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말로는 표현할 수도 깨우칠 수도 없는 것

명(明) 나라 이후로 문장을 한다는 사람들을 내가 대강 안다. ‘나는 선진(先秦)의 문장을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고 입이 쓸 뿐이다. 또 ‘나는 사마천(司馬遷)의 문장을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고 뜻만 높을 뿐이다. 


또 ‘나는 한유(韓愈)의 문장을 쓴다.’는 사람도 있는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고 억지로 우겨댈 뿐이다. 또 ‘나는 소식(蘇軾)의 문장을 쓴다.’는 사람도 있는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고 거칠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저 옛사람들의 문장의 기가 성한 것[氣之盛]만 부러워한 나머지, 그와 같아지려고 일생의 힘을 모두 다 바치는 정도에 이르렀으나, 마침내 여기에 그치고 말았으니 그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연암(燕巖) 박 선생(박지원)은 살던 시대가 청(淸) 나라 중엽에 해당하는데, 그의 문장은 선진의 문장을 하려고 들면 바로 선진의 문장이 되고, 사마천의 문장을 하려고 들면 바로 사마천의 문장이 되고, 한유와 소식의 문장을 하려고 들면 바로 한유와 소식의 문장이 되어, 웅장하고 광대하며 여유 있고 한가하여 걸출하게 천년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았으니, 실로 우리나라의 여러 문장가에게서 보지 못하던 바다.


이제 강하(江河 양자강(揚子江)과 황하(黃河))의 물이 천 리를 넘실넘실 흘러가다가 한번 큰 산 큰 섬에 부딪치면 반대로 꺾이며 소용돌이를 쳐서 천지를 뒤흔드는데, 이게 어찌 일부러 이렇게 하는 것이겠는가? 자연스러운 형세일 뿐이다. 


자연이란 곧 이(理)이다. 어떤 사람이 강하의 형세가 성한 것을 보고 마음으로 부러워한 나머지, 개천이나 산골짜기 물가에 가서 한 길 남짓한 물굽이를 만들어 놓고 나무막대나 돌멩이로 물결을 일으켜 강하의 형세와 같아지기를 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이치가 아닌 데에서 기(氣)를 구하여 저 개천이나 산골짜기 물에 일부러 물결을 일으키는 자는 앞서 말한 바의 문인들이고, 이치에서 기를 구하여 강하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자는 연암 선생이니, 이 같을 뿐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문장의 기(氣)는 곧 천지의 기(氣)이다. 천지의 기(氣)는 시대를 따라서 떨어지고, 인간의 재주도 시대를 따라 못해지는데, 연암 선생은 어떻게 유독 앞서 말한 일반 문인들보다 우수할 수 있었을까?” 한다. 이 말은 그럴듯하지만 주염계(周濂溪 주돈이(周敦頤),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주자(周子)를 말함)는 성인의 도(道)가 이미 인멸된 후에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저작하였고, 한창려(韓昌黎 한유(韓愈))는 육조 시대의 화려하게 꾸민 문장을 변혁시켜 고문(古文)으로 돌아갔으니 시대에 구속되지 않은 호걸스러운 선비는 왕왕 있어 왔다. 어찌 연암 선생에 대해서만 의심하겠는가? 


또는 중국의 문장(中國之文)은 그 유래가 장구하기 때문에 명(明)ㆍ청(淸) 시대에 이르러서는 기(氣)가 이미 흩어진 상태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문장(東邦之文)은 그 유래가 오래지 않기 때문에 선생이 살았던 시대에도 기(氣)가 아직도 박후(樸厚,소박하고 정(情)이 도타움)하고 완전한 것이 있었다. 이 두 가지 점을 선생에게 비추어 보면 하나는 합치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문장의 ‘무의(無意)의 묘(妙)’에 대해서는 윤편씨(輪扁氏)가, “신(臣)은 저의 자식도 깨우쳐 줄 수 없습니다.” 하였으니, 하물며 말로 깨우칠 수 있겠는가? 생각건대 선생은 문장의 어려움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평소 저작을 하는 데 천 근(斤)의 쇠뇌[弩]를 가지고 함부로 발사하지 않는 듯이 하여, 욕심이 많아 많은 것을 탐내는 것으로 공을 삼지 않았다. 


이제 후인이 선생이 버린 것을 함부로 외람되이 집어 넣어서 내용이 많은 것으로 자랑하려고 하니, 이는 크게 선생의 뜻을 해치는 일이다.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이에 나는 선생의 문장을 벌써 추리고 줄여 원집(原集)과 속집(續集)을 만들고, 뒤에 또 원집, 속집을 합해서 하나로 만들고 다시 추려서 7권으로 만들었다. 글이 적어질수록 더욱 귀해지는 것이 선생의 원래 뜻에 맞을 것임을 보인 것이다.


구례(求禮)의 김사원(金士元)군이 나의 말을 듣고 수긍하면서 기뻐하며 발간할 것을 꾀하였다. 김군은 나의 고우(故友) 황운경(黃雲卿 운경은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자임)의 제자로, 시속의 흐리멍텅한 자들과는 크게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곧 마음속에 감동이 되어 이렇게 말을 하노라.


*[역자註]윤편씨(輪扁氏) : 윤편씨는 중국 춘추(春秋) 시대 제(齊) 나라의 유명한 수레 만드는 공인(工人)으로 제 환공(齊桓公)에게 기술의 미묘한 점은 자식에게도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다. 《莊子 天道》


-김택영(金澤榮 1850-1927), '《중편연암집(重編燕巖集)》서(序)',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제11권/ 한 창강 김택영 문(韓金滄江文)-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임형택 (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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