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강독] 사람을 건드리지 마라
『큰 나라 다스림이 작은 생선 지짐 같다. 도를 가지고 천하에 디늘면(다다르면, 다스리면) 굿것(귀신)도 재주를 부리지 못한다. 굿것이 재주가 없음 아니라, 그 재주가 사람을 상하지 않는 것이다. 그 재주가 사람을 상치 않음 아니라, 거룩한 이(聖人)가 또한 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이 서로 상치 않으니,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이 서로 서로 돌아간다.』(老子 60장, 원문생략)
생선을 지지는 법인즉 건드리면 못쓴다. 건드리면 다 부스러져 그 맛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작은 생선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작은 생선을 지지는 사람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나라는 큰 것이지만, 잘못하면 상하기 쉬운 것이 작은 생선 같으니, 정치하는 사람이 특별히 마음을 써서 국민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노자는 다른데서, 天下는 神器(신기)라 不可爲也(불가위야)라고했다. 神器란 말은 아주 신비롭고 미묘한 물건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과 재주로 하려해서는 안된다. 爲者敗之(위자패지)라, 재주로 정치하려면 반드시 잘못되고 만다.
그럼 어떻게 하나? 도를 가지고 하란 말이다. 도는 사람의 지혜와 힘을 초월한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진리다. 정치하는데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이 돼가는 것은 스스로 하는 이 도(道)의 힘이기 때문에 거기 잘 순종해 가는 것이 사람의 지혜다.
건드리는 것은 사람이 제 재주로 해보려 하기 때문이다. 법을 까다롭게 만들고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여서 자꾸 법을 고치고 국민을 번거롭게 하면, 작은 생선의 그 미묘한 맛이 없어지듯이 사람 속에 있는 오묘한 천성이 상해 버린다. 그러면 순진한 마음이 없어지고 속이려는 꾀와 서로 믿지 못하고 각박하게 하는 마음만 늘어간다.
그러면 나라는 잘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진 정치가가 할 때는 절대 국민을 건드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제 속에 근본 품고 있는 그 인간성에 의하여 행동하도록 한다. 그렇게 국민을 믿고 들어가면 정치가 바로 된다는 말이다.
이(莅)는 이(蒞)로 쓰기도 하고 이(涖)로 쓰기도 하는데 임(臨)과 뜻이 같다. 우리 말로는 지금 잘 쓰지 않아 옛 말로 돼 버렸으나 디는다(다다르다)고 한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는 뜻. 위에서 말한 그러한 사람의 재주로써 지배하자 다스리자 하는 생각이 아니고, 아무것도 하자는 생각없이 도에 따라하는 태도를 가지고 국민에 임하게 되면 저절로 다스려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제 자리에 평안히 있어서 살기 때문에 굿것조차도 무슨 작폐를 부리지 못한다.
옛날사람은 굿것(귀신 또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신령한 힘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영적 존재)이라는 외지 않는 이상한 힘을 가진 것이 있어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그것들의 장난으로 된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궂은 일이 있으면 그런 굿것을 능히 제어 하는 힘이 있는 사람을 불러 그것을 물리쳐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것을 굿한다고 했고 그 사람을 무당이라 했다.
여기 노자의 말은 정치가 잘 되면 그런 굿것이 궂은 일조차 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설명하기를 굿것이 재주를 부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재주를 부린다해도 그 재주가 사람을 상하지 못한다. 신은 보통은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쓰이나 옛날의 신이라는 생각은 지금의 것과는 다르다. 여기는 그 굿것의 이상한 힘, 재주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다시 말하기를 굿것이 재주를 부려도 사람에게 궂은 일이 생기지 않는 까닭은 정치하는 어진 이가 사람을 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과 굿것이 서로 상치 않으니 서로서로 좋은 일이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 이것은 현대 과학으로 하면 설명이 아주 잘 되는 사실이다. 그 굿것이란 것은 사실 사람들의 심리에 어떤 고장이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인데, 과학 지식이 부족한 옛날은 그것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굿것이란 것의 존재를 믿었다. 그런데 사람 심리의 고장은 사회생활이 부드럽고 미끄럽게 돼 갈 때는 적고, 세상이 평안치 않을 때에 많다.
오늘날 정신병이 많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그 원인이 이 사회에 가지가지의 모순이 있는 데서 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주로 정치에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노자의 이 말은 참 뚫어 본 말이다. 어진이가 국민을 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가 사람의 연한 천성, 양심을 해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면 굿것이 있어도 장난을 못한다. 즉 사회가 평안하면 사람들의 정신에 고장 일어나는 일 없고, 정신에 고장 없으면 굿것이 작폐를 하는 것으로 믿으리 만큼 사람을 불안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결국의 요점은 사람을 건드리는 정치 하지 말라, 다시 말해서 국민을 다스리려는, 몰아치려는 국가주의, 정치주의의 정치 하지 말라는 말에 있다. 이러고 보면 오늘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비뚤어지고 미신이 성하고 가짜 종교가 많은 까닭을 알 수 있다.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 정치가 그 근본 원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 산에 나무가 없는 것을 걱정해서 어떻게 하면 산림 보호를 잘 할 수 있을까 해서 영국에서 그 전문가를 초빙해 왔던 일이 있었다. 아주 나이 많은 노인이었는데, 와서 정부의 부탁대로 이곳 저곳의 산을 많이 돌아보고는 돌아가면서 마지막에 준 말이 명답이었다.
