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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에 물어보라

풀은 바람이 동쪽으로 불면 동쪽으로 향하고 바람이 서쪽으로 불면 서쪽으로 향한다. 다들 바람 부는 대로 쏠리는데 굳이 따르기를 피하려 할 이유가 있겠는가? 내가 걸으면 그림자가 내 몸을 따르고 내가 외치면 메아리가 내 소리를 따른다. 그림자와 메아리는 내가 있기에 생겨난 것이니 따르기를 피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따르지 않은 채 혼자 가만히 앉아서 한평생을 마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어째서 상고 시대의 의관(衣冠,남자의 웃옷과 갓이라는 뜻으로, 남자가 옷을 정식으로 갖추어 입음)을 따르지 않고 오늘날의 복식(服飾,옷과 장신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따르며, 중국의 언어를 따르지 않고 각기 자기 나라의 발음을 따르는 것일까? 이는 수많은 별들이 각자의 경로대로 움직이며 하늘의 법칙을 따르..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안(外眼) 즉 육체의 눈과, 내안(內眼) 곧 마음의 눈이 그것이다. 육체의 눈으로는 사물을 보고, 마음의 눈으로는 이치를 본다(外眼以觀物 內眼以觀理). 사물 치고 이치 없는 것은 없다(而無物無理). 장차 육체의 눈 때문에 현혹되는 것은 반드시 마음의 눈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쓰임새가 온전한 것은 마음의 눈에 있다 하겠다. 또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이 교차되는 지점을 가리워 옮기게 되면, 육체의 눈은 도리어 마음의 눈에 해가 된다. 그런 까닭에 옛 사람이 처음 장님이었던 상태로 나를 돌려달라고 원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정재중(鄭在中)은 올해로 마흔 살이다. 40년 동안 본 것이 적지 않을 터이다. 비록 지금부터 80살이 될 때까지 본다하더라도 지금까지 보다..

남과 나는 평등하며 만물은 일체이다

나와 남을 마주 놓고 보면, 나는 친하고 남은 소원(疏遠,서로 사이가 두텁지 아니하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함)하다. 나와 사물을 마주 놓고 보면 나는 귀하고 사물은 천하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도리어 친한 것이 소원한 것의 명령을 듣고, 귀한 것이 천한 것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욕망이 그 밝은 것을 가리고, 습관이 참됨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이에 좋아하고 미워하며 기뻐하고 성냄과 행하고 멈추며 굽어보고 우러러봄이 모두 남을 따라만 하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심한 경우에는 말하고 웃는 것이나 얼굴 표정까지도 저들의 노리갯감으로 바치며, 정신(精神)과 의사(意思, 사유 또는 사고 즉 무엇을 헤아리고 판단하고 궁리함)와 땀구멍과 뼈마디 하나도 나에게 속한 것이 없게 되니..

구도(求道)란 생각을 바꾸는 것

행교유거기(杏嶠幽居記 행교유거기) 늙은 살구 나무 아래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방에는 시렁과 책상 등속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손님 몇이 이르기라도 하면 무릎을 맞대고 앉는 너무도 협소하고 누추한 집이다. 하지만 주인은 아주 편안하게 독서와 구도(求道)에 열중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 작은 방에서 몸을 돌려 앉으면 방위가 바뀌고 명암이 달라진다네. 구도(求道)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바뀌면 그 뒤를 따르지 않는 것이 없다네. 자네가 내 말을 믿는다면 자네를 위해 창문을 열어주겠네. 웃는 사이에 벌써 밝고 드넓은 공간으로 오르게 될 걸세." 차거기(此居記) 이 거처는 이 사람이 사는 이곳이다. 이곳은 바로 이 나라 이 고을 이 마을이고, 이 사람은 나이가 젊으나 식견이 높으며 고문..

진정한 소유

시와 문장(詩文)을 지을 때 남의 견해를 베끼는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내는 사람도 있다. 남의 견해를 베끼는 것이야 저급하여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내더라도 고집이나 편견이 섞이지 말아야 참된 견해(眞見)가 된다. 또 거기에다 반드시 진재(眞材, 타고난 재능, 개성)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일가를 이루게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찾은 지 몇 년 만에 송목관(松穆館) 주인 이군 우상(虞上. 이언진의 字)을 얻었다. 군(君)은 문학의 도(道)에 있어서 식견(識見)이 높고 사유의 깊이가 심오하다. 먹 아끼길 금(金)처럼 하고 글 다듬길 단약(丹藥, 신선이 만든 영약)만들어 내듯 하여 붓이 한번 종이에서 떨어질라 치면 펼쳐낸 그대로 능히 세상에 전할 만 하다. 그러나 세상에..

