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서파삼우설(西坡三友說)

서파삼우(西坡三友)란 나의 벗 이이립(李而立)이 스스로 지은 별호이다. 이립은 사람들 중에서 호걸이다. 소년에 육적(六籍, 육경, 즉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악경)에 통하여 우리 유학에 명성을 독차지 하였고, 을유년 과거에 급제하여 대간(臺諫)을 역임하고 인물을 전형하는 직임을 맡아 10년을 벼슬길에 있으면서 공로와 이름이 현저하니, 하늘이 낸 재능이라 이를만 하다. 


기해년 가을에 벼슬에서 물러나 남방으로 돌아와 영천(永川)의 서파리(西坡里)에 살면서 스스로 호하기를 서파삼우(西坡三友)라 하니, 세 벗이란 양수(陽燧, 구리로 만든 불꽃을 지피는 도구)와 뿔 술잔과 쇠칼이다. 그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벗과 떨어져 혼자서 사니, 사람들이 나에게 벗을 구하려하지도 않고, 나도 굳이 사람들에게 벗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제 세 물건으로 벗을 삼으니, 양수로 불 때는 것을 맡게 하고, 뿔 술잔으로 술을 숭상하고, 칼로 생선을 회떠서 스스로 술 붓고 스스로 마시면, 이내 취하고 또 배부르다. 그리하여 생선 나고 쌀 나는 시골에 소요하면서 태평성대를 구가하려 하니, 이것이 내가 벗으로 취한 뜻이다. 자네는 이를 크게 벌려 부연하기 바란다.”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벗이라는 것은 그 마음의 덕을 벗하는 것이니, 진실로 벗할 덕이 있다면 사람과 물건을 모두 벗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사람이 허다하게 물건으로써 벗을 삼은 자가 있었다. 그러나 물건 중에 취하여 벗으로 삼을만한 것이 유독 이것만이 아니거늘, 반드시 이로써 벗을 삼은 것을 어찌 참으로 입으로 먹고 배를 채우기 위한 계책이라고 하겠는가. 


자네가 말한 바는 겸사(兼事,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일도 아울러 함)이다. 내가 보기에는 양수는 불을 취하는 기구이다. 한번 그 불을 얻어 꺼지지 않게 하면 그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마치 마음의 밝은 덕을 한 번 밝혀서 그치지 않게 하면 그 밝은 것이 다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불을 취하는 자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면 반드시 날로 새롭고 또 새로와지는 공이 있으리니 어찌 화덕에 불을 피울 뿐이겠는가.


뿔 술잔이라는 물건은 바로 뿔로 된 것이니, 가운데가 비고 안쪽으로는 아래로 임하는 길이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밝거나 흐리거나 물건을 포용하는 아량을 품고 있다. 그 그릇을 쓰는 자가 그 덕을 생각하면, 반드시 도를 즐기고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 어찌 석 잔의 알지 못할 우려가 있겠는가.


칼이라는 것은 쇠이다. 그 기운은 가을에 배합되고 그 덕은 예리한데 있다. 그 예리함을 물체에 써서 진평(陳平)은 고기를 썰기를 매우 균등히 하였고, 그 예리함을 정치에 써서 두여회(杜如晦)는 사건 처리에 결단을 잘하였다. 이 칼을 잡고 그 쓰이는 바를 잘 살피면 칼 쓰기를 여유있게 할 것이니, 저희가 어찌 감히 나의 옳은 말을 당하겠는가. 


이는 안으로 스스로 몸을 닦는 방법과 밖으로 백성에 임하는 도리가 실로 이 세 가지 가운데 갖추어져 있고, 부자(夫子, 공자)가 말한 ‘유익한 벗’과 맹자(孟子)가 논한 ‘옛사람을 벗한다’는 말이 본래 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으로 이러한 벗을 얻었으니, 벗을 취하는 법을 안다고 이를 만하다. 그 취하여 잘 쓰는 바가 어찌 작겠는가. (이하생략)


-유방선(柳方善, 1388 ~1443), '서파삼우설(西坡三友說)', 『동문선(東文選) 제98권 / 설(說)』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임창재 (역)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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