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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굽은 세상에서 죄가 되는 것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낮고 기울고, 좁고 더러워서 마음이 답답했다. 하루는 들에 나가 노닐다가 농부 한 사람을 보았는데, 눈썹이 기다랗고 머리가 희고 진흙이 등에 묻었으며, 손에는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있었다. 내가 그 옆에 다가서서 말하기를, “노인장 수고하십니다.”했다. 농부는 한참 후 나를 보더니 호미를 밭이랑에 두고는 언덕으로 걸어올라와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앉으며 턱을 끄덕이어 나를 오라고 했다. 나는 그가 늙었기 때문에 추창(趨蹌, 예를 갖추고 가까이 걸어감)해 가서 팔짱을 끼고 섰더니 농부가 묻기를,“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그대의 의복이 비록 해지기는 하였으나 옷자락이 길고 소매가 넓으며, 행동거지가 의젓한 것을 보니 혹 선비가 아닌가? 또 수족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뺨이 풍요하고 배가 나..

[고전산문] 원망하거나 근심하지 않는 이유

내가 죄를 지어 남쪽 변방으로 귀양간 후부터 비방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구설이 터무니없이 퍼져서 화가 측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두려워서 사람을 보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평일에 글을 부지런히 읽으시느라 아침에 밥이 끓든 저녁에 죽이 끓든 간섭치 않아 집안 형편은 경쇠를 걸어 놓은 것처럼 한 섬의 곡식도 없는데, 아이들은 방에 가득해서 춥고 배고프다고 울었습니다. 제가 끼니를 맡아 그때그때 어떻게 꾸려나가면서도 당신이 독실하게 공부하시니 뒷날에 입신 양명(立身揚名)하여 처자들이 우러러 의뢰하고 문호에는 영광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했는데, 끝내는 국법에 저촉되어서 이름이 욕되고 행적이 깎이며, 몸은 남쪽 변방에 귀양을 가서 독한 장기(瘴氣)나 마시고 형제들은 나가 쓰러져서 가문이 여지없이 탕산..

[고전산문] 진리가 어지럽혀지고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요순(堯舜)이 사흉(四凶 요순 때에 죄를 지은 4명의 악한 즉 공공(共工)ㆍ환도(驩兜)ㆍ삼묘(三苗)ㆍ곤(鯀))을 벤 것은 그들이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은 좋게 꾸미면서 명령을 거스르고 종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다. 우(禹)도 또한 말하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자를 어찌 두려워하랴?” 하였으니, 대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사람의 본심을 잃게 하며, 명령을 어기고 종족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람의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제거하여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탕(湯 은(殷)왕조의 시조(始祖)다)과 무왕(武王 은(殷)왕조를 무너뜨리고 주(周)왕조를 세운 임금)이 걸(桀 하(夏)왕조 최후의 임금 폭군)ㆍ주(紂 은(殷)왕조의 최후의 임금ㆍ폭군)를 쳐부..

[고전산문] 따르는 사람(從者)을 보아서 그 선생을 안다

유가(儒家)의 류(流)인 담은선생(談隱先生)이 금남(錦南)에 살았다. 하루는 금남에 사는 야인(野人)으로 유(儒, 유학자, 선비)란 이름을 듣지 못한 자가 선생을 보려고 와서 선생의 종자(從者)에게 하는 말이, “나는 야인이라 비루하여 원대한 식견이 없으나, 들으니 ‘위에 거하여 나라의 정사를 다스리는 이를 경대부(卿大夫)라 하고, 아래에 거하여 밭을 가는 이를 농부라 하고, 기계를 만드는 이를 공인(工人)이라 하고, 화물을 사서 파는 이를 상인[商賈]이라 한다.’ 하는데, 이른바 유(儒)라는 것이 있는 줄은 몰랐더니, 어느 날 우리 고을 사람이 떠들썩하게 ‘유자(儒者)가 왔다, 유자가 왔다.’ 하기에 보니 바로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무슨 업을 하고 계시기에 사람들이 유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

[고전산문] 사물로 인하여 성현이 누린 즐거움을 아는 일은 쉬운게 아니다

겸부(謙夫) 탁(卓) 선생 탁광무(卓光茂)가 광주(光州) 별장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흙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날마다 오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익재(益齋) 이 문충공(李文忠公 이제현(李齊賢)을 말함)이 그 정자를 경렴(景濂)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이는 대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호)의 연꽃을 사랑하는 뜻을 취하여 그를 경앙(景仰)하고 사모하고자 한 것이리라. 대저 그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 물건에 마음을 쓰게 된다. 이것은 느낌이 깊고 후하기가 지극한 것이다. 일찍이 말하기를, ‘옛사람에게는 각기 사랑하는 화초가 있었다.’ 한다. 굴원(屈原)의 난초와, 도연명(陶淵明)의 국화와 염계의 연꽃이 그것으로 각각 그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