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학문의 묘(妙)는 비우는데 있다

(유종원은) 하진사왕삼원실화서(賀進士王參元失火書)에서 삼원에게 축하하기를, ‘화재로 집이 검게 그슬려버리고 그 담장마저 불타버려 이제 당신이 재물을 가진게 없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당신의 재능이 분명하게 드러나서 더렵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비로소 당신의 참 모습이 이제야 드러난 까닭입니다. 이는 축융(祝融 불의 신)이 그대를 도운 것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로, 이 말은 바로 자기가 문장을 익혔던 경험적 사실(事實)을 있는 그대로를 쓴 것이다. 재난을 당한 삼원을 오히려 축하한 것은 곧 자기를 위로하고 스스로 축하했던 경험에 근거한 까닭이다. 어째서인가?


유종원은 초년에 여러 서적들을 폭넓게 읽어 명성이 다양한 예술적인 방면에 널리 알려져 유명했다. 그래서 이미 그 마음에 쌓아 둔 것이 참으로 부유해서 마치 삼원의 집과 같았다. 


하지만 졸지에 세상으로부터 궁지에 내몰려 온갖 질책과 비난을 당하고 무리와 어울리지도 못하여 그 소외됨은 극도에 달하였다. 그래서 정신과 마음을 지탱하던 것들이 거의 닳아 없어짐에 이르렀다. 기량(技倆)은 소진(消盡)되고 산산히 흩어져 거의 사라졌다. 기억하고 외우고 있던 것 조차도 잊어버려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 속에 든 것들이 흩어지고 없어져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되었다. 


이는 마치 삼원 집안의 화재(火災)로 덩그라니 남겨진 폐허(廢墟)와 같다. 이런 연후에 비로소 척안(隻眼 외눈박이, 여기서는 '혜안,즉 남다른 특별한 식견'의 의미)이 활짝 열렸고, 고문(古文)의 도(道)가 빼어나게 맑고 담백한(雅潔) 경지로 크게 나아가게 되었다. 이 어찌 스스로 위안하고 어찌 스스로 축하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로써 말하건대, 학문의 묘(妙)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비우는데 있다. 없는 것을 채우는데 있지 않다. 하지만 요즘의 선비들은 모두 부지런히 읽고 힘써 외우는데만 급급한다. 그래서 뱃속 가득히 책을 펼쳐 놓는 것을 능사(能事)로 여긴다. 지혜롭지 못함이 어찌 이리도 심한가? 탄식할 일이다!


-김창희(金昌熙, 1844~1890), '유종원(柳宗元)의 글을 읽고 논하다(讀柳州文 三)중 [其三]',  석릉선생문집(石菱先生文集) /석릉집(石菱集) 제 5권 /회소류상편(會所頴上篇)-


▲참고: 원문과 번역글을 참조하여,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나름의 쉬운 글로, 글의 대부분을 의역하여 다시 고쳐 옮겼다. 유종원(柳宗元 773~819)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대문장가다. 


참조 번역글 출처: 다음 블로그 '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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