 경솔함)하지 않으면 반드시 융통성이 없는 법인데, 두고 보건대, 이 두 가지를 면한 사람이..

[고전산문] 변할 수 없는 것 / 이덕무

사람이란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변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변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려서부터 장난을 하지 않고 망령되고 허탄하지 않으며 성실하고 삼가며 단정하고 정성스러웠는데, 자라서 어떤 사람이 권하여 말하기를, “너는 세속과 화합하지 못하니 세속에서 너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므로 그도 그렇게 생각하여, 입으로는 저속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몸으로는 경망하고 부화(浮華, 실속없이 겉치레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한 일을 행하였다. 이와 같이 하기를 3일쯤 하고는 축연(蹙然)히(문득) 기쁘지 않아서 말하기를, “내 마음은 변할 수 없다. 3일 전에는 내 마음이 든든한 듯하더니 3일 후에는 마음이 텅 빈 것 같다.” 하고는 드디어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이욕을 말하면 기운이 없어..

천진난만하게 노는 어린아이와 부끄러워하는 처녀의 심정으로

“고(藁, 글을 기록한 원고)를 영처(嬰處)라고 하였으니 고(藁)를 쓴 사람이 영처인가?” 하므로, “고를 쓴 사람은 20세가 넘은 남자이다.” 하였다. “영처가 고를 쓴 사람이 아닌데도 고를 유독 '영처'라고 하면 옳겠는가?” 하므로, “이는 스스로 겸손한 것에 가까우면서도 도리어 스스로 찬미한 것이다.” 하였다.(옮긴이 주: 영처(嬰處)는 이덕무의 호로 문자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형암(炯庵), 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동방일사(東方一士)·신천옹(信天翁)등이 있다) “그렇지 않다. 숙성(夙成)한 어린이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자(長者)’라 해야 할 것이요 지혜로운 처녀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부(丈夫)’라 해야 할 것이지만, 20이 넘은 남자가 도리어 영처로 스스로 ..

벗을 사귀고 사람을 대하는 도리 (사소절, 交接 교접)

벼슬로 서로 유혹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권세와 이익으로 서로 의지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장기 바둑이나 놓고 술이나 마시고 해학하며 떠들썩하게 웃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시문(詩文)ㆍ서화(書畫)ㆍ기예(技藝)로 서로 잘한다고 허여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다. 아! 오늘날의 이른바 우도(友道)란 것을 내가 매우 슬퍼하는 바이다. 겸손하고 공손하며 아담하고 조심하며 진실하고 꾸밈이 없으며 명절(名節)을 서로 부지하고 과실(過失)을 서로 경계하며, 담박하여 바라는 바가 없고 죽음에 임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참된 벗이다. 거짓된 인품은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더욱 교활해지고, 참된 인품은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더욱 숙련(신중하고 진지함)해진다. 진중순(陳仲醇)은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대인(大人..

마음은 군(君)이요 몸은 신(臣)이다

남이 나를 칭찬한다 하여 후하게 대하지 말고 남이 나를 훼방한다 하여 박하게 대하지 말아야 하며, 한 가지의 칭찬을 들었다 하여 스스로 기뻐하거나 자부(自負)하지 말고 다만 나의 몸을 조심하여 더욱 힘써야 하고, 한 가지의 훼방을 들었다 하여 스스로 화내거나 자기(自棄,좌절하고 스스로 포기함)하지 말고 다만 나의 몸을 반성하여 잘못을 고쳐야 한다. 하늘과 땅이 있은 뒤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부여(賦與)를 받았으니, 역시 하나의 하늘과 땅이 되는 셈이다. 하늘과 땅이 도수(度數)를 상실하면 오행(五行)이 뒤바뀌고 사람이 떳떳함을 상실하면 오륜이 무너진다. 하늘과 땅의 몸으로서 하늘과 땅의 도수를 법받아 그 떳떳함을 상실함이 없으면 거의 사람이 될 것이다. 말(言)은 어긋나게 할 것이 ..

맹자가 친히 밥어 지어 나를 먹였다

내 집에 가장 좋은 물건은 다만《맹자(孟子)》7책뿐인데, 오랫동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하여 돈 2백 닢에 팔아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의 호)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하였소. 그런데 영재의 굶주림 역시 오랜 터이라, 내 말을 듣고 즉시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다가 나에게 마시게 하였으니, 이는 자여씨(子輿氏 맹자(孟子)를 가리킨다)가 친히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생(左丘生 좌구명(左丘明)을 가리킨다)이 손수 술을 따라 나에게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리하여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찬송하였으니 우리가 1년 내내 이 두 책을 읽기만 하였던들 어떻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었겠는가? 이 참으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도대체 요행을 바..

책을 펴면 부끄러움 아닌 것이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얼굴이 두툼하고 말을 간략하게 하는 소인(小人)이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덕무(사소절-교접)-어떤 사람이 나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예부터 한 가지라도 조그마한 재주를 지니게 되면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없게 되고, 스스로 한쪽에 치우친 지식을 믿게 되면 차츰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작게는 욕하는 소리가 몸을 덮게 되고 크게는 화환(禍患)이 따르게 된다. 이제 그대가 날로 글에다 마음을 두니 힘써 남을 업신여기는 자료를 마련하자는 것인가?” 하였다. 내가 두 손을 모으며 공손히 말하기를, “감히 조심하지 않겠는가.”하였다.슬픔이 닥쳤을 때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막하여, 오직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고만 싶고 한 치도 살아야 하겠다..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

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절로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은 성인(聖人)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하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하면 결코 측은지심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교묘하게 속이고 아첨하며 일생 동안 남을 속이는 사람이 있어 비록 꾸미는 데 익숙하여 스스로는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 가려진 것이 매우 얇으므로 가리면 가릴수록 나타나니, 고생스럽기만 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선(善)을 드러내는 일은 한없이 좋은 일이다. 그 선을 한 사람은 이름이 인멸(湮滅)되지 않고 더욱 힘쓰게 되며, 듣는 사람은 본받아 준칙을 삼으며, 그 일을 말하는 나 자신은 또한 그를 본받은 것이다. 자신을 자제하는 것은 반드시 분명해야 하지만, 남을 대하는 데는 포..

마음 밝히기를 거울같이

선비는 마음 밝히기를 거울같이 해야 하고 몸 규제하기를 먹줄같이 해야한다. 거울은 닦지 않으면 먼지가 끼기 쉽고 먹줄이 바르지 않으면 나무가 굽기 쉽듯이,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사욕이 절로 가리우고 몸을 규제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절로 생기므로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데도 마땅히 거울처럼 닦아야 하고 먹줄처럼 곧게 해야 한다. 마음[虛靈不昧]이란 서쪽으로 유도하면 서쪽으로 쏠리고 동쪽으로 유도하면 동쪽으로 쏠리며, 이(利)로 향하면 이에 따르고 의(義)로 향하면 의에 따르므로, 쏠리고 따르는 데에 반드시 그 시작을 삼가야 한다. 물건이 적중하면 저울대가 반듯하고 물건이 적중하지 못하면 저울대가 기울며, 돛이 순풍을 만나면 배가 가고 돛이 순풍을 만나지 못하면 배가 가로선다, 반듯하고 기울며 가고 가로서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