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덕(德)의 도적 / 맹자
만장이 물었다. “공자께서 진(陳) 나라에 계실 때 말씀하시기를, ‘어찌 노(魯)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랴. 그곳에 있는 내 문하의 선비들은 뜻은 높으나 행하는 데는 서툴러, 진취적이면서도 그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옮긴이 주: 이 문장의 번역은 공자가 말한 원문의 본래 내용과는 약간 다르다. 공자는 번역처럼 말하지 않았다. 이는 번역자가 나중에 나오는 맹자의 해석과 기타 여러 주해의 일반적 풀이를 번역으로 앞서 삽입한 까닭이다. 덕분에 바로 이어지는 질문의 문장과 맥락상 맞지 않는다. 원문의 내용을 원문과 본문의 맥락에 맞게 나름 다시 번역하면 이렇다. "어찌 (내 고향) 노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함께 어울렸던 노나라의 선비들은 뜻이 크고 진취적이며, 처음 품은 뜻을 결코 잊지 않는데..."가 되겠다.)’ 하셨는데, 공자께서 진 나라에 계시면서 노 나라의 광사(狂士)들을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는 ‘중도(中道)를 행하는 사람을 찾아 함께 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狂者), 견자(狷者)와 함께 하겠다. 광자(狂者)는 진취적이고 견자(狷者)는 하지 않는 바(고집스럽게 가리는 것이 있는 바, 즉 굳센 지조가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셨다. 공자인들 어찌 중도를 행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으셨겠는가. 그러나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의 사람을 생각하신 것이다.” (옮긴이 주: 함석헌 선생은 이 대목을 강해하기를, "광(狂)이란 뜻이 커서, 거칠기는 하면서도 나가는 사람이니 희망이 있고, 견(獧)은 뜻이 크지는 못하지만 한번 잡은 담엔 잘 지키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지러운 세상에 있어서 능히 아니할 것을 아니하는 지조는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광(狂)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그 다음은 간다."고 해설하였다.)
만장이 말하였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때야 광자(狂者)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금장(琴張), 증석(曾晳), 목피(牧皮) 같은 사람이 공자께서 말씀하신 광자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어째서 광자라고 하는 것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뜻이 높고 말이 커서 입만 열면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 하고 말하지만,
평소 그들의 행실을 살펴보면 실천이 말을 따르지 못하는 자들이다. 광자를 또 얻지 못할 경우,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선비를 찾아 함께 하고자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견자(狷者)이다. 이들은 또 그 다음 단계의 사람들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문 앞을 지나면서 내 방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자는 오직 향원(鄕原)이다. 향원은 덕(德)을 해치는 적(賊, 도적)이다.’ 하셨는데, 어떤 사람을 향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 ‘광자들은 왜 저렇게 큰소리만 치면서 말은 행실을 살피지 못하고 행실은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가.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하는구나. 그리고 견자들은 어찌하여 행실을 이처럼 고단하고 각박하게 하는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에 맞춰 살면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나 들으면 되지.’ 하면서 덮어놓고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바로 향원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한 고장 사람들이 모두 후덕한 사람이라 칭하면 가는 곳마다 후덕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공자께서는 그런 사람을 ‘덕의 적’이라고 하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를 비난하려 해도 거론할 것이 없고, 꼬집으려 해도 꼬집을 것이 없을 정도로, 세속의 흐름에 동화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그의 처신은 마치 충신(忠信)한 듯이 보이고 그의 행동은 청렴결백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면 스스로를 옳다고 생각하므로, 함께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으니, 그래서 ‘덕의 적’이라고 하신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이비를 미워하는데, 가라지를 싫어하는 것은 벼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처세에 능한 자를 싫어하는 것은 의(義)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말 잘하는 자를 싫어하는 것은 신(信)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정(鄭) 나라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정악(正樂)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자주색(間色)을 싫어하는 것은 붉은 색(正色)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다.’ 하셨다.
군자는 상도(常道, 변함없이 한결같고 떳떳한 도리)로 돌아갈 뿐이니, 상도가 바르게 확립되면 서민이 선(善)에 흥기하고, 서민이 선(善)에 흥기하면 사특한 무리들이 없어질 것이다.”
-맹자(孟子) / 진심하(盡心下)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경서성독 /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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