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이치란 사물의 당연한 법칙
(상략) 이치란 사물의 당연한 법칙으로 저절로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무릇 소리, 빛깔, 모양, 상(象)을 갖추고서 천지 사이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모두 물건인데, 각각 당연한 이치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에 있어 마음이란 실로 한 몸의 주인이 되어 만선(萬善)을 지니고 만화(萬化)를 거느리며 동정(動靜)을 꿰뚫고 본말(本末)을 겸하는 것입니다. 몸에 갖추어져서는 시청(視聽)과 언동(言動)의 준칙이 되고, 사람과 접촉할 때에는 민이(民彝, 사람으로서 마땅히 늘 지켜야할 떳떳한 도리)와 천질(天秩, 자연의 섭리와 질서)의 법전이 되고, 사물에 미칠 때에는 애양(愛養, 사랑으로 기름)하고 절제(節制)하는 마땅함이 되는 것입니다.
고금(옛날과 지금)에 유행하여 한순간도 중단됨이 없고 천지에 가득 차서 한 곳도 빠뜨림이 없으며, 내면에 갖추어졌으나 외면을 관리하고 만 가지에 흩어져 있으나 하나에서 근본하니, 체(體)와 용(用)이 하나의 근원이고 드러나고 은미한 것이 간격이 없어 그 묘리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물건은 자취가 있고 이치는 형체가 없으니, 자취가 있는 것은 어지러워서 현혹되기 쉽고 형체가 없는 것은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습니다. 진실로 정밀히 생각하고 세밀히 살펴서 그 실재하여 바뀌지 않는 본체를 환하게 보지 못한다면, 엉성하고 천근하여 껍질만 거두고 정수(精髓, 핵심)를 버리는 자가 있을 것이고, 조금씩 주워 모아서 돈은 있으나 꿰맬 노끈이 없는 자도 있을 것이고, 심하면 어둡고 헷갈려서 쇳덩어리를 은이라고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니, 이것이 고금에 공통된 근심거리입니다.
〈우서(虞書)〉의 “정밀하고 한결같이 한다.(惟精惟一)”라는 것과 공자 문하의 “글로써 넓히고 예로써 요약한다.(博文約禮)”라는 것과 《대학(大學)》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을 극진히 한다.(格物致知)”라는 것과 《중용(中庸)》의 “선을 가리고 선을 밝게 안다.(擇善明善)”라는 것은 모두 이치를 밝히는 방법을 열어 보인 것입니다.
정자가 이 점에 더욱 상세한 설명을 더하였으니, 이른바 “혹 글을 읽어 도의(道義)를 강론하여 밝히고, 위로 인물을 논하여 시비를 분별하고, 사물을 응접하여 당부(當否)를 처리한다.”라는 것이 모두 격물치지의 본래 범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글을 읽는 한 가지 일을 더욱 급히 힘써야 합니다. 여러 책 가운데에 사서(四書, 논어, 맹자, 중용, 대학)를 가장 우선하고, 다음으로 여러 경전에 미쳐서 그 의리의 취향을 넓히고 사전(史傳, 역사와 전기(傳記))에 두루 통하여 그 득실의 자취를 상고하고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서언(緖言, 학문과 사상을 논하고 풀이한 글, 즉 논문집)으로써 길을 인도하는 증명으로 삼는다면, 학문의 문이 바르고 길이 분명하여 이단의 말과 간사한 학설이 나의 지식과 생각을 어지럽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글을 읽는 방법은 반드시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차례를 따라 점차적으로 나아가야 하며, 글자마다 탐색하고 구절마다 완미하여 들뜨지도 말고 천착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의사를 너그럽게 가져서 급박하게 구해서는 안 되며, 과정을 엄격하게 세워서 태만하게 보내서는 안 되며, 명백하고 충실한 뜻을 알아내되 지엽에 얽매이는 병폐를 절실히 경계해야 합니다. 읊조리기를 반복하고 깊은 맛에 푹 젖어 오랫동안 쌓아 나가다 보면 의심스럽던 마음이 떨어져 나가고 참된 모습이 드러남을 차츰 보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각각 따로 하나의 이치였으나 끝에는 곧 융합하여 전체가 하나가 되고, 처음에는 마음과 일이 서로 관통되지 않았으나 끝에는 곧 한 덩어리가 되어 간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신심(身心)과 내외, 민이(民彝)와 물칙(物則, 사물의 이치와 법칙)이 어느 곳에서든 그 마땅함을 얻지 못하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도에 나아가는 첫걸음이고 덕에 들어가는 앞길이어서 급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세의 이른바 박문강기(博文彊記, 폭넓게 사물을 두루 잘 보고 들어 잘 기억하는 것)라는 것은 이것과 대략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격물치지(格物致知)하는 학문은 자신에게 돌이켜 이치를 궁구하여 그 시비와 진망(眞妄, 실체와 허상)의 실상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이치가 넓어질수록 마음이 더욱 밝아지지만, 들은 것을 기억하는 공부는 남을 의식하고 박학다식을 자랑하느라 지식을 널리 주워 모으는 병폐로 흐르기 때문에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더욱 거칠어지는 것입니다. 대개 그 마음을 쓰는 데에 허실의 구분이 있기 때문에 귀결되는 효과에 득실의 차이가 있으니, 선택할 바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이하생략)
※[역자 주]
1. 염락관민(濂洛關閩) : 중국의 염계(濂溪)ㆍ낙양(洛陽)ㆍ관중(關中)ㆍ민중(閩中)으로, 송대 이학의 대표적인 네 학자를 가리킨다. 염계 주돈이(周敦頤)는 염계에 살았고,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 형제는 낙양에 살았고, 횡거(橫渠) 장재(張載)는 관중에 살았고, 회암(晦庵) 주희(朱熹)는 민중에 살았다.
-이상정(李象靖, 1711~1781), ☞'세 번째 형조 참의를 사직하고 이어서 임금의 덕을 면려하기를 진언하는 소 6월(三辭刑曹參議仍陳勉君德疏 六月)' 중에서 부분, 『대산집(大山集) 제4권 / 소(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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