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고전산문] 배움이란 무엇인가 / 정약용

배움이란 무엇인가? 배움이라는 것은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릇된 점을 깨닫는 것이다. 그릇된 점을 깨닫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바른 말에서 깨달을 뿐이다. 말을 하는 데 있어서, 쥐를 가리켜 옥덩이[璞, 옥돌 박]라고 말하였다가 이윽고 이를 깨닫고서 말하기를 ‘이것은 쥐이다. 내가 말을 잘못하였다.’ 하고, 또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말하였다가 이윽고 이를 깨닫고서 말하기를 ‘이것은 사슴이다. 내가 말을 잘못하였다.’ 한다. 그리고 이미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나서 부끄러워하고 뉘우치고, 고쳐야만 이것을 배움이라 하는 것이다. 자기 몸가짐 닦는 것을 배우는 사람은 ‘악한 일은 아무리 작아도 하지 말라.’ 하는데, 글 짓는 것을 배우는 사람도 악한 일은 아무리..

[고전산문] 인( 仁) 또는 의(義)라는 이름이 성립하려면/ 정약용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이름은 일이 행위로 실천된 이후에 성립한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행위가 있고 나서 비로소 그것을 인(仁)하다고 부를 수 있기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기 이전에는 인(仁)이라는 이름이 성립되지 않는다. 나를 선하게 하고 나서 이를 행동으로 실천한 것을 두고 의롭다고 한다. 나를 선하게 하기 전에는 의(義)라는 이름이 성립하지 않는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절하는 행동이 있고 나서 비로소 예(禮,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와 질서)라는 이름이 성립한다. 여러 현상과 사물에 대한 분별이 뚜렷하고 명확해진 다음에 지(智, 지혜 지)라는 이름이 성립한다. 이런즉, 마치 복숭아씨나 살구씨처럼 어떻게 인의예지라는 네 가지의 알맹이가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잠재하고 있다고 하겠는가? 안연이 공자에게 인..

[고전산문] 감사론(監司論):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이 다 죽을 것이다

밤에 담구멍을 뚫고 문고리를 따고 들어가서 주머니를 뒤지고 상자를 열어 의복ㆍ이불ㆍ제기(祭器)ㆍ술그릇 등을 훔치기도 하고 가마솥을 떼어 메고 도망하는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굶주린 자가 배고픈 나머지 저지른 것이다. 칼과 몽둥이를 품에 품고 길목에 기다리고 있다가 길가는 사람을 가로막고 소ㆍ말과 돈을 빼앗은 다음 그 사람을 찔러 죽임으로써 증거를 없앤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본성(本性)을 잃은 어리석은 자의 소행일 뿐이다. 수놓은 언치를 깐 준마를 타고 하인 수십 명을 데리고 가서 횃불을 벌여 세우고 창과 칼을 벌여 세운 다음 부잣집을 골라 곧장 마루로 올라가 주인을 포박, 재물이 들어 있는 창고를 전부 털고 나서는 창고를 불사른 다음 감히 말하지 못하도록 거듭 다짐을 받는 자가 도적..

[고전산문] 종일 시끄럽게 떠들어도 금하지 않는 것

내가 초천(苕川)의 농막(墅 농막 서, 농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날마다 형제ㆍ친척과 유산(酉山)의 정자에 모여 술을 마시고 오이를 먹으면서 시끄럽게 지껄이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술이 얼큰하게 오르자, 어떤 사람이 술병을 두드리고 술상을 치면서 일어나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이익을 좋아하여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권세와 영화를 잡는 데 미혹되어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며, 어떤 사람은 담담하게 인적을 멀리하고 자취를 감춰 현달하지 못하니 애석한 일이다.”하였다. 나는 벌주 한 잔을 부어 꿇어앉아 권하기를, “옛날에 반고(班固)는 지나간 사람들을 품평(品評)하고는 마침내 두헌(竇憲)의 잘못에 연루되었고, 허소(許劭)는 당시의 사람을 품평하여 마침내 조조(曹操..

[고전산문] 시(詩)의 근본

『오늘날에 있어서 시율(詩律)은 마땅히 두공부(杜工部 두보(杜甫)를 가리킴)로써 공자(孔子)를 삼아야 한다. 그의 시가 백가(百家)의 으뜸이 되는 까닭은 《시경》 3백 편의 유의(遺意)를 얻었기 때문이다. 《시경》 3백 편은 모두 충신, 효자, 열부(烈婦), 양우(良友)들의 진실하고 충후한 마음의 발로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면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뜻이 서지 않고 학문이 순전하지 못하며 대도(大道)를 듣지 못하여, 임금을 요순(堯舜)의 성군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혜택을 입히려는 마음을 갖지 못한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는 것..

