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평생토록 독서를 한 이유 / 허목
노인이 재능과 지혜가 낮아 평생 독서를 하였는데,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부족함을 보충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또 세속의
글을 좋아하지 않고 삼대(三代) 때의 고문(古文)을 즐겨 읽었으나 끝내 소득은 없고 좋아하는 것만 여전하였다.
아래로 좌씨(左氏, 춘추좌씨전), 《국어(國語)》, 《전국장단서(戰國長短書)》, 선진(先秦) 시대의 책, 서한(西漢, 반고가 편찬한 전한의 역사를 서술한 역사서인 한서(漢書)), 태사공(太史公, 사마천), 상여(相如, 사마상여), 양웅(揚雄), 그리고 제자백가의 책들까지 두루 읽었으며, 또 그 아래로는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의 글이 가장 고문에 가까워서 60세가 되도록 1만 몇 천 번씩을 읽었다.
〈우서(虞書)〉와
〈하서(夏書)〉의 광대하고 시원스러운 글은 따라갈 수 없지만 상시(商詩)의 예스럽고 심오함과 주고(周誥)의 난삽함과 선진 시대
글들의 웅건(雄健)함과 《한서》의 넓고도 큰 규모는 모두 내가 소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자질이 노둔하여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자백가의 글들은 기괴하고 잡다하여 경전(經傳)의 전아(典雅)하고 순정(純正)함만 못하였다.
나 자신에게 돌이켜 내 것으로 만들려고 연마한 지도 7, 8십 년이 넘었으니 문장에 있어 부지런하고 깊이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마음속으로도 거의 무궁한 경지에 들어갔다고 생각되지만 고인(古人, 옛 현인)과 견주어 보면 현격히 차이가 나서 따라갈 수 없다. 고인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
개괄해서 논한다면 문(文)이란 천지의 문장이지 사람의 지혜와 기교로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세(上世)에 포희씨(包羲氏 복희씨(伏羲氏))는 하도(河圖)를 보고 《역(易)》 팔괘(八卦)를 그리고, 문자를 만들어 천하의 의사를 소통시켰다. 그 문(文, 무늬, 문채(文彩))은 하늘에 있어서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예악문장(禮樂文章)이 된다. 문장의 성쇠는 세도(世道,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와 이치)의 고하(高下)에 달려 있다.
인문(人文)은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를 거쳐 주(周)나라 때에 이르러 매우 융성해졌는데, 동주(東周) 이후로 공자가 죽고 주나라의 도가
쇠하자 제후들이 번갈아 패자(霸者)가 되어 백가(百家)가 일어났다. 진(秦)나라 때에 이르러 법술(法術)만을 사용하고
시서(詩書)를 불태우니 천하가 마침내 크게 어지러워졌다. 성인의 문(文)이 노자(老子)보다 낮아지고 백가에 흩어졌으나 상세와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아서 천지의 순후(純厚, 온순하고 인정이 두터움)한 기(氣)가 아직 남아 있었다.
굴원(屈原)이
〈이소(離騷)〉를 짓고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하였는데, 황제(黃帝)로부터 시작하여 인지(麟止)에까지 이르렀다. 양웅이
《태현경》과 《법언》을 지었는데, 양웅이 죽자 고문이 없어졌고 위진(魏晉) 이래로 남김없이 사라져버렸다. 당나라 때 한유와
유종원이 서한(西漢, 한서(漢書) 즉 한나라 시대의 문장)의 뒤를 이었는데, 한유의 글은 순후(淳)하고 유종원의 글은 각박(刻)*하였다. (※옮긴이 주: 참고로 '각박(刻薄)'의 뜻은 '인정이 없고 삭막하다'의 의미다. 실제로 당송팔대가로 불리우는 유종원의 산문은 각박하지 않다. 번역대로 하자면 앞단락의 맥락상 유종원의 글에 대한 평가로는 뭔가 적절치 않다. 찾아보니 마지막 문장의 원문은 '韓淳而柳刻(한후이유각)' 이다. 다시 나름 풀이하면 '한유의 글은 부드럽고 온화하며, 유종원의 글은 깍아낸듯이 세련되었다'.)
송나라가 일어나 삼대의 정치는 밝혔으나 문학은 훈고(訓詁, 경서(經書)를 풀이하거나 글자나 문구를 해석하는 것)로
돌아갔다. 명나라가 오랑캐를 몰아내고 천하를 안정시키고는 스스로 자기들의 공적을 높이 사서 진(秦)나라와 한나라를 업신여겼지만 그
정치가 속임수에서 비롯되어 생각해 낸다는 것이 6경(經)의 다스림이 아니고 그 문장 또한 그러하였다.
나는 문학을 익힌 지 90년이 되었다. 비록 고인(古人)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늙어서도 고인(古人)의 글 읽기를 좋아하여 고인(古人)의 무리가 되었다.(이하생략)
-허목(許穆 1595~ 1682년), '자평(自評', 『기언(記言) 제58권/산고속집 / 문장(文章)』-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홍기은 (역) |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