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절조가 무너진 세상, 본성을 잃지 않으려고
선비들의 무너진 절개와 지조
아아, 선비들의 절조가 무너진지 오래되었도다! 세력가에게 달려붙고 권세있는 요인에게 기웃거리면서 쉴새없이 바쁘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구름처럼 몰려들어 청탁하고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든다.
심지어는 높은 관리들도 자식을 위해 벼슬자리를 구하고 명사들도 편지를 써서 아우를 천거하니, 사람들은 서로 눈을 부릅뜨고 반목하며 자리를 얻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여, 공(公)에 등 돌리고 사(私)를 좆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사철이 되면 온갖 구설이 난무하여 서로서로 설을 퍼뜨리기를, ‘누구는 모 대신의 아들이니 모 산감(山監)이 될 것이다’, ‘누구는 모 재상의 아우이니 모 능참봉(陵參奉)이 될 것이다’, ‘누구누구는 모 관리의 친척이고 친지이니 모 현감, 모 군수가 될 것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인사가 행해지면 하나같이 사람들 말처럼 된다. 그래서 속언에 ‘아비가 재상이 아니면 아들이 자리를 얻지 못하고, 형이 잘나가는 관리이면 아우도 벼슬을 한다’고 한다. 아아, 선비들의 절조가 무너진 것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어떤 이에게 말한다(喩或)' ,《頭陀草》冊15 부분>
**옮긴이 주: 위의 글은 숙종(肅宗)이 죽고 이하곤에게 숙종 국장 돈장관(肅宗國葬敦匠官)이란 직위가 주어졌을 때(1720년), 이하곤이 이를 사양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지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질책하기를, ‘당신은 4대 동안 벼슬을 하여 나라의 은혜를 입은 명문가 출신인데 왜 벼슬을 하지 않아 군신의 의(義)를 저버리는가?’라는 질문을 가정하고, 그사람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형식을 취했다.
본성을 잃지 않기 위해 작은 뜻을 품다
세상의 모든 화려한 영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연만을 바라보며 서사(書史)를 오락거리로 삼고 구름과 달을 좆으며 새와 물고기를 벗삼아 여생을 마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과거(科擧) 한 가지만은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하겠으나 이것도 또한 조조(曹操)의 계륵(鷄肋)과 비슷합니다.
지금 만일 단지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기(氣)를 누그러뜨려 관복을 입고 바삐 남들이나 따라다닌다면, 원숭이를 묶어놓고 의관을 입히거나 고니의 날개를 부러뜨려 새장에 가둬놓는 것과 같을 것이니 미쳐서 본성을 잃게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할 일은 고향에 돌아가 동쪽 언덕[東岡]을굳게 지켜 분수에 맞게 편안히 지내서 소상(蘇庠)이 은자라는 미칭(美稱)을 혼자 독차지하게 하지 않도록 할 뿐입니다.
저의 작은 뜻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맹분(孟賁)과 하육(夏育)과 같은 용사가 앞에 있어도,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와 같은 변사가 다시 살아와도 끝내 뜻을 꺾거나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장인어른 옥오재 송상기 공에게 답하는 편지<答聘丈玉吾齋書>',《頭陀草》冊13 부분)
-이하곤(李夏坤 1677~1724), 두타장(頭陀草)-
▲원글출처: '澹軒 李夏坤, 산수 애호와 문예 지향의 삶' (윤성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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