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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벗의 도리

보내주신 편지에, “귀천을 막론하고 벗의 힘을 빌어 자신을 성취시켜야 한다(勿論貴賤 須友以成者).”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틀림없는 말이지요. 신(信)이 오행(五行)에서는 토(土)에 속하고, 토는 또 사계절에 기왕(寄王)*하며, 신(信) 역시 인의예지(仁義禮智) 속을 통행하면서 그 모두에게 성실(誠實)을 기하는 것이지요. 붕우(朋友, 마음이 통하여 서로 가깝게 사귀는 사람)는 신(信)에 속하는데 나머지 사륜(四倫)이 붕우의 강마(講磨, 학문이나 기술을 갈고 닦음)로 인하여 밝아질 수 있는 것이고 보면, 그 의의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옮긴이 주: 원문은 則其義固不重耶 즉 변치 않는 의리(義理)의 중요성을 강조). 그런데 세상 도의(道義,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나 의리)가 몰락하여 서로 아는 자라..

[고전산문] 독서에 대하여

많이 읽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며, 널리 보지 않으면 그 변화에 통달할 수 없다 글이란 옛 성현(聖賢)들의 정신과 심술(心術)의 운용이다. 옛 성현들이 영구히 살면서 가르침을 베풀 수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글을 지어서 후세에 남겨 후인들로 하여금 그 글 속의 말을 통하여 성현의 자취를 찾고 그 자취를 통하여 성현의 이치를 터득하게 하고자 한 것이니, 이 때문에 후세의 선비들이 한결같이 글을 읽어서 성현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며, 널리 보지 않으면 그 변화에 통달할 수 없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책 일만 권을 읽으면 붓끝에 신기가 어린 듯하다.[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글을 일천 번을 읽으면 그 의미가 저절로 나타난다...

[고전산문] 덕(德)을 진취하려면 치지(致知)를 해야 한다

엊그제 그대의 큰형과 막내 아우가 나란히 적막한 물가에 사는 나를 찾아주었는데 난초 같은 인정을 거의 잊기 어려웠습니다. 그대의 큰형님이 오셨을 때 토론한 바가 많았는데 맞는 말을 하였는지의 여부는 논할 것도 없이 깊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대가 보낸 편지의 뜻을 보건대, 관례에 따라 쓴 세속의 편지가 아니고 충심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중략)대체로 학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고문(古文)을 널리 통달하고 반드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귀히 여깁니다. 그러나 고문을 널리 통달하려는 것은, 많이 듣고 말을 신중히 하며 많이 보고 행실을 신중히 하며 자세히 묻고 명확하게 분변하며 많이 알고 덕을 쌓는 것을 말한 것이지, 세상 사람처럼 괴벽한 일이나 찾고 기이한 설이나 주워다가 ..

[고전산문] 차라리 서툴지언정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내가 병이 든 6년 동안 문을 닫고 바깥 출입을 끊었으나 손님의 접대는 그래도 전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이나 손님들이 병이 심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기운은 날로 줄어들고 혈기는 날로 쇠잔하여 정신과 의지가 점차 전만 못해지는 것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러던 것이 올 봄 이후로는 형세가 비탈을 내려가는 것과 같아서 거의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의학상으로 보아 죽을 만한 증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러고서야 어찌 이 세상을 오랫동안 볼 수 있겠느냐. 삶이란 이 세상에 잠깐 들른 것이요, 죽음이란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사실 슬퍼할 것은 없다. 그러나 슬퍼할 만한 일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이 세상에서 살아온 48년 동안 칭송..

[고전산문] 배움이란 뜻을 겸손히 갖는 것

독서하면서 의문을 갖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 의문이 적으면 진보도 적고, 의문이 많으면 진보도 많다는 주자의 말이 실로 바꿀 수 없는 정론이지. 그러나 계속 의심만 하고 일정한 귀결처(歸結處)가 없으면 마음이 점점 분란해져서 실효를 얻기가 어려운 법이라네. 나는 생각하기를 독서에 있어 자득(自得)이 비록 귀중한 것이지만 자득한 뜻이 먼저 마음 속을 가로막고 있으면, 선유(先儒)들 교훈에 대해 일부러 하자만을 찾아 내려는 병폐가 있을 염려가 있을 것일세. 따라서 우선 선유들의 주석대로 읽고 또 읽어 오래도록 침착하게 음미하고도 의문이 끝내 풀리지 않더라도 또 한번 생각하기를, “나의 일시적 얕은 견해가 선현들보다 나을 이치가 있겠는가. 이는 틀림없이 내가 잘못 본 것이지.”라 해야 하네. 그리고 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