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비록 높은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일지라도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야

문집(文集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고금(古今)을 통하여 모두 몇 가(家)에 불과한데 세상에 전하여 행해짐은 넓고 좁음과 오래고 가까움의 차이가 없지 못하다. 


이것은 어찌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에 천심(淺深 얕음과 깊음)이 있고, 숭상하는 것에 경중(輕重, 가벼움과 무거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좋아하고 숭상함에 천심과 경중이 있는 것은 비단 그 문장의 기운에 높고 낮음이 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뜻에 정밀하고 거칢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문장은 장구(章句)를 전공하는 자들도 흉내내어 만들 수가 있으나, 정미한 의리로 말하면 식견이 투철하고 조예(造詣)가 깊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으니, 사람의 천성에서 우러나와 공공적(公共的)으로 취하고 버림을 속일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고봉(高峯, 기대승)의 문장만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일찍이 고봉을 뵌 분들을 만나 선생은 풍도가 뛰어나고 의논이 탁월하셨다는 말을 듣고는 선생보다 조금 늦게 세상에 태어나 미처 몸소 배알하고 대면하지 못함을 스스로 한스러워하였다.


현재 일선 부사(一善府使)로 있는 사문 조찬한(斯文趙纘韓)은 바로 공의 외손인데 공의 실적을 매우 상세히 말하면서 공이 퇴계 선생과 왕복한 서첩(書帖)을 가지고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그 긴 서찰을 보니, 질문하고 토론하는 즈음에 각기 자기의 소견을 다하여 반드시 모두 올바른 데에 돌아가려고 노력하였는바, 진실로 한묵(翰墨)을 희롱하여 언변이나 구사하고 글재주나 자랑하는 인사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퇴계는 항상 수렴하고 겸손하며 깨끗하고 고절한 도(道)로 스스로 지켰고, 고봉은 매양 초일하고 격양하며 직절하고 특출한 의리로 스스로 힘썼으니, 두 분의 기상이 합하지 않을 듯한데도 오직 독실히 믿어 의심하지 않고 서로 좋아하여 싫어함이 없는 뜻은 갈수록 더 친밀하고 정성스러웠다. 


그리하여 때로는 누르고 때로는 추어주었으며, 권면한 때도 있고 경계한 때도 있었다. 심지어는 짧은 간독에 있어서도 서로 권면한 것이 모두 서로 붙들어 주고 채찍질하며 절차탁마(切磋琢磨)한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비단 공이 퇴계 선생에게 질정(質正, 묻거나 따지고 헤아려 바로잡는 가운데서 얻는 가르침을 뜻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퇴옹(退翁)께서도 공에게 의뢰하여 유익함을 받은 것이 많았으니, 그 탁마하여 성취한 것이 깊다 하겠다.


공의 만년(晩年) 행장(行藏)은 세속에 따라 부침(浮沈)하지 않았고, 문사(文詞)에 나타난 것은 전중(典重)하고도 평아(平雅)한 운치가 많았으니, 그렇다면 비록 높은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이 있더라도 반드시 도(道)가 있는 분에게 나아가 질정한 뒤에야 이루어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然則雖高才美質 必待就有道而正焉 然後有成也)


지금 조 부사(趙府使)가 선생의 시문(詩文)까지 함께 간행하니, 글을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이 깊고도 중할 것이며 세상에 전하여 행해지는 것이 넓고 또 오래갈 것이다. 그러니 세교(世敎, 세상의 가르침, 교훈)에 관계됨이 어떻다 하겠는가.


조 부사는 간행이 끝나자 내가 일찍이 그 간첩(簡帖, 편지글을 모은 책)을 보고 감발(感發, 느끼고 마음이 움직임)한 바가 있다 하여 나에게 글 한 편을 책머리에 쓰도록 요청하였다. 이에 감히 사사로이 탄복한 것을 가지고 말하는 바이다.


숭정(崇禎) 기사년 납월(臘月) 모일에 옥산(玉山) 장현광(張顯光)은 쓰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고봉집 서(高峯集序)' , 『고봉집(高峯集)/고봉집 서(序)』-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역)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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