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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척하는 것을 경계하고 삼가한다 / 김정희

나는 《역(易), 주역》을 읽고서 건(乾) 구삼(九三)의 의(義)*에 깊이 느낌이 있어 나의 거실의 편액을 ‘척암(惕庵, 두려워할 척, 암자 암)’이라 했다. 김진항(金鎭恒)이라는 자가 있어 지나다가 보고 물으며 말하기를, “거룩하옵니다. 척(惕)의 의(義)야말로. 선생은 대인이시니 장차 대인의 덕(德)에 나아가서 업을 닦으시려니와. 진항은 소인이오라 겸(謙)에서 취한 바 있사오니, 그 산은 높고 땅은 낮은데 마침내 굽히어 아래에 그쳤음을 위해서 이옵니다. 그래서 제 실(室, 거실)을 ‘겸겸(謙謙)’이라 이름하였으니 원컨대 선생은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그럴상해도 이는 겸이 아니다. 네가 먼저 하나의 높은 의상(意想, 뜻과 생각)을 일으켜 놓고, 다시 하나의 낮은 형체를 마련하고..

[고전산문] 나는 나일 뿐

실제하는 나를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이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나이다. 나이고 나 아닌 사이에 나라고 할 것이 없다. 겹겹으로 구슬이 주렁주렁한데 누가 큰 마니주(여의주) 속에서 껍데기 형상에 집착하는가. 하하. (是我亦我。非我亦我。是我亦可。非我亦可。是非之間。無以爲我。帝珠重重。誰能執相於大摩尼中。呵呵)-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완당전집 제 6권 '자화상(自畵像), 자제소조(自題小照)'-▲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88

[고전산문] 세한도 발문(歲寒圖 跋文): 진정한 벗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의 『만학집 晩學集』과 운경의 『대운산방문고大運山房文庫』두 책을 부쳐주고, 올해 또 하장령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120권을 보내주니, 이 모두는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천리 만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또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한번에 가능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닌 까닭이다. 지금의 도도하고 각박한 세상 인심은 나도나도 권세와 이득을 쫒아 제 잇속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풍조가 온통 휩쓸고 있는데, 세상 풍조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책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힘쓰기를 이처럼 애써 하면서도, 그대에게 권세와 이득을 보장해 줄만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저멀리 초췌하게 야위고 초라한 이 사람에게 건네주기를 마치 세상사람들이 제 잇속을 챙기듯이 하였구..

[고전산문] 오만을 경계하다

사람에겐 세 가지 병이 있다(民有三疾). 광(狂)이 그 중의 하나다. 광(狂)은 오히려 가르칠만 하다. 하지만 오만(傲慢)은 가르친단 말을 듣지 못했다. 오만은 덕을 흉하게 하는 까닭이다. 실로 사람의 악이 아닐 수 없다. 너는 어찌 그리도 어리석길래 이 오만의 이름을 덥석 받았단 말인가? 힘써 바라는 것에 진실이 있을진대, 이름이 훼손된 것에 어찌 원인이 없겠는가. 네가 군자로써 오만하면 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네가 소인으로써 오만하면 스스로 화를 불러들일 따름이다. 네가 지금 스스로 오만함의 구덩이에 빠졌으니, 비웃음 당하고 꾸지람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허나 비록 남이 네 허물을 들먹인다할지라도, 네 스스로는 그것들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참조: 번역글이 쉽게 와닿지 ..

[고전산문]적천리설(適千里說): 비르게 길을 찾아가는 방법

지금 대체로 천리 길을 가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경로(徑路)의 소재를 분변한 다음에야 발을 들어 걸어갈 뒷받침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 문을 나섰을 때에 당해서는 진실로 갈팡질팡 어디로 갈 줄을 모르므로,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그런데 마침 바르고 큰 길을 알려주고 또 굽은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세세히 가르쳐주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그 사람이 정성스럽게 일러주기를, “그 굽은 길로 가면 반드시 가시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바른 길로 가면 반드시 목적지를 가게 될 것이다.”고 하리니, 그 사람의 말이야말로 성심을 다했다고 이를 수 있겠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자는 머뭇거리며 과감히 믿지를 못하여 다시 딴 사람에게 물어보고 또 다시 딴 사람에게 묻곤 한다. 그러..

[고전산문]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사실에 의거하여 옳은 진리를 찾는다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 이르기를, “사실에 의거하여 사물의 진리를 찾는다.[實事求是]” 하였는데, 이 말은 곧 학문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리이다. 만일 사실에 의거하지 않고 다만 허술한 방도를 편리하게 여기거나, 그 진리를 찾지 않고 다만 선입견(先入見)을 위주로 한다면 성현(聖賢)의 도에 있어 배치(背馳)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한유(漢儒, 중국의 유학자)들은 경전(經傳)의 훈고(訓詁, 경서(經書)의 고증, 해석, 주해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 대해서 모두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 있어 정실(精實, 구체적이고 실제적임)함을 극도로 갖추었고, 성도인의(性道仁義) 등의 일에 이르러서는 그때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있어서 깊이 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많이 추명(推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