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물감을 발라야만 색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완정(玩亭, 이서구李書九)씨의 시론은 너무도 특이하다. 시(詩)의 성율(聲律)은 말하지 않고 시의 색채(色彩)만을 말한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시(詩)의 글자는 대나무와 부들에 비유할 수 있고, 시의 글월은 엮은 발과 자리에 비유할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글자는 그저 새까맣게 검을 뿐이고, 대나무는 말라서 누렇고, 부들은 부옇게 흴 뿐이다. 그런데 쪼갠 대나무를 엮어 발을 만들고 부들은 엮어 자리를 만들되, 줄을 맞추고 거듭 겹쳐서 짜면, 물결이 출렁이듯 무늬가 생겨나서 잔잔하기도 찬란하기도 하다. 그래서 원래의 누런 빛이나 흰빛과는 다른 새로운 빛깔을 만들어낸다. 그렇듯이 글자를 엮어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배열하여 글월을 이루었을 때에는 마른 대나무와 죽은 부들이 만들어내는 조화에 그치겠는가?"

 

그가 말하는 색채(色彩)라는 것은 모두 이런 식이었다. 완정씨가 하는 말을 수긍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만은 그의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때로는 하루 내내 열심히 이야기하여 그칠 줄 몰랐다. 하지만 나도 그 이야기가 어디에 근거하는지는 몰랐다.

 

병신년(1776) 여름에 완정씨가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자 서울에 있기가 싫어져 호상(湖上)에 나가 머물다가 거기서 다시 동쪽 산골짜기로 들어가 지냈다. 여러 달 만에 돌아와 자신이 지은 『호산음고(湖山吟稿)』 한 권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살펴보았더니 모두가 어부의 노래, 나무꾼의 소리로, 밝고 정갈하면서도 가락이 유창하였으며, 은은하면서도 생생하였다. 손으로 매만지면 만져질 것도 같고 곁눈질하여 살짝 보면 바로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를 놀려서 "이것은 또 무슨 색깔이지?" 물었다. 완정씨는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오? 눈(雪)을 그리고 달을 그리는 사람은, 다만 구름기운을 펼쳐놓음으로써 눈과 달을 저절로 볼 수 있게 만든다오. 꼭 금빛 물감과 붉은 물감을 발라야만 색채라고 하겠소?"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제야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대의 시(詩) 이야기는 육서(六書한자의 여섯 가지 구성 방법 또는 서체로, 곧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해성(諧聲), 전주(轉注), 가차(假借)가 있다)에 뿌리를 두고 있구려. 육서를 헤아려보면, 첫째는 상형(象形)이고, 둘째는 회의(會意, 뜻을 깨달음)이고, 셋째는 지사(指事, 사물을 가리켜 보임)지요. 그림은 상형에 장기(특징, 특색)가 있고, 시(詩)는 회의에 장기가 있으며, 산문은 지사에 장기가 있지요. 그러나 시가 없는 그림(不詩之畵 시적 감상이 깃들지 않은 그림)은 메말라서 운치가 없고, 그림이 없는 시(不畵之詩,  그림처럼 느낌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는 깜깜하여 빛이 나지 않지요. 시와 산문, 글씨와 그림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 되어야지, 제 각각이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데 그런 사실을 여기에서 알았소." 마침내 그가 한 말을 기록하여 서문을 삼는다.(안대회역)


-유득공(柳得恭,1748~1807)湖山吟稿序(호산음고서), 영재집(泠齋集) 제 7권/ 序 -


▲번역글 출처 및 참조: '고전 산문산책, 조선의 문장을 만나다' /안대회/ 휴머니스트 2008)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참조:☞湖山吟稿序


“무릇 시문(詩文)이란 자구 하나하나마다 한결 같이 그 정신이 유동(流動)해야만 살아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진부한 것을 답습하기만 한다면 죽은 글이 될 뿐이다. 일찍이 육경(六經)의 글 중에 정신이 살아있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내제(內弟)의 원고에 쓰다(題內弟稿)’>


"세상에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배울 수 있는 일이 있다. 또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도 있다. 그래서 말은 달라도 통역으로 서로의 뜻을 전할 수 있고, 전서(篆書)·예서(隸書)·초서(草書)는 글자체가 다르지만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형상은 서로 달라도 마음은 서로 같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살펴보자면 마음이 비슷한 것은 내면의 뜻과 의지인 반면 형상이 비슷한 것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박지원, 『연암집(燕巖集)』, ‘녹천관집 서문(綠天館集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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