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고전산문]사람의 근본(原人) / 한유

위에 형상(形象)을 이루어 나타나 있는 것을 하늘이라 하고 아래에 형상을 이루어 나타나 있는 것을 땅이라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을 부여 받은 것을 모두 사람(人)이라 한다. 위에서 형상을 이룬 해와 달과 별은 모두 하늘에 해당한다. 아래에 형상을 이룬 풀과 나무와 산과 강 등은 모두 땅에 해당하는 것들이며,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이민족(夷)과 야만족(狄), 온갖 날짐승과 길짐승들(禽獸)은 모두 생명을 부여받은 것들로 사람에 해당한다. 그렇다고해서, 만일 내가 짐승(禽獸)을 사람이라 칭하면 되겠는가?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산(山)을 가리키며 “산인가?”라고 물으면 산이라고 말해도 된다. 산에는 풀과 나무와 새와 짐승이 있지만, 이를 모두 포함하여 말할 때는 산(山)이라 표현해도 된다. 그러나..

[고전산문] 참으로 덕(德)이 있어 훌륭한 말을 한다

보내주신 문무순성악사(文武順聖樂辭)와 천보악시(天保樂詩)와 독채염호가사시(讀蔡琰胡笳辭詩)와 이족종(移族從)및 여경주서(與京兆書)를 받았습니다. 막부(幕府)에서 등주(鄧州) 북경(北境)까지의 거리가 모두 500여 리이고, 경자일(庚子日)에 출발하여 갑진일(甲辰日)에 도착하기까지 모두 5일이 걸렸는데, 5일 동안 손으로 피봉을 뜯어 눈으로 보며 입으로 그 시문(詩文)을 읊조리고 마음으로 그 뜻을 생각하노라니, 황공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마치 무엇을 잊은 것처럼 황홀하여, 말을 타는 괴로움도 길이 먼 것도 몰랐습니다. 저 골짜기 물은 깊이가 한 자에 지나지 않고, 작은 토산(土山)은 높이가 한 길도 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가벼이 여겨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다가 태산(泰山)의 높은 절벽에 오르고 대해(大海)..

송궁문(送窮文): 가난을 멀리 떠나 보내다

원화 육년 정월 을축날 저녁에, 주인이 하인 성으로 하여금 버드나무를 얶어 수레를 만들고 풀을 묶어 배를 만들게 한 다음, 미수가루와 양식을 싣고서 멍에 밑에 소를 매고 돛대 위에는 돛을 달고 궁귀(窮鬼, 가난귀신)에게 세 번 읍하며 그에게 말하였다.“듣건대 그대에겐 떠나야 할 날이 있다고 합니다. 비루한 내가 감히 갈 길은 묻지 못하겠으나, 몸소 배와 수레를 마련하고 비수가루와 양식도 모두 실어놓았소. 날짜 길하고 시절도 좋은 때라서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니,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신 다음,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옛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도록 하오.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빠른 바람 타고 배 몰아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그대에게는 머물러 있다는 허물이 없게 ..

사설(師說): 스승에 대하여

옛날의 학자에게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라 하는 것은 도를 전하고 학업과 배움의 방법을 가르쳐 주고 의혹을 풀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존재한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닐진대 누가 능히 배움에 의문과 의심이 없을 수 있으리오. 학업에 있어서 의문을 갖고 의심을 하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는다.누구든 나보다 먼저 나서 그 도를 들음이 진실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좇아서 나의 스승으로 할 것이요. 나보다 뒤에 났다 하더라도 그 도를 들음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이 또한 나는 그를 쫓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기 때문에 어찌 그 나이를 따져서 나보다 먼저 나고 나중에 난 것에 연연해하리오. 이런 까닭에 스승을 삼음에는 귀한 것도 없고..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소리는 평정을 얻지 못하면 나온다

대개 만물은 평정(平靜)을 얻을 수 없으면 소리를 내게 된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 초목에는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흔들어 소리를 내게 된다. 물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움직여 소리를 내게 된다. 물이 솟구치며 튀어 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물이 세차게 흐르는 것은 무엇인가 가로막는 것이 있기때문이며, 그것이 끓어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열로 데우기 때문이다. 쇠나 돌같은 소리가 없는 것에도 무엇인가 두드려 소리를 내게 한다. 사람이 말함에 있어서도 그 이치는 같다.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이 나오게 된다(有不得已者而後言). 노래를 하는 것은 무언가를 그리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며, 우는 것은 마음 속에 무언가 감정이 있어서 설움이 복받쳐 나오기 때문이다. 무릇 입에서 나와서 소리가 되..

