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재목감을 복돋우고 기를 생각은 안하고

하늘이 이 세상에 생물을 만들어 낼 때 크고 작고, 빠르고 느린 것 등 각양각색이었다. 곧 작은 풀포기는 봄에 싹터서 가을에 시들지만 '대춘(大椿)'이라고 하는 큰 나무는 8,000년 동안을 자라다가 다시 8,000년을 노년기(老年期)로 산다고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생물은 반드시 오랜 세월을 경과한 뒤라야 크게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장석(匠石:훌륭한 목수)이 여러 해 동안 큰 집의 대들보로 쓸 나무를 구하러 다녔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는 어느 날 큰 산 속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다가 가시나무 덩굴과 잡초 사이에 끼여 있고 또 소나 말들에게 짓밟혀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여러 해 묵은 소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한탄하였다.  


"아하, 이 나무는 제대로 자란다면 오랜 세월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기둥이나 대들보감이 될텐데 이렇게 풀 속에 묻혀 있으니 애석하구나!"  


마침 곁에서 나무를 하던 나무꾼이 대답하기를, "보시오, 그렇게 한탄만 하지말고 그 나무 밑에 있는 풀과 가시나무를 뽑아 버리시구려. 그러면 비와 이슬의 자양분을 흠뻑 받아 마셔 나뭇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자랄 것이오. 그리고 뒷날 그것이 자라거든 베어다가 쓰시오."하였다.  


장석이 대답하기를, "아니, 이 세상 어디서든 내가 필요로 하는 그런 큰 재목을 못 구하겠소? 그런데 지금 이 나무를 길러 자랄 때까지 어떻게 기다린단 말이오." 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런 뒤에 그는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기가 필요로 하는 재목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 그러기를 백여 년, 그는 드디어 다시 그 골짜기를 찾아왔다. 그런데 옛날 그 소나무가 가시 덩굴과 잡초를 헤치고 자라서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솟은 낙락장송으로 되어 있었다. 장석은 비로소 자기가 찾던 대들보감을 찾은 데 만족해 하며 그것을 벨 준비를 하였다. 


그러자 옛날 보았던 나뭇꾼이 나타나더니 "집을 짓는데 있어서 큰 나무는 대들보로 올리고 작은 나무는 서까래로 만들어서 재목에 따라 알맞게 쓰는 것은 훌륭한 목수의 능력이오. 길고 좋은 나무만 골라 쓰고, 짧고 굽은 것을 버리는 것은 졸렬한 목수의 행위라오. 게다가 재목을 구하면서 그 재목을 기르지 않는 것은 마치 3년을 굶으면서도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소." 라고 말했다.


하기야 이런 일이 어찌 목수에게만 닿는 말이겠는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선비는 나라에 있어서 마치 집을 짓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큰 인재는 나라의 기둥과 대들보요 주춧돌이다. 그러하거늘 하물며 기둥 받침대나 짧은 덧기둥 같은 것을 만드는 데에 어찌 모두 큰 재목을 쓰려고 한단 말인가? 궁벽한 시골에서 곤궁하게 자란 사람이라고 어찌 저 소나무와 같은 지조가 없다 할 것인가? 


그리하여 저 장석(목수)은 여러 번 지나치면서도 북돋우고 기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이 세상에 재목이 없다고만 하는가? 참으로 이 세상에는 재목이 없는 것이냐, 아니면 재목은 있는데 기르지 않는 것이냐?  


-최충성(崔忠成, 1458∼1491), '잡설(雜說)',『산당집(山堂集)』- 


▲번역글 출처: 『우리 옛 산문의 풍경-고려 조선시대의 명산문선』(고정욱 엮음, 자우,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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