[고전산문] 학문의 방법

‘용모를 움직임’[動容貌 동용모], ‘말을 함’[出辭氣 출사기], 안색을 바로하는 것’[正顔色 정안색]이 학문을 하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니, 진실로 이 세 가지에 힘을 쓰지 못한다면 아무리 하늘을 꿰뚫는 재주와 남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끝내 발을 땅에 붙이고 다리를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폐단은 말을 함부로 하고 멋대로 행동하여 도적이 되고 큰 악(惡)이 되며 이단(異端)과 잡술(雜術)이 되어서 세상에 못하는 일이 없게 된다. 나는 ‘삼사(三斯)’로써 서재(書齋)에 이름하고자 하는데, 이는 '거칠고 태만함을 멀리하며[斯遠暴漫 기원폭만], 비루하고 패려함을 멀리하며[斯遠鄙倍 기원사배], 진실에 가깝게 한다[斯近信 기근신]' 함을 이름이다. 지금 너를 덕에 나아가게 하..

[고전산문] 마음 속에 보답을 바라는 근성을 버려라

여러 일가 중에 며칠째 밥을 짓지 못하는 자가 있을 때 너희는 곡식을 주어 구제하였느냐. 눈 속에 얼어서 쓰러진 자가 있으면 너희는 땔나무 한 묶음을 나누어주어 따뜻하게 해 주었느냐. 병이 들어 약을 복용해야 할 자가 있으면 너희는 약간의 돈으로 약을 지어 주어 일어나게 하였느냐. 늙고 곤궁한 자가 있으면 너희는 때때로 찾아 뵙고 공손히 존경을 하였느냐. 우환(憂患)이 있는 자가 있으면 너희는 근심스러운 얼굴빛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환의 고통을 그들과 함께 나누어 잘 처리할 방도를 의논해 보았느냐. 이 몇 가지 일을 너희들은 하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여러 집안에서 너희들의 급박하고 어려운 일에 서둘러 돌보아 주기를 바랄 수 있느냐.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이 먼저 나에게 베풀어주기를 바라..

[고전산문] 시비(是非)와 이해(利害)의 기준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大衡]이 있는데 하나는 시비(是非)의 기준이요, 다른 하나는 이해(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종류의 큰 등급이 생기는 것이다. 옳은 것을 지켜서 이익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요,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켜서 해를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나쁜 것을 좇아 이익을 얻는 것이며, 가장 낮은 등급은 나쁜 것을 좇아서 해를 받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21권 "아들들에게 부친 편지들" 중에서-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다산 시문집 제 21권 성백효 (역) ┃ 1986

[고전산문] 문장은 학식이 속에 쌓여 그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

내가 열수(洌水) 가에 살 때였다. 하루는 묘령(妙齡)의 소년이 찾아왔는데 등에는 짐을 지고 있기에 그것을 보니 서급(書笈 책상자)이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저는 이인영(李仁榮)입니다.” 라고 하였고, (몇 구절 삭제하였음.) 나이를 물으니 열아홉이라고 했다. 그의 뜻을 물으니 뜻은 문장에 있는데, 비록 공명(功名 과거시험을 통과해 벼슬에 오르는 것)에 불리하여 종신토록 불우하게 살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서급을 쏟으니, 모두 시인재자(詩人才子)의 기이하고 청신한 작품들이었다. 파리 머리처럼 가늘게 쓴 글도 있고 모기 속눈썹 같은 미세한 말도 있었다. 그의 뱃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기울여 쏟으니 흘러나오는 것이 호로병에서 물이 흐르듯 하였는데, 대개 서급에 있는 것보다도 수십 배나..

[고전산문]대체를 기르는 일과 소체를 기르는 일

만일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듯이 입으며 종신토록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는 날 사람과 뼈가 함께 썩어버리고 한 상자의 글도 전할 것이 없게 된다면, 삶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을 일컬어 삶이라고 한다면, 그 삶이란 금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제일로 경박한 남자가 있으니,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에 속하는 것을 지목하여 한사(閑事)라 하고,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지목하여 고담(古談)이라고 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그 대체(大體)를 기르는 자는 대인이 되고 그 소체(小體)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고 하였다. 저들이 소인됨을 달게 여기는데, 나 또한 어찌할 것인가? 만약 우리 인간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온 생애동안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자마자 사람과 뼈가 함께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