글자(字句)를 배열하는 것만으로 좋은 문장을 기대할 수 없다

작가(作家)의 작문법(作文法)을 엿보고자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은 근기(根基, 기초基礎, 준칙)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자구(字句)를 배열하는 것만으로 좋은 문장이 되기를 바라니, 어찌 될 수 있겠는가? 6월 26일에 유(愈 한유)는 이생(李生) 족하(足下)께 고하오. 그대가 보낸 편지는 문사(文辭)가 매우 뛰어난데도 묻는 태도가 어쩌면 이리도 겸손하고 공손하단 말이오.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누군들 그대에게 자신의 도(道)를 일러주려 하지 않겠소. 도덕의 수양이 머지않아 성취(成就)될 것인데, 하물며 도덕을 밖으로 표현하는 문장(其外之文)*이야 더 말할 게 있겠소. 그러나 나는 이른바 공자(孔子)의 문장(門牆, 문과 담벼락)만을 바라보고 그 집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니, 어찌 옳고 그름..

원훼(原毁):비방과 훼방의 근원

옛날의 군자들은 자신을 책함은 두루 엄격하고 치밀하며(其責己也重以周기책기야중이주), 남을 대함은 가볍고 간략하였다.(其待人也輕以約 기대인야경이약), 엄격하고 철저하기 때문에 태만하지 않고, 가볍고 간략한 것은 선(善)을 도모하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듣건대, 옛사람 중에 순(舜)임금이라는 분이 계신다. 그 사람됨이 어질고 의로운 분(仁義人)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 군자들은 순임금이 순(舜)임금이 되신 이유를 살펴서 스스로 자기를 책망하고 권면하여 이르기를, "저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인데, 순임금이 이를 능히 잘 하셨다면, 어찌 나도 이를 능히 하지 못하겠는가?" 생각하였다. 그러고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마음에 뜻을 두고, 순(舜)임금과 같지 않은 것을 버리고 마침내 순(舜)임금과 같은 데로 나아갔다..

모영전(毛穎傳)

모영(毛穎)은 중산 사람이었다. 그의 조상은 명시(明眎)라는 이름의 토끼였다. 명시는 우임금을 도아 동쪽 땅을 다스리고 만물을 양육하는데 공을 세워 동쪽 묘(卯)땅의 제후로 봉해졌다. 죽어서는 십이지신의 하나가 되었다. 일찍이 그가 말하기를, “내 자손들은 신명의 후예이어서 다른 동물과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니, 마땅히 자식을 입으로 토하여 낳을 것이다.” 하였다. 그 뒤로 과연 그렇게 되었다. 명시의 팔대 손자가 누(㝹, 토끼새끼 누)이다. 누로 말하자면, 세상에 전해지는 말로는 은나라 때에 중산에 살았다. 일찌기 신선술을 터득하여 능히 빛을 가려 몸을 감출 줄 알고 사물을 부릴 줄 알았다. 누는 항아(중국신화에 달을 관장하는 여신, 달의 정령)를 훔쳐서 두꺼비를 타고 달로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그의 후..

답유정부서(答劉正夫書):뛰어난 문장이란

유(愈)는 진사(進士) 부군(劉君) 족하(足下)에게 아룁니다. 주신 편지를 받아보니 나의 부족한 곳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미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또 부끄럽게도 나의 부족한 점이 진실로 지적하신 것과 같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주현(州縣, 지방)의 천거를 받아 진사과(進士科)에 응시(應試)한 자는 어느 선진(先進)의 집엔들 찾아가지 않겠습니까? 선배의 문하에 후배가 찾아오면 선배가 어찌 그 성의에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찾아오면 접대하는 것은 온 성안의 사대부가 모두 그렇게 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나만이 불행하게도 후배를 접대한다는 명성이 났으니, 명성이 있는 곳은 비방이 돌아오는 곳입니다. 찾아와서 묻는 자가 있으면 감히 성실히 대답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자가 와서 “문장을 지을 때 누..

답풍숙서(答馮宿書)나의 허물을 일러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

편지를 보내어 나의 과오를 일러주셨으니, 나에 대한 우정(友情)이 지극한 그대가 아니라면 내가 어디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벗 사이의 도리가 끊어진 지 오래여서, 서로 바른말로 충고(忠告)하거나 도덕과 학문을 서로 권면(勸勉)하는 일이 없는데, 나는 무슨 행운으로 그대 같은 벗을 만난 것입니까? 나는 세속 사람들이 귀가 있으면서도 자기의 허물을 듣지 못하는 것을 항상 딱하게 여기면서 나도 자신의 허물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오늘 이후로는 그대에게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족하(足下)는 나와 사귄 지 오래이니, 내가 지키는 바는 족하도 잘 아실 것입니다. 내가 경사(京師, 수도)에 있을 때에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들의 비방이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였는데, 그때 족하께서 나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