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악한 사람도 책을 읽는다 / 박이장
다음과 같이 논한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온몸이 검은데 손가락 하나가 희다면, 희다고 말하면 되겠는가? 안 된다. 손가락 하나가 흰 것이 온몸의 검은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검다고 말하면 되겠는가? 역시 안 된다.
흰 것을 아름답게 여겨 검은 것을 숨기면 안 된다. 검은 것을 싫어하여 흰 것을 배척하는 것도 안 된다. 검으면 나는 그것이 검다는 것을 알고 희면 나는 그것이 희다는 것을 안다. 전신을 언급하여 논하면 검고, 손가락 하나를 가리켜서 논하면 희다. 어찌 전신이 검다고 손가락 하나가 흰 것을 가릴 수 있겠는가.
사람의 선악을 논하는 것도 이와 같다.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도 한 가지 일이 착하면 이 또한 착한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착하지 않다고 그 한 가지 착한 것을 아울러 배척하면 천하에 선을 행하는 것을 막는 것이니, 군자가 선을 인정하는 도가 아니다. 군자가 선을 행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고, 소인이 선을 행하는 것은 숭상할 만한 -원문 빠짐 - 일이 아니니, 그가 이 선을 확충하여 끝내 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할 뿐이다.
예전 송나라 조보(趙普)*는 태조를 도와 천하를 안정시키고 태종을 도와 태평성세를 이루었다. 애초에는 행정을 하는 도로써 알려졌으나, 태종이 그에게 학문을 권하니 조보는 《논어》를 읽었는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조보의 사람됨을 말하면 악을 행한 사람이지만, 조보가 《논어》를 읽은 것을 말하면 지극히 선을 행한 것이다. 세상에서 논하는 사람은 조보가 착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가 《논어》를 읽은 것을 아울러 배척하여 꾸짖지만, 이것은 군자의 논의가 아니다.
저 조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평소의 마음 씀과 행위는 역사에서 고찰하면 알 수 있다. 두 왕조에서 벼슬하였으나 하나도 볼 만한 것이 없었는데, 그 심한 것을 말하면 원수를 섬기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임금을 잊고 보답하지 않았다. 이런 것도 차마 할 수 있다면 무엇을 차마 할 수 없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조보가 나쁜 짓을 한 것은 온몸이 검은 것이고, 《논어》를 읽은 한 가지 일은 손가락 하나가 흰 것이다. 검은 것은 본래 검은 것이지만 흰 것도 검은 것인가.
《논어》란 책은 성인의 말씀과 행동을 기록한 것으로 만세에 모범이 된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도리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부리는 방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지 않음이 없으니, 책을 읽는 사람은 다른 데서 구할 것이 없다.
군자로서 성인의 책은 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음미하고 찾아서 본받는 것은 군자의 평소 행위이니 어찌 칭찬할 것이 있겠는가. 소인으로서 성인의 말씀을 보면, 사악한 사람을 물리치고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설은 자기를 배척하는 준칙 조목이고, 명분을 바로잡고 악한 자를 벌주는 논의는 자신의 죄를 다스리는 형구이니, 하나의 가르침과 하나의 교훈은 모두 그들이 꺼리는 것이다.
멀리 천 년 동안 성인의 책을 싫어하여 배척한 사람이 몇 사람인지 모른다. 조보는 《논어》를 의당 또한 미워하였을 것이다. 공격하고 배척하기에 겨를이 없었을 터인데 도리어 좋아하였고,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데 이르렀으니, 어찌 매우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문자(文字)가 있은 이후로 천지의 서가에 가득 차서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것은 책이 아님이 없다. 황당한 것으로는 장자(莊子)ㆍ열자(列子)의 말이 있고, 뒤섞인 것으로는 불교ㆍ노자의 말이 있으니, 넓고 넓은 세상에서 그것을 읽는 사람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조보가 일을 처리한 것으로써 그 마음이 있었던 곳을 궁구하면, 황당한 말과 뒤섞인 이야기 또한 어찌 꺼려서 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도리어 취하지 않고 《논어》가 몸과 마음에 절실한 것을 알고 수많은 책 가운데에서 뽑아 책상자 가운데 하나의 보물로 삼고, 조정에서 논의할 때마다 마음으로 살피고 거기에서 취하였다.
아!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정말로 속일 수 없다. 만약 양심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면 조보가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조보는 평소에 온갖 악행을 자행하여 꺼리지 않았는데, 오직 《논어》를 읽은 한 가지 착한 점이 있었을 뿐이다. 그의 한 가지 착함을 배척하여 여러 악함 가운데 몰아넣어, 변별하지 않고 함께 비난한다면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방법이 각박해지고 선을 행하는 길이 끊어진다. 군자가 사람을 논하는 데 어찌 이와 같이 편협하겠는가.
아! 조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양심이 드러난 것이다. 만약 양심이 드러난 것으로 인하여 확충하여 한결같이 《논어》의 가르침으로 스스로를 단속할 수 있었으면, 자기 한 몸의 악행과 두 나라에서의 변신(變身)*이 어찌 천하 만세 사람의 마음에 유감이 있었겠는가. 읽었으나 변화하지 못해 (역사에 악인으로 회자되는)조보가 되고 그쳤으니, 애석하다.
※[역자 주]
1.조보(趙普) : 송(宋)나라 태조(太祖)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개국 공신으로,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지고 정승과 태사(太師)의 직위를 제수 받았다. 《송사(宋史)》 권256 〈조보전(趙普傳)〉에 “그는 소싯적에 관리의 일만 익혔을 뿐 학술이 부족하였으므로, 그가 재상이 되었을 적에 태조가 항상 독서를 권하곤 하였다. 그는 만년에 이르러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는데, 매번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문을 닫고 상자에서 책을 꺼내 종일토록 읽었는데, 그 다음 날 정사에 임해서는 물 흐르듯 처결하곤 하였다. 그가 죽자 집안사람이 상자를 열어 보니 《논어》 20편이었다.〔普少習吏事, 寡學術, 及爲相, 太祖常勸以讀書. 晩年手不釋卷, 每歸私第, 闔戶啓篋取書, 讀之竟日, 及次日臨政, 處決如流. 其薨, 家人發篋視之 則《論語》二十篇也.〕”라는 말이 있다.
2. 두 나라에서의 변신 : 조보가 후주(後周)와 송(宋)나라에서 벼슬한 것을 말한다.
※옮긴이 주: 조보는 사자성어 '반부논어'(半部論語) 의 유래가 되는 인물이다. 반부논어는 '반권의 논어'라는 뜻으로,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자신이 가진 지식을 겸손하게 표현할 때 사용된다. 송(宋)대 나대경(羅大經)의 산문집인 ‘학림옥로(鶴林玉露)’가 그 출전이다. 송의 재상 조보(趙普)가 태조의 뒤를 이어 태종이 황제로 즉위하자. 고하기를 “신이 평생 아는 바로는 정녕 이 말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옛날 책 ‘논어’의 절반으로 태조를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하게 하였고, 지금은 그 절반으로 폐하를 도와 태평성대에 이르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조보는 권력과 권세 지향형 정치인으로서는 그 재능과 재주가 탁월한 인물이었지만, 그 행실과 행사에 있어서는 악인으로 후대의 유학자들에게 평가되는 인물이다.
-박이장(朴而章, 1547~1622), '조보가 《논어》를 읽은 것을 논함〔趙普讀論語論〕', 용담집(龍潭集)제4권 / 논(論) -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 김익재 양기석 (공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