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있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은 애초에 듣지 말아야 할 것이요, 발설 말라 하면서 하는 말은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니, 남이 알까 두려운 일을 무엇 때문에 말하며 무엇 때문에 들을 까닭이 있소?


말을 이미 해 놓고 다시 경계하는 것은 상대방을 의심하는 일이요, 상대방을 의심하고도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오.


말세에 처하여 사람을 사귈 때는 마땅히 상대방의 말이 간략하고 기운이 차분하며 성품이 소박하고 뜻이 검약한가를 살펴보아야 하며, 절대로 마음속에 계교(計巧)를 지닌 사람은 사귀어서는 안 되고 뜻이 허황된 사람은 사귀어서는 아니 되지요.


세상에서 떠드는 ‘쓸모 있는 사람’이란 반드시 쓸모없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떠들어 대는 ‘쓸모없는 사람’이란 반드시 쓸모 있는 사람이지요. 천하가 안락하고 향리에 아무런 사고가 없는데, 참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재기(才氣)를 드러내고 정신을 분발하면서까지 경솔히 남에게 보여 주려고 애쓸 까닭이 있겠소.


이를테면,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르는 것은 겉보기에 용맹한 것 같지만 이는 곧 노인의 상투적인 버릇이요, 60만 군사를 굳이 청한 것은 겁쟁이 같지만 이는 곧 지혜로운 이의 깊은 꾀랍니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중옥에게 답하다 (答仲玉) 中 之1, 4', 연암집 제5권/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척독(尺牘)-


※[역자 주]

1.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르는 것 : 전국(戰國) 시대 조(趙) 나라의 명장 염파(廉頗)가 위(魏) 나라에 도피해 있을 때 조 나라가 진(秦) 나라의 침공으로 곤경에 처하자 조 나라 왕은 사자(使者)를 보내 염파가 아직 쓸 만한지를 탐문해 오게 하였다. 그때까지 조 나라에 다시 등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염파는 사자가 보는 앞에서 한 말의 밥을 먹고 열 근의 고기를 먹은 다음 갑옷 차림으로 말을 타고서 자신이 아직도 쓸 만한 사람임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사자는 조 나라로 돌아가 보고하기를, “염 장군이 비록 늙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밥은 잘 먹습디다. 하지만 신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 잠깐 새에 세 번이나 변을 보았습니다.” 하니, 조 나라 왕은 그가 늙었다고 여겨 마침내 부르지 않았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2. 60만 군사 : 진 시황(秦始皇)이 초(楚) 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장군 이신(李信)을 불러 얼마의 군사가 있으면 정벌할 수 있겠냐고 묻자 이신이 20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대답하였다. 다시 장군 왕전(王翦)을 불러다 묻자 왕전은 60만 명은 있어야 정벌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진 시황은 왕전이 늙어서 겁이 많다고 질책하고 이신을 출전시켰으나 이신은 초 나라 정벌에서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진 시황이 다시 왕전을 불러다 사과하고 그의 주장대로 60만의 군사를 내주자, 왕전이 출전하여 결국 초 나라를 멸망시켰다. 《史記 卷73 白起王翦列傳》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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