문장을 가늠하는 마음 거울

시(詩)라 하면 당시(唐詩)가 아니면 시(詩)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요즘의 폐단이다. 너도 나도 한결같이 그 체제를 배우고 언어를 본받으니 똑같은 피리소리에 가깝다. 그것은 마치 꾀꼬리(百舌鳥)들이 하루종일 시끄럽게 울어도 자신만의 소리가 없는 것과 같으니 나는 그것을 매우 싫어한다.(惠寰雜著卷6, 李華國遺草序) 사람은 원래 자기의 국량을 타고 나는 법이다. 어찌 한당(漢唐)의 시문(詩文)에 구걸하겠는가. 문장을 가늠하는 마음 거울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게 있다. 그럴진대 내 어찌 그대를 위하여 바꿀 수 있겠는가. (惠寰詩鈔, 文有感作) 당(唐)의 문심(文心)이 높은 것도 아니고 한(漢)의 문심(文心) 또한 깊은 것도 아니다. 단지 우러나오는 자신의 성정(性情)을 스스로 읊조릴 뿐이다. 혼미..

환아잠(還我箴): 참된 나로 돌아오다

옛날 내 어렸을 땐 하늘의 이치(天理)가 순수했다. 지각(知覺)이 생기면서 이를 해치는 것 일어나 식견이 오히려 해(害)가 되고 재능도 해가 되어 버렸다. 부지런히 마음을 닦고 세상일을 배우고 익혀도 얽키고 설켜 풀어낼 길이 없다. 이름깨나 난 다른 사람에게 굽신대며 떠받들길 아무 씨, 아무개 공하며 각별히 추켜세워 뭇 멍청이들 혼을 뺐었는데, 옛 나를 잃고 나자 참된 나도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겉사람 나를 타고 가버리곤 돌아오지 않는다. 이에 떠나가고픈 마음 생겨 오래도록 궁리하다 마침내 꿈에서 깨어났다. 눈 떠보니 해가 떠있고, 훌쩍 몸 돌리니 어느 새 집에 돌아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전과 같이 변한게 없지만, 몸 기운은 맑고도 평온하다. 나를 가둔 잠금 풀고 굴레 벗어내..

보지 못한 반쪽

옛날 어떤 사람이 꿈에 미인(美人)을 보았다. 너무도 고운 여인이었으나 얼굴을 반쪽만 드러냈기때문에 그 전체를 볼 수 없었다. 반쪽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병이 되었다. 누군가 그에게, "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라고 일깨워 주었다. 그 사람은 바로 답답증이 풀렸다. 무릇 산수(山水)를 구경한다는 것은 모두 이렇다. 그뿐 아니다. 산봉우리는 비로봉이 으뜸이고, 물길은 만폭동이 최고다. 이제 그 둘을 모두 구경했으므로 반쪽만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음악을 듣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구소곡(九韶曲)*을 들은 자라면, 그것으로 그치고 다른 음악은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다.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제반풍록(題半楓錄)', 『혜환잡저(惠寰雜著)』- ※[역자 주]구소곡..

글 쓰는 이가 가진 필력, 이 한 가지만 있으면 족하다

천하에는 크게 억울한 것이 있다. 하늘과 땅의 억울함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 억울함에는 재주가 있으면서 요절하여 이루지 못한 자와, 이미 이루었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자가 있을 뿐이다. 요절하여 이루지 못한 것은 하늘이요, 자취와 흔적이 모두 없어져 전하지 않은 것은 땅이다. 하늘이란 것은 운명이므로 말할 것이 없겠으나, 땅은 그 처하는 바에 따라서 추켜 세우기도 하고 억누르기도 한다. 부귀하고 지위가 높아 권세가 있는 사람은 겨우 시를 읊조리고 짓는 것을 흉내낼 정도만 되어도 작품을 내고 문집을 간행하기를 예사로 한다. 반면에 사는 형편도 변변치않고 신분지체마저 구차한 사람은 문명을 흠모하고 숭상하는 때를 만날지라도 그럴 수가 없다. 비록 재주가 시와 문장이 모두 뛰어나고 학식과 식견이 아무..

호문설(好問說): 의심나면 묻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보다 더 나은 앎이란 없지만,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이치에 국한한다. 사물의 명칭이나 수치와 같은 것은 반드시 묻기를 기다린 뒤에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순(舜)임금은 묻기를 좋아했으며 공자는 예(禮)에 관해서 묻고 관직에 대해서 물었으니. 하물며 이보다 못한 사람에 있어서이랴! 내가 일찌기 《본초(本草)》를 읽은 후에 들판을 다니다가 부드럽고 살진 줄기와 잎을 가진 풀을 보고 그것을 캐고 싶어 시골 아낙네에게 물었다. 아낙네가, "이것은 '초오(草烏, 투구꽃)'라고 하는데 지독한 독이 있답니다"라고 하기에 깜짝 놀라 버리고 갔다. 본초를 읽기는 했지만 풀의 독에 거의 중독될 뻔하다가 물어서 겨우 면하게 된 것이니, 천하의 일을 자세히 따져 묻지 않고 망령되이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