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밖에서 온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려서야 / 신익성
보내준 편지를 받으니 논란하는 내용이 종이에 가득한데 억양이 반복되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으니, 이른바 은하수의 끝을 알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팽조(彭祖)의 윤정(輪井)은 지극한 보신책이요, 공자의 불혹(不惑)은 성대한 도덕이며, 맹자가 주읍(晝邑)으로 나간 일과 증자의 어머니가 베틀북을 던진 일은 모두 상황에 따른 당연한 이치입니다*. 위험한 담장 아래 서지 말라는 훈계와 후환에 대한 염려*는 모두 이유가 있어서 하신 말씀이니, 후세 사람으로서는 가슴에 새기고 따라야 마땅합니다.
공자는 위대한 성인이고 증자와 맹자는 성인에 버금가는 사람이며 팽조는 지인(至人)입니다. 만약 옛 성인과 지인의 출처와 언행을 갑자기 보통 사람에게 요구한다면, 어찌 구릉이 태산처럼 높아지지 못하고 냇물이 바다처럼 깊어지지 못한다고 하는 정도에 그치겠습니까.
저는 어려서 공부를 하지 못했고 늙어서도 불량하여 지금은 시골의 어리석은 일개 병자일 뿐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관직에 오른 지 40년 동안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일이 적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가 반드시 장수하는 것도 아니고, 이익을 도모하는 자가 반드시 복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천도는 돌고 돌며 화복은 정해진 운수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사람은 이치를 분명히 살피지 못하여 누군가가 강개하여 시사를 논하면 망언이라고 꾸짖으며, 이익을 잊고 의를 취하는 사람이 있으면 높은 담장(무너질 우려가 있는 위험한 담장) 아래 서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무너지듯 휩쓸려 수습할 수가 없으니 참으로 슬픕니다.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밖에서 온 것(自外而至者, 즉 남이 전해 준 이야기로, 자기의 눈으로 직접 그 실체와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비록 베틀북을 던졌지만, 증자는 필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높으신 소견에는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역자 주]
1. 기천(杞泉) :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 1589~1645)으로, 호가 기천이다. 선조의 여덟 째 아들로 모친은 인빈 김씨(仁嬪金氏)이다.
2. 팽조(彭祖)의 윤정(輪井) : 팽조는 8백 년을 살았다는 전설의 인물이며, 윤정은 수레바퀴로 덮은 우물이다. 팽조는 우물을 들여다볼 적에 자신의 몸을 큰 나무에 묶고 수레바퀴로 우물을 덮은 뒤에야 보았다고 한다.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말한다. 《東坡全集 卷66 代滕甫論西夏書》
3. 맹자가 주읍으로 나간 일 :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날 때 주읍에서 사흘 동안 묵은 뒤에 출발하였다. 윤사(尹士)가 이를 비난하자 맹자는 제나라 임금이 태도를 바꾸기를 기다린 것이라고 답하였다. 《孟子 公孫丑下》
4. 증자의 어머니가 베틀북을 던진 일 : 증자의 어머니가 베를 짜고 있었는데, 누군가 증자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였다. 증자의 어머니는 믿지 않았으나 세 사람이 차례로 똑같은 말을 전하자 베틀북을 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 《戰國策 秦策》
5. 위험한 담장 아래 서지 말라는 훈계와 후환에 대한 염려: 맹자가 말하기를, “운명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 서 있지 않는다.[知命者, 不立乎巖墻之下.]” 하였다. 《孟子 盡心上》 또, “남의 불선함을 말하다가 후환을 어찌하려는가.[言人之不善, 當如後患何.]” 하였다. 《孟子 離婁下》
-신익성(申翊聖, 1588~1644), '기천에게〔杞泉〕 ', 낙전당집(樂全堂集) 제9권 / 척독(尺牘)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6
※[옮긴이 주]: 증자(증삼) 어머니의 일화는 전국책의 '증삼살인(曾參殺人)'의 고사다. 증삼살인은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뜻이다. 증삼은 공자 제자 중에서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인물로, 후세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증자(曾子)'라 칭했다. 증삼살인은 '비록 사실이 아닌 거짓일지라도 반복되어 말해지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일이 진실로 여겨진다는 것'을 비유할 때 쓰인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진실성 효과(true effect)'라고 한다. 이는 "거짓진술의 노출회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경향성"(린 해셔와 데이비드 골드, 1977)을 말한다. 즉 개인이 동일한 진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될수록 거기에 점점 익숙해지고 이때문에 그 진술이 비록 거짓일지라도 결국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다만, 거짓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가 요구된다. 첫째 그럴듯 해야하고, 둘째 동일하게 반복되어야 하며, 세째, 듣는 사람 각자에게 무언가 중요한 손익이 뛰따르는 영향력이 있음이 지속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최근의 영화 '스피닝맨(Spinning Man)'은 반복되는 진술과 압박적인 상황에 의해 결국은 사실이 아닌 허구를 진실로 믿게 되는 인간의 심리적 취약성을 이야기한다. '진실이라고 해석한 것을 말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특징적으로 반복되는 대사다. 영화는 비록 그저 애써 억누르고 감출뿐 차마 드러낼 수 없는 무의식적인 욕망과 관련짓고는 있지만, '진실성 효과' 에 엮인 인간의 딜레마를 잘 설명해 준다. 참고로 증삼 어머니의 반응에 대해서 의문을 갖거나 혹은 주관적인 관점에서 비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화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어머니가 도망을 간 결정적인 이유는, 아들을 불신해서라기보다는 당시 살인에 관한 노나라의 형법에 있다. 즉 연좌제, 친족에게 살인자와 똑같은 책임을 물었기때문이다. 당시 연좌제에 걸리면, 죄인과 관련된 삼족이 동일한 죗값으로 멸문지화를 당했다. '남이 전해 주는 이야기, 밖으로부터 온 이야기에 굳이 마음이 흔들릴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각별히 분별력과 식견이 요구되는 요즘, 선생의 글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