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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문장의 도(道)

수재(秀才)가 나에 대해서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소문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나에게 와서 문자를 묻는 것으로 일을 삼곤 하였는데, 그렇게 혼자서 자기 나름대로 학업을 닦은 지 1년쯤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나에게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권면하는 한마디 말을 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이것이 어쩌면 수재가 장차 과거(科擧) 공부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말을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일까? 과거와 관련된 글이라고 한다면 내가 물론 선배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단지 나이가 어렸을 적에 반짝하는 재주를 한번 보여서 갑자기 급제한 것일 뿐으로서, 대체로 과거 공부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해 본 일이 일찍이 없었을뿐더러, 그렇게 공부하는 것 자체를 구차하게 생각하고 있는 터이다. 왜냐하면 자..

[고전산문] 눈과 귀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길러 나간다

나는 젊었을 적에는 세상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면서 어떤 물건이든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사물들에 대해서도 그다지 좋아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했다. 이런 까닭에 일찍이 왕자유(王子猷, 자유는 왕휘지(王徽之)의 자(字))가 대나무를 좋아한 나머지 “하루라도 이 친구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라고 말했다는 고사(故事)를 접했을 때나, 소자첨(蘇子瞻, 자첨은 소식(蘇軾)의 자(字))이 이를 인하여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저속하게 되고 만다.(無竹令人俗)”고 읊은 시구를 접했을 때, 이를 비웃었다. 나는 말하기를,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청량(淸凉)하게 되지 못할까 하는 점만을 걱정해야지, 외물(外物)을 의지해서 저속하게 되..

[고전산문] 용졸재기(用拙齋記)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같지 않은 이유는 그들 속에 내재(內在)한 기(氣)와 이(理)가 서로 꼭 합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氣)라는 것은 원래 사람이 태어날 때 넉넉하게 받을 수도 있고 부족하게 받을 수도 있는 반면에, 이(理)라는 것은 처음에는 중(中)의 상태가 못 되었던 것이라도 중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가령 교(巧)와 졸(拙)을 쓰는 것으로 말하면, 선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후천적인 행위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졸(巧拙)이라고 흔히 병칭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강유(剛柔)나 강약(强弱)과 같은 상대적인 개념을 지닌 명칭은 아니다. 교(巧)라는 것은 보기 좋게 합리화하여 꾸미면서 장난을 치려고 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필경에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