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천지만물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제나라의 대부 전씨가 자기 집 정원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초청객이 천여 명이 되는 큰 잔치였다. 참석한 손님 중에서 생선과 기러기를 선물로 가져온 사람들이 있었다. 전씨가 이 선물을 보고 기뻐하며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늘은 특별히 우리 인간에게 후한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땅에 여러 종류의 곡식을 주어 불어나게 하고, 심지어 물의 생선과 하늘의 날짐승까지 만들어 사람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하셨으니 말입니다.”


이 말에 여러 손님들도 동감했다. 이 때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이가 열두 살 밖에 안 되는 포씨의 아들이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제 의견은 주인어르신의 의견과 다릅니다. 천지만물은 본래 우리 인간과 똑같이 생겨났고,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점에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나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원래 같은 종류의 생물끼리는 귀하고 천한 것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지혜의 힘이 크고 작은 것에 따라 어떤 것은 다른 것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또 서로 잡아 먹거나 먹히는 것입니다. 결코 서로가 누구를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람 또한 먹을 수 있는 것을 취하여 먹는 것일 뿐입니다. 


이럴진대 어찌하여 하늘이 본래 사람만을 위하여 만물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읍니까? 또한 모기와 쇠파리는 사람의 살갗를 깨물어 피와 피부를 먹고, 범과 이리는 사람의 고기를 먹습니다. 그렇다고해서 하늘이 본래 모기와 쇠파리만을 위해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어찌하여 하늘이 범과 이리만을 위하여 사람의 살을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열자(列子) 제8편 설부(說符)-


※옮긴이 주: 열자 [列子] 중국 고대 도가의 사상가. 이름은 어구(禦寇). 전국시대 BC 400년경 정(鄭)나라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열자에 대한 전기가 없다. 다만,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에 ‘열자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학자들은 열자가 실존인물이 아닌 도가에서 만든 가공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원본 『열자』(列子)는 전한(前漢)시대에 편집되었으나, 유실되었다. 진(晋)시대(3~4세기)에  이르러 가필(加筆)되어 오늘에 전하고 있는데, 『노자』, 『장자』 등 전국ㆍ진(秦)ㆍ한(漢) 시대의 도가의 책에서 취한 부분과 후한부터 진(晋)까지의 도가의 학설을 서술한 부분이 혼재되어 있다. 비록 통일된 사상을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사상사(思想史)상의 자료적 가치는 매우 높다.<철학사전(2009., 중원문화), 두산백과[네이버 지식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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