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귤이 탱자가 된 이유 / 안자춘추

안영(晏嬰)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齊)의 명재상이다. 제나라 3대 왕에 걸쳐 재상을 역임했다.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비단옷을 입지 않을 정도로 근검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였으며, 덕과 지혜가 높은 현자(賢者)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상은 안영을 안평중(晏平仲) 혹은 안자(晏子)라는 존칭으로 불렀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 열전에서, “직언을 하되 군주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이른바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만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잘못을 보완할 것만 생각한다(進思盡忠, 退思補過)'는 말 아니겠는가? 안자가 살아 있다면 내가 그를 위해 말채찍을 들 만큼 그를 흠모한다.” 고 칭송할 정도로 군주앞에서도 반드시 옳고 그름을 따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안영은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을 가졌다고 한다. 사기 관안열전에는 안영의 키가  6척(당시 척도로, 1척=22.5cm)이 채 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 척도로 하면 135cm에 못 미친다. 그만큼 작고 왜소하다는 말이 되겠다.  사람들이 안영을 외모로 평가하여 함부로 보거나 멸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에 관한 일화들을 역사기록에 남길 정도였다.

안영이 
초나라의 초대를 받아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초나라의 영왕은 안영의 지혜와 명망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어떻게든  안영에게 모욕을 주어 위세를 꺽고 기선을 제압하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인사가 끝난 후, 초 영왕은 대뜸 안영에게 말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는가?"

이에 안영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나라는 길가는 사람들이 어깨를 서로 비비고 발꿈치를 서로 밟고 다닐 정도로 많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초 영왕은, “아, 그래요? 제나라엔 사람은 많아도 인재는 없나 봅니다. 그대처럼 작고 보잘것 없는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으니 말이오.” 

그러자 안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네, 잘보셨습니다.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 보냅니다. 작고 보잘 것없는 나라에는 작고 보잘것 없는 사람을, 큰 나라에는 그에 걸맞는 큰 사람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온 것입니다.”

그때 마침 대궐 마당에서 옥리가 한 죄인을 끌고 지나갔다. 초 영왕은 보란듯이 그를 불러 세우고 큰소리로 물었다. “여봐라! 그 죄인은 무슨 나쁜 죄를 지었는가? ”  옥리가 대답하길, “도둑질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초 영왕은 다시 물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옥리가 대답하였다.  "제나라 사람입니다.” 이 말에 초 영왕은 다시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는가?”  그러자 안영은 태연히 대답하기를, “제가 듣기로, 강남 땅에서 자라는 귤은 맛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귤을 강남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립니다. 귤과 탱자는 잎사귀만 서로 비슷할 뿐 그 열매의 맛은 같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강남과 강북의 흙과 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 제나라 죄인은 원래 제나라에 살고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순박하고 선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초나라에 와서 도둑놈이 된 것은, 다름아니라 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에 초 영왕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대신에 안영의 지모와 지혜를 인정하고 크게 탄복하며, 그를 위해 환영의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초 영왕은 제나라에 안영이 있는 한 함부로 넘볼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다.

▲출전: 안자춘추(晏子春秋) 

※[옮긴이주]: 고사성어 '귤화위지(橘化爲枳)'의 내용이 되는 고사다. '귤이 변하여 탱자가 되었다"라는 뜻으로  '환경에 따라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이 변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같은 의미를 가진 고사성어로 "마중지봉(麻中之蓬)"이 있다. 마중지붕은 '삼 밭 속의 쑥' 이라는 뜻으로, 바닥에 붙어 구부러지게 자라는 쑥일지라도, 삼 밭 속에 나면 꼿꼿하게 위로 자라는 삼처럼 꼿꼿하게위로 자란다는 의미다.  둘 다 공히 인간공학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풍토, 즉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제도적 요인, 인적 요인,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고사성어들이다. 이외에도 맹자 어머니의 일화인 맹모삼천(孟母三遷)의 고사, '곧은 판자들 사이에 굽은 판자를 겹쳐 쌓아 두면 굽은 것이 곧게 바뀌게 된다'는 옛 목공들의 지혜도 같은 의미의 맥락을 갖고 있다. 사회 철학적인 측면에서 소위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토대가 되는 주요 명제, 즉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경제정치학 비판 요강' 서문)'도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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