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내 마음으로 남을 헤아려 판단해서는 안된다

무릇 내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 판단하는 것이 가장 일을 해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일이 의사(疑似,비슷하여 분간키 어려움, 긴가민가함)한 것만을 보고서 그 사람의 마음을 자기 혼자 헤아려 보고는 희로(喜怒)의 감정을 발한다면, 그 사람이 억울하다면서 원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대개 일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요소가 있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혹 있을 수 있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은 그가 일을 분명하게 요량하지 못해 일 처리를 잘못한 탓일 수 있으니 그의 마음이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일이 잘못된 것을 보고 그 마음을 헤아려서 화를 냈다지만, 만약 그의 마음이 실제로 그렇지 않다면 이 또한 억울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경우를 당했을 때에는 무턱대고 그의 마음을 단정하지 말고서 기운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과연 그렇지 않다면 자연히 노여워할 일도 없게 되겠지만, 만약 그래도 의사(疑似)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진상을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처리할 일이요, 그가 그러했으리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반드시 그러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가 그러했다는 것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니, 이렇게 한다면 억울하게 느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이와 같이 제대로 자세히 살피지 못하게 되는 것 역시 노여워하는 기분에 좌우되기 때문이니, 반드시 그 실상을 파악해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끔 하려면, 반드시 자기 마음을 가라앉혀 노여워하는 감정이 없게 한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중략)


어떤 일을 고려(考慮)할 때 타당함(이치와 도리에 맞고 옳은 것)을 얻기란 쉽지 않다. 완전히 타당하게 되도록 고려하는 것은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기필(期必, 이루어지기를 기약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성인이 묻기를 좋아하고 살피기를 좋아하였으니, 이는 완전히 타당하게 되지 못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성인도 오히려 완전히 타당하게 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고 보면, 범인(凡人)의 경우야 더더욱 타당함을 잃는 것이 필시 많을 것이요 타당함을 얻는 것은 필시 적을 것이다. 이미 타당함을 잃었는데도 스스로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행한다면 일을 망칠 것은 뻔한 일이다. 타당함을 잃은 일이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모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환히 꿰뚫어 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잘못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이란 묻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또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서 남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대개 중인(衆人,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생각하면 타당한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여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른다면 그 일이 거의 실패하지 않겠지만, 자기 주장만 내세우면서 남의 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일은 모두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필부가 이와 같을 경우에는 그 피해가 그래도 적다고 하겠지만, 임금이 만약 이와 같다면 그 피해를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 학문(學問,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글의 맥락상 '사람됨의 도리와 세상이치를 알게하는 공부')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은, 몸에 옷이 없으면 안 되는 것과 같고, 입에 음식이 없으면 안 되는 것과 같고, 질병에 의약(醫藥)이 없으면 안 되는 것과 같다. 몸에 옷이 없으면 추위에 떨고, 입에 음식이 없으면 기아에 시달리고, 질병에 의약이 없으면 병세가 더욱 심해질 것인데, 이 세 가지 경우 모두 정도가 심해지면 사망에 이르고 말 것이다. 


사람에게 학문이 없으면 용렬하고 잡스러운 사람이 될 것이요, 심한 경우에는 악인이 되기까지 할 테니, 그 재앙이 사망에 이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고 보면 학문이 사람에게 있어 어찌 지극히 급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 가지의 일에 대해서는 사람들 모두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학문에 대해서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는 추위와 기아와 병으로 죽는 것이 재앙이 된다는 것만 알 뿐이요, 사람이 용인(庸人,어리석어 변변치 못한 사람)이 되고 악인이 되는 것이 재앙이 된다는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 사람의 현부(賢否,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야말로 어찌 사람에게 막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어찌 용인이 되고 악인이 되도록 자포자기해서야 될 일이겠는가.


-조익(趙翼1579 ~1655), ☞'도촌잡록(道村雜錄) 상(上)' 중에서 부분 발췌, 『포저집(浦渚集) 제24권/잡저(雜著)/도촌잡록(道村雜錄) 상(上)』-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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