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깨달으라고 권하기보다는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이 낫다
천하에 이른바 도술(道術, 도덕과 학술)이나 문장이란 것은 부지런함으로 말미암아 정밀해지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진실로 능히 깨닫기만 한다면 지난 날 하나를 듣고 하나도 알지 못하던 자가 열 가지 백 가지를 알 수 있다.
앞서 아득히 천리 만리 밖에 있던 것을 바로 곁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에는 어근버근 어렵기만 하던 것이 너무도 쉽게 여겨진다. 옛날에 천 권 만 권의 책 속에서 찾아 헤매던 것이 한 두 권만 보면 너끈하게 된다. 이전에 방법이 어떻고 요령이 어떻고 말하던 것이 이른바 방법이니 요령이니 하는 것이 없게 된다.
기왓장 자갈돌을 금덩이나 옥덩이처럼 써먹을 수 있고, 되나 말로 부(釜, 가마솥)나 종(鍾)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 어찌 이리 통쾌한가? 하지만 깨달음의 방법은 방향도 없고 실체도 없다. 잡을 수도 없고, 묶어둘 수도 없다.
옛날에 성련(成連)*이란 사람은 바다의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보다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는 정말로 그랬다. 가령 다시 어떤 사람이 성련의 일을 부러워 해서 거문고를 끌어안고 파도가 일렁이는 물가에 섰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대개 성련의 깨달음은 여러해 동안 깊이 생각한 힘으로 된 것이지, 하루 아침 사이에 어쩌다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깨달으라고 권하기 보다는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이 낫다.
물가에서 물고기를 부러워 하느니, 차라리 집으로 가서 그물을 짜는 것만 못하다. 도술과 문장을 사모하기 보다, 우러러 한번 생각해 보는 것만 못하다. (정민 역)
-김택영(金澤榮 1850-1927), '수윤당기(漱潤堂記)', 소호당집(韶濩堂集)/소호당집정본(韶濩堂集定本)제 5권-
▲번역글 출처: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옮긴이 주: 성련(成連)은 춘추전국시대 거문고 명인 백아(伯牙)의 스승이다. 연관된 일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성련에게서 3년을 배운 백아는 연주의 대체를 터득하였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감정을 전일하게 하는 몰아일체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에 성련은 "내가 더 이상은 너를 가르칠 수 없겠구나. 남은 것은 네가 가진 정(情)을 바꾸어 옮기는 것만 남았구나 . 내 스승 방자춘(方子春)이 동해에 계시니 그가 가르쳐줄 것이다." 하고는 그를 따라 오게 하였다. 봉래산에 이르러 성련은 백아에게 "내가 가서 스승을 모셔 오마."하고는 배를 타고 혼자 가버렸다. 스승은 열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백아는 크게 상심하고 슬퍼하였다. 아무리사방을 둘러 보아도 오직 파도 소리만 들려 올 뿐, 숲은 어두웠고 새 소리는 구슬펐다. 그 때 백아는 문득 스승의 큰 뜻을 깨달았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아! 스승님께서 내게 정을 바꾸게 하고 옮기도록 하신 것이로구나."하고는 이에 거문고를 탔는데 그 곡조가 시대를 거쳐 회자되는 유명한 금곡인 수선조(水仙調)다.
"자신에게 없는 마음과 감정을 누군가에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 없이 기법으로 쓴 글은 가짜입니다."-유시민(글쓰기 특강 고민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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