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졸(拙)을 길러 뜻을 저버리지 않는 편이 낫다 (養拙堂記) / 신개
나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소활(疏闊, 꼼꼼하지 못하고 어설픔)하여 항상 시장이나 조정의 기교*(서로 경쟁하여 명예나 이익을 다투어 머리를 굴리고 재간을 부리는 것)를 싫어하였다. 성 남쪽의 한가하고 궁벽한 곳, 누추하고 좁은 거리에 양졸당(養拙堂)을 짓고 일상의 동정(動靜)을 오직 졸(拙)과 함께하여 잠시라도 잊지 않았으니, 달 밝고 고요한 밤 뭇 동물들이 쉴 적이면 베개를 베고 누워 솔바람 소리를 듣곤 하였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내가 너무 오래도록 졸(拙)을 기르고 있다고 나무라는 이도 자못 있었고 나 또한 의문이 들기도 해서 이제 그만 끊어 버리고 떠나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졸(拙)은 또 애틋하게 미련을 둔 듯 기꺼이 떠나려 하지 않았으니, 마치 성난 기색이 있는 듯하였다.
내가 갑작스럽게 깨달은 듯 뉘우치며 말하기를, “내가 졸을 좋아한 것이 여러 해가 되었으니, 장차 교(巧)가 그러한 나를 싫어하여 오려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실로 그렇게 된다면 졸은 떠나보내고 교는 오지 않아서, 두 가지를 모두 잃는 지경이 되어 내가 황황(遑遑, 조급한 마음에허둥지둥하는 모양새)히 의지할 곳이 없어 마치 상갓집 개*처럼 되지나 않을까 몹시 걱정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그전처럼 졸을 길러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너(拙)는 비록 볼만한 형체나 소리는 없으나 신묘한 기지와 밝은 식견은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 내가 이욕(利慾)을 가까이하고자 하면 너는 도척(盜跖)과 백이(伯夷)*의 행실을 들어 규간(規諫, 옳은 도리를 들어 지적함)하였고, 내가 명예를 구하고자 하면 범려(范蠡)와 대부 종(大夫種)*의 일을 들어 질책하였으며, 내가 속임수를 행하려고 하면 옛날 매우 간사한 자가 피해를 당하고 매우 어리석은 자가 끝내 천수를 누린 경우를 두루 들어서 깨우쳐 주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의로움을 해치고 이치를 저버리며 도를 손상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타일러서 바로잡아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높은 벼슬을 하고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졸(拙)이 붙잡아서 지켜 준 데 힘입은 바 크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이는 필시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다.”하였다.
이에 깊이 자책하기를, “나는 실로 비루한 사람이다. 은혜를 저버리고 의(義)를 잊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 가운데에서도 큰 것이다. 예전과 같이 그대와 함께 당에서 졸을 기를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서둘러 사과하고 다시 그(拙)를 머무르게 하였다.
그(拙)와 더불어 나의 생을 편안하고 한가하게 마칠 것이다. 또한 이 당(堂, 양졸당)을 후대에 오래도록 전하고자 하여 자손들로 하여금 어떤 경우에도 바꾸지 못하게 하였다. 만일 내 말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효도 아니고 충도 아닐지니 내 장차 천지신명에게 고할 것이다.(이하생략)
※[역자 주]
1. 양졸당기(養拙堂記) : 신개는 한양 천도 후인 1394년(태조3) 21세 때 출생지인 송경에서 한양의 정릉동(貞陵洞)으로 이주하였다. 양졸당(養拙堂)은 새로 옮긴 거처에 붙인 이름인데, 이 기문(記文)은 신개가 말년에 지은 것이다. 세속의 명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의리와 도를 지키며 살고자 하는 뜻을 양졸(養拙)이라는 당호(堂號)에 담았다. 《寅齋集 卷4 年譜》
2. 시장이나 조정의 기교 : 명리(名利)를 다투는 곳을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1〉에 장의(張儀)가 진 혜왕(秦惠王)에게 “신이 들으니, 명예를 다투는 자는 조정으로 가고 이익을 다투는 자는 시장으로 간다고 하니, 오늘날 삼천과 주실은 천하의 시장이요 조정입니다.〔臣聞之 爭名者于朝 爭利者于市 今三川周室 天下之市朝也〕”라고 하였다. 삼천(三川)은 진(秦)나라 때 설치한 군(郡) 이름이고, 주실(周室)은 주나라 왕실이다.
3. 상갓집 개 : 의지할 데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황망해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정(鄭)나라에서 제자들과 떨어져 홀로 있을 때, 정나라 사람이 자공(子貢)에게 공자를 일러 마치 상갓집 개와 같았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4. 도척(盜跖)과 백이(伯夷) : 도척은 춘추 시대의 큰 도적이다. 수천 명을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며 온갖 악행을 자행하였다고 한다. 《莊子 盜跖》. 백이(伯夷)는 은(殷)나라 말에서 주나라 초기의 현인이다.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치려고 했을 때, 아우인 숙제(叔齊)와 함께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굶어 죽었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5. 범려(范蠡)와 대부 종(大夫 種) : 범려는 춘추 시대 월(越)나라 대부(大夫)로, 자는 소백(少伯)이다. 월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멸망시켰으나, 구천을 더 이상 섬길 수 없는 군주라고 생각하고 떠났다. 뒤에 장사를 하여 거부가 되었다고 전한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國語 越語下》. 대부 종(大夫 種)은 춘추 시대 월나라 대부로, 문종(文種)이라고도 한다. 자는 소금(少禽), 자금(子禽)이다. 월왕 구천을 도와 오왕 부차를 멸망시키는 데 공을 세웠으나 뒤에 참언을 믿은 구천의 명으로 자결하였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신개(申槩 1374~1446), '양졸당기(養拙堂記)', 인재집(寅齋集) 제1권 / 기(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윤승준 (역)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