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경보설(敬父說)

우봉(牛峯) 이군(李君)이 스스로 양직(養直)이라고 이름 붙이니, 그의 우인(友人)인 마읍(馬邑 한산(韓山) )의 이운백(李云白 가정(이곡)의 초명(初名) )이 불곡(不曲)이라고 자를 지어 주었다.


어떤 사람이 이를 문제 삼아 말하기를, “직(直, 곧을 직)에 대해서 불곡(不曲, 굽히지 않음)이라고 말한다면, 논리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직의 의미가 어찌 이 정도로만 그치겠는가. 대저 사물의 이치란 한 번 곧게 펴면 한 번 굽혀야 하는 법이니, 곧게 펴는 하나만을 고집해서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천지처럼 거대한 것 역시 움직일 때도 있고 고요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伸也〕’라고 한 것이다. 굽히기만 하고 펴지 않는다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요, 펴기만 하고 굽히지 않는다면 움직임을 존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곧게 펴기만 하고 굽힐 줄을 모른다면 그 곧음을 기를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직일곡(一直一曲)의 의미라고 할 것이다. 


순(舜) 임금과 같은 분은 대성인(大聖人)이시니, 그런 분이 마음을 보존하고 몸을 세우는 요체로 말한다면, 어찌 곧게 펴고 굽히지 않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그런 분도 어버이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를 들었다.* 이는 때로는 굽힌 연후에야 곧게 펼 수 있는 이치가 필연적으로 있기 때문이니, 곡(曲)과 직(直)의 관계도 이를 통해서 유추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쪽에만 얽매인다면, 그 곧음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 부친이 양을 훔쳤다고 아들이 고발하며 증거하는 것’과 같은 추한 결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천지의 도가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면서 조금도 차질이 없는 것은 오직 성(誠) 때문이요, 사물의 이치가 한 번 굽혀지고 한 번 펴지면서 조금도 잘못이 없게 되는 것은 오직 경(敬) 때문이다. 성과 경이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그 도리는 똑같은 것이다. 


《주역(周易)》에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곧게 하는 것은 소당연(所當然 당연하게 마땅히 해야 할 바)의 이(理)요, 공경하는 것은 곧게 함을 기르는 도구가 됨을 말한 것이다. 이를 미루어 자기의 밝은 덕을 밝히고(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新民)에 적용한다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간에 천리 아닌 것이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는 불곡을 고쳐서 경보(敬父, 공경하는 마음을 근본으로 삼음)라고 했다 한다.


※[역자 주]

1.어버이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를 들었다.:《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순이 어버이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를 든 것은 후사가 없게 될까 염려해서였다. 그래서 군자는 그것을 어버이에게 알린 것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舜不告而娶 爲無後也 君子以爲猶告也〕”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순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대해서는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옮긴이 주: 순임금의 아버지는 고수(瞽叟)다. 소위 악하고 나쁜 애비의 전형이다. 순이 자신의 혼사를 고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순을 미워하는 아버지 고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그가 악한 마음으로 혼사를 훼방놓아서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고수는 장님으로 순의 배다른 동생인 상을 편애하였다. 상에게 자신의 후사를 잇게 해주려고 순을 미워하고 여러 차례 죽이려고까지 시도하였다. 그럼에도 순은 이를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아비에 대한 자식의 도리와 형제의 우애를 지극히 다하였다. 마침내 아비 고수가 그의 진실된 효성에 감복하고 기뻐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백성을 또한 감화시켰고, 백성들은 이를 가리켜 '대효(大孝)'라고 하여 어버이를 섬기는 효의 모법으로 삼았다. 맹자는 만약 아비인 고수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묻는 질문에, 순임금은 자신의 지위를 초개같이 던져버리고 남몰래 아비 고수를  홀로 업고 먼 바닷가로 도망가서 효도를 다하며 숨어 살았을 것이라고 헤아렸다.)

2.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 육이(六二)에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외면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라는 말이 나온다.


-이곡(李穀, 1298~1351), '경보설(敬父說)'가정집(稼亭集) 제7권 /설(說)』-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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