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문장을 조직(附會)하는 방법

무엇을 '문장의 조직(附會,부회)'이라 하는가? 문장의 조리를 체계화하여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을 서로 뜻이 통하게 하고 첨삭할 것을 정하고 서로의 경계부분을 융합시켜서 한 편의 작품으로 꾸미되 복잡한 요소가 지나치고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집을 지을 때 반드시 기초를 튼튼히 구축하고 옷을 지을 때 바늘과 실로 잇는 것과 같다.


재능 있는 아이가 문장을 배울 때에는 마땅히 문장의 체제를 바르게 해야 한다. 반드시 감정과 사상을 문장의 중추로 삼고 소재를 골격으로 하며 언어의 수식을 피부로 하고 운율의 배치를 소리의 기운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한 뒤에 수사의 종류를 정하고 음악성을 배려하며 사용한 요소에 첨삭을 가해서 균형이 잡힌 형태로 다듬어가는 것, 이것이 '생각을 문장으로 엮는 원칙(綴思之常數 철사지상수)'이다.


무릇 대개의 문장에는 아류나 지파가 많다. 지류를 정돈하려면 본원에 의거하고 지엽을 정리하려면 근간에 따라야 한다. 이런 까닭에 어휘선택과 내용 조직에는 중요한 줄거리를 총괄하는 데 힘써야 한다. 무수한 갈래를 하나의 귀착점으로 몰아가고 백 가지 생각을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하여 설사 논리가 번잡하여도 주제와 도치되는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비록 온갖 말이 많을지라도 실이 엉킨 혼란함은 없어야 한다. 나무들이 일출과 함께 잔가지 사이로 나와 일몰이 되면 그늘에 자취를 감추는 것처럼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을 긴밀히 연결하여(首尾周密 수미주밀)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과 뜻이 표현하는 글과 일체화해야 한다(表裏一體 표리일체). 이것을 '조직의 기술(附會之術)'이라고 한다.


무릇 화가가 인물의 머리에만 신경쓰면 얼굴 모습을 놓치기가 쉽고 사수(射手)가 작은 부분만을 겨누다가 담장도 못 맞추는 것처럼 지엽적인 기교에만 정신을 벼리다가는 반드시 전체의 통일을 소홀히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한 치를 굽혀서 한 자를 펴고 한 자를 굽히고 한 길을 바루어야 한다. 부분적인 기교를 버리고 갖추어진 미의 성과를 배우는 것 이것이 '문장배열(글짓기)의 기본 원리(篇之經略 편지경략)'이다.


무릇 문장의 변화 전개가 다양하므로 대처하는 작가의 사고도 다양하다. 서술이 간략하면 내용이 허전하고 서술이 지나치면 어휘 내용이 뒤집어진다. 성급하면 허물이 많아지고 머뭇거리면 문장에 해가 미친다. 


또 작가의 재주가 같지 않으므로 사상과 정서도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의 뜻과 주제가 일관되게 통하고 연결되지만, 어떤 사람은 단편을 모으고 짧은 것을 이어서 구상한다. 그러나 통관한 작가는 대체로 적고 단편을 모으고 짧은 것을 이은 작가는 많다. 문장을 통괄하는 실마리를 잃어버리면 어휘의 미감은 반드시 혼란해지고 내용의 맥락이 통하지 않으면 작품이 편벽되고 삭막하여 고갈된 문장체제가 된다.


무릇 분명하게 문장 구성의 조리를 알아야 그 후에 문장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저절로 생긴다. 마치 아교를 나무에 붙인 것 같고 큰 콩을 황합에 담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마차를 끄는 네 마리 말은  힘이 서로 다르지만 말을 조종하는 여섯 개의 고삐는 가야금 줄과 같다.


문장을 이끌어 가는 법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가고 머무는 것이 마음에 따르고 좋고 나쁜 것이 수법에 달렸으니 그것의 걷고 달림을 가지런히 조정하는 것은 모두 고삐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문장의 조직을 잘하는 자는 이질적인 내용도 간과 쓸개 사이처럼 가깝게 하고 반면에 조직에 서투른 자는 동음의 글자라도 호월(胡越, 아주 동떨어짐의 비유)처럼 소원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나의 단락을 고치는 것은 한 편의 글을 짓기보다 어렵고 하나의 글자를 바꾸는 일은 하나의 구절을 대체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 증거하고 있다


옛날 장탕(張湯)이 상주문(上奏文)이 의심받아 재차 거절되었고. 노송(虞松)이 기초(起草)한 상주문도 여러 차례 반환되었다. 이것은 논리와 사실이 불분명하고 논지가 조화를 잃었기 때문이다. 예관(倪寬)이 초고를 고치고 종회(鍾會)가 글자를 바꿔놓자 한나라의 무제가 그 기발성에 감탄하고 진나라의 경제가 잘된 점을 칭찬한 것은 곧 논리가 통하고 사실이 분명하며 심사(心事)가 민첩하게 마음에 와 닿았고 조사(措辭)가 타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문장을 조직하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과 못한 사람 사이의 서로 벌어진 수준(水準)은 상당한 것이다.


무릇 붓을 내리고 글을 매듭짓는 것은 비유하면 배에 올라서 노를 젓는 일과 같다. 끝까지 이어서 맥락이 통하게 함은 전달은 묘사하여 멀리까지 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처음 노래한 것이 화려해도 글의 중간 부분이 초췌하면 남겨진 글의 기운은 막히고 여분의 풍취도 창달되지 못한다. 이것이 역경(易經)에 이른 바, “엉덩이에 살이 없으면 그 행차가 막히고 만다(臋無膚 其行次且也 둔무부 기행차차야)”고 한 것이 되고 만다. 오직 처음 부분과 끝 부분이 서로 보완이 되어야 문장의 조직을 이루어 제대로 된 작품이 되어, 진실로 다시 덧붙일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찬한다. "각 편 문장의 총괄은 서로 연결되고, 심정(心情)이 기술적으로 조밀하게 쌓인다. 처음을 살펴서 종결을 긴요하게 맺고, 가지를 성글게 하여 잎을 펼친다. 내용의 의미와 지향하는 바가 서로 부합하고, 외따로 있던 실마리들이 저절로 접합된다. 음악이 조화를 이룬 것처럼, 마음의 소리가 능히 서로 어울린다"(개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글을 옮기면서 부분적으로 문맥을 약간 다듬다)


-유협(劉勰, 465년~521년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문인), '附會 第四十三(부회제사십삼)' 『문심조룡 (文心雕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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