Let them leave it untouched!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 해라!
참말 옳은 말이 다. 공연히 조림한다고 해마다 돈 쓰고 사람 고생시키고 하지만 그럴 것 없다. 건드리지만 말아라. 그러면 산림은 저절로 무성해진다. 어리석게, 심는다고 떠들지 말고 자연이 심어 주고 길러 주는 것 방해나 하지 말란 말이다.
잘못이 땅에도 하늘에도 있지 않다. 하늘 땅은 나무를 무한으로 길러내는 힘이 있다. 사람이 아무리 해도 그보다 더할 수 없다. 사람이 자연의 하는 것을 자꾸 망가쳐 버리기 때문에 나무가 성하지 못하는 것이지, 다른 무슨 까닭이 있는 것 아니다. 재주 모자라는 줄로 알 필요 없다. 건드리지만 마라! 묘하고 연한 인간성을 자연대로 두어라!
왜? 사람은 다 속에 옳은 일하고 나라 사랑하잔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로 만들어지는 것 아니라 하늘이 주어서 가지고 있다. 소위 정치가 한다는 것은 거기 방해가 될 뿐이다. 오늘 세계는 서양식 정치 사상이 그 폐해를 극도로 들어내는 때다. 이런 때에 건드리지 말라는 말은 아주 그 병의 바른 데를 찌르는 침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 성격에 결함이 많이 있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여러 백년 잘못된 정치 밑에서 생긴 나쁜 버릇이다. 이것을 고쳐야 하는데, 해방 후 새 역사라 하기는 하면서도 국민 성격은 더 못쓰게 됐다. 이것이 다 사람을 가만두지 않고 건드리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정치하는 사람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서 재주보다 원리 원칙을 믿어야 하고, 국민은 또 이것을 알아 설혹 정치가 건드리고 못살게 굴더라도 절대 건드림을 받지 않는 정신을 길러야 할 것이다. 즉 스스로를 작은 생선으로 알고 지켜야 한다. 그 작다는 데 깊은 진리가 있다.(1972.10)
-함석헌, '건드리지마라', 씨알의소리 1972. 10월 15호(하늘 땅 바른 숨 있어-삼민사)-
▲글출처: 함석헌 전집
"혜환거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백성들과 상대한다고 해도 그들과는 차이가 있는 법, 내가 본래 소유한 것이 아니니 어찌 그들의 근본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랴? 백성은 본래 착하니 화나게 하지 말고 마음껏 선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라! 백성은 본래 즐거우니 괴롭히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도록 내버려 두라! 백성은 본래 부유하니 빼앗지 말고 마음껏 넉넉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라! 백성들은 본래 오래 사니 병들게 하지말고 마음껏 장수하도록 내버려두라." (이용휴, 送申使君善用之任高興序)
**사족달기: 以道莅天下(이도리천하) 는 "도(道)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또는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만사를 대한다"라고 해석해도 그 본래적 뜻이 모두 통한다. 여기서 天下(천하)는 나라, 정치, 사회, 사물, 개인, 인간관계 등등 인간 세상사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큰 의미를 담고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함석헌 선생께서 설명하시는 사려깊은 통찰의 요체는 굳이 나라의 다스림, 곧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두루 인간사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생선지짐을 다루듯 함'으로써, "'양쪽 모두 서로 해치고 상하지 않으니 그 덕이 서로에게 돌아간다'(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부량불상상 고덕교귀언)" 이라는 이 말은 세상만사를 대하고 보는 바른 식견과 마음의 자세를 돌이켜 보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여기에는 당연히 인간도 인간관계도 포함된다. 교육이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모든 관계의 요체는 여기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개인의 본성을 제 입맛 제 틀에 맞게 하려고 깍아내고 파내는 것을 다반사로 한다. 깔짝대며 마음을 애둘러 건드리고 제 뜻대로 조종하기를 예사로 한다. 그러다가 자칫 수가 틀리기라도 하면 언제 그랬냐며 변기에 물내리듯하며 돌아선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주변에 널려 있다. 그 침대의 주인인 프로크루스테스는 너가 아니라 바로 나일 수도 있다. 스스로 예외로 생각하는 한,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작은 화분에 관상용으로 화초를 심고 방안에서 키워보려고 애쓰다가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해 보니 더욱 그렇다. 어째튼 본성을 건드리지 않고 독립성을 가진 주체로써 서로 의지하며 격려하고 복돋아 주는 것의 중요성과 그 속에 존재하는 올바른 성장의 동력과 정신적 발전의 가치를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한편으로 '이문회우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의 잠언도 그렇고, "거대한 사원을 떠받치는 기둥은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며, 나무는 서로의 그늘아래서는 자랄 수 없다"는 스캇펙의 말을 다시 상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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