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부끄러움을 아는 것 / 이언적

군자가 지녀야 할 도리 중에서 귀한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내면을 살피고 헤아려서 마침내 잘못이 없어야 비로소 마음에 부끄러움 없다고 능히 말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있을 때부터 천지간의 일들에 이르기까지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누가 보든 말든 듣든 말든 상관없이 오직 한결같이 스스로 삼가하여 어디에도 잘못으로 인한 부끄러움이 없어진다면, 비로소 중심을 잡고 뭇 사람들 가운데 의젓하게 우뚝 서서 오직 사람된 도리(道)에 의지한다 자신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허물과 실수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모호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마치 흰 종이에 찍힌 점 하나와 같아서 비록 그리 흠이 되지 않을 듯해도, 마침내 그 점 하나가 드러남으로 인하여 그 마음의 부끄러움은 마치 사람많은 길거리에서 매 맞는 것 이상의 수치가 될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떳떳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예상하지도 기대조차 못한 재앙이 자신의 몸에 닥쳐와 멀고 먼 척박한 땅에 유배되거나, 뭇 대중들이 모인 데서 처형되는 처지를 맞이하게 된다면.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떳떳하고 당당한 기운이 넘쳐나게 해야 함이 마땅하다. 세상이 비록 나를 용납하고 인정해 주지 않을지라도, 나를 알아주는 건 오직 하늘이다.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며 하늘이 내린 사람의 도리를 기뻐할수 있다면,  비록 재앙가운데서라도 마음의 태연함을 능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소인(小人)의 심사는 이와 일절 반대라서 어질지 못하고 사람답지 못함(不仁)을 수치로 여기지 않으며, 불의(不義)를 두렵게 여길 줄 또한 모른다.  오직 자신의 사욕과 눈앞의 이익을 위해 다투며 악한 짓을 예사로 행한다. 낯가죽이 두꺼워서 수치라곤 전혀 모르니, 더러운 종기를 빨고 찬탈하고 시해하는 등 이익이 된다면 무엇인들 마다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사람의 천성(天性)에 심겨진 사람됨의 근본이 되는 마음이다. 이를 보존하고 잃는데서 광(狂, 경솔하고 성급함, 여기서는 '가볍고 천박하다'는 의미)과 성(聖, 고결하고 성스러움)이 나뉜다. 그 근본이 이러한데 어찌 감히 스스로 살피고 헤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털끝만 한 차이에서 시작하여 엄청나게 다른 차이의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만약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수치로 안다면,  큰 허물은 아마도 없게 될 것이다. 

※참고: 4자 압운의 시 형식으로 이루어진 장문의 좌우명(座右銘)을 원문과 번역문을 토대로, 익숙치 않은 한자 말을 나름 이해하는 산문 글로 다시 풀어서 옮겼다.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지치명〔知恥銘), 회재집(晦齋集)제6권/ 명(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3

※[옮긴이] 주: 윗글은 이언적선생이 스스로 삼가하고 경계하는 목적으로 쓴 좌우명(座右銘)이다. 원문은 4자 압운의 시의 형식으로 46행, 총 184자로 구성되어 있다. 압운(押韻)은 시에서 시행의 일정한 자리에 발음이 비슷한 음절의 같은 운이 규칙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요샛말로 하자면 라임(rhyme)에 해당된다.  참고로, 옛글에서 명(銘)은 주로 경계의 목적으로 사용되며, 또 어디에 기록하였냐에 따라 공적인 기록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은나라 탕왕(湯王)은 날마다 사용하는 세숫대야에 "진실로 나날이 새로워져서,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나날이 새로워지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명문을 좌우명으로 새겨 두었다. 이를 반명(盤銘)이라한다. 주나라 무왕은 자신의 앉은 자리 전후좌우에 명을 새겼는데, 이를  '석사단명(席四端銘)'이라고 부른다.  그 내용은 이렇다. ‘비록 편하고 즐겁더라도 반드시 마음을 경건하게 지니고(安樂必敬), 나중에 후회하고 뉘우칠 일을 행하지 말며(無行可悔), 잠시 잠깐이라도 그와 같은 생각을 지니지 말 것이며(一反一側 亦不可不志),  은(殷)나라의 주(紂)가 나라를 망친 경계의 거울이  가까이 있으니(殷鑑不遠),  나라를 어떻게 망쳤는지는 그가 대신한 하(夏)나라의 걸(桀)왕을 보면 될 것이다(視爾所代)." 

"말세(末世)의 풍속이 매우 각박해졌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한데, 종일토록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는 자도 있다. 한 가지라도 혹 뉘우쳐 깨달음이 있으면 수천수만 명의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가서 대적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또한 스스로 이전에 자신의 행동이 어떠하였는지 생각해 보아 참으로 흡족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용납될 곳이 없는 듯이 여기면서 스스로 다시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恥之於人 大矣)”라고 하는 것이며,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수치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無恥之恥 無恥矣)”라고 하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이 털끝만큼 싹트는 것이 무방하다는 생각은 곧, 스며든 줄도 모르고 졸지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독인 짐독(鴆毒)과도 같다."(이익, ' 질손 이가환이 훈계의 글을 써 달라고 하기에 써서 부치다(姪孫家煥求訓誡書以寄之)', 성호전집)

"맹자가 말하기를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치욕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孟子曰 無恥之恥 無恥矣〕 . 사람들이 위협하여 겁탈하고 좀도둑질하거나, 남녀가 문란하거나, 재물과 이익에 탐욕을 부리거나, 언어가 추악하거나, 음식에 탐욕을 부리거나, 어깨를 웅크리고 아첨하며 웃거나, 비굴하게 등창이나 치질을 빨고 핥으며 아첨하는 것은 모두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스스로 후회하고 깨달아 부끄러움이 없음을 깊이 부끄러워한다면, 비로소 치우치고 편벽된 처지(類)를 알 수 있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게 되어 드디어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니, 마음과 뜻에 하자가 없고, 굽어보고 우러러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으며, 의리를 행해도 흠이 없고, 소문을 들어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게 되면 해진 솜옷을 입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고가난한 골목에서 자주 끼니를 걸러도 안빈낙도하고 호연지기가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되니, 이것이 부끄러움을 아는 지극한 공효이다. 앞서 말한 맹자의 말은 곧 부끄러움을 제거하는 약이다. 맹자에 “만일 부끄러움을 아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인(仁)을 행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약을 복용하는 방도이다." (위백규, '無恥之恥 無恥矣' 존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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