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호랑이에게 무늬가 없다면 그 가죽은 개가죽과 다름없다

성인의 글(聖賢書辭 성현서사)을 “문장(文章)”이라 총칭하니, 이는 글에 “문채(文采)”가 있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무릇 물의 속성이 텅빈 것처럼 투명해 보이나 잔물결이 일고, 나무의 몸체는 충실하여도 꽃이 피어나니 이는 형식이 내용에 종속됨을 말한 것이다. 호랑이와 표범에 무늬가 없다면 그 가죽은 개나 양의 것과 같을 것이다.(虎豹無文 則鞹同犬羊 호표무문 즉곽동견양).


코뿔소에게도 가죽이 있어서 색채에 붉은 칠감이 필요하니 이는 내용에 형식이 갖추어야 함을 뜻한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을 풀어내고 사물의 형상을 그려내자면 문자 속에 마음을 새기거나 종이 위에다 말을 엮어 짜야한다. 그리하여 표범의 털빛과 같은 화려한 무늬를 드러내는 것을 가리켜 문채(文采)라 이름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 원리가 있는데, 첫째는 형체의 문채로서, 다섯 가지 색채가 이것이다. 둘째는 성률의 문채로서 다섯 가지 소리가 이것이다. 세째는 감성의 문채로서 다섯 가지 정서가 이것이다. 오색이 뒤섞여서 예복의 무늬를 이루고 오음이 조화되어 소(韶)·하(夏)같은 음악이 되고 오정이 발하여 문장이 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효경(孝經)>이 전하는 전범(典範)에 상사(喪事)의 말에는 수식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므로 군자들이 평소 쓰는 말이 질박하지 않음이 없었다. <노자(老子)>는 허위를 싫어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말은 믿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도덕경(道德經)> 5천 글자는 정묘하니 표현의 아름다움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장자(莊子)가 “언변으로 만물을 새긴다.”고 한 것은 아름답게 수식함을 말한 것이다. <한비자(韓非子)>가 “변설(辯說)은 아름답게 한다”고 한 것은 화려하고 섬세함을 이른 것이다. 화려하게 표현하여 말을 아름답게 하고, 수식을 가하여 변설을 새기는 것은 문장 표현의 변화가 이에서 지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자(老子)>의 말을 곰곰히 연구하여 음미해보면 형식과 내용이 인간의 성정(性情)에 달려있음을 알고 <장자(莊子)>와 <한지자(韓非子)>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형식과 내용을 지나치게 사치한 것보다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만약 사물의 위수와 경수와 같은 강물의 흐름에서 물의 근원을 가려낼 수 있고, 바른 길과 사악한 길을 분별해낼 수 있다면 문채를 다룰 수 있게 된다.


무릇 화장품은 얼굴을 꾸미는 데 사용하는 수단이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타고난 맑은 자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처럼 문채는 언어를 꾸미는 수단이지만 진정한 말의 교묘함과 아름다움은 성정(情性)에 근본을 둔다 그러므로 성정(性情 인격과 마음씀씀이)은 문장의 날줄이고, 문사(文辭; 내용)는 성정(性情)의 씨줄이다. 날줄이 바로 잡힌 후에야 비로소 씨줄이 이루어지며, 정리가 정해진 뒤에야 문사가 유창해진다. 이는 문장을 구성하는 근본이 된다.


옛날 시인의 시편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글을 지었지만, 후대의 시인들의 <부(賦)>나 <송(頌)>에서는 글을 짓기 위해서 정서를 꾸며낸 것이다. 무엇으로 그러함을 밝힐 수 있나 <시경(詩經)>의 <풍(風)>과 <아(雅)>의 창작은 생각을 마음속에 두고 울적함을 쌓아놓았다가 사상과 감정을 시로 읊음으로써 윗사람을 풍자했다. 이는 감정 표현을 위해서 글을 지은 것이다.


후대의 사부가(辭賦家)들은 마음속에 답답하고 울적한 것이 없으면서 구차하게 지나친 수식을 몰아서 명성을 팔고 세상의 명리를 낚았던 것이다. 이것은 글을 짓기 위해 감정을 꾸며낸 것이다. 그러므로 정서를 위하여 글을 지은 것은 간결하며 진실을 묘사했지만 문장을 위해서 정서를 꾸민 것은 번거롭고 지나치다


후대의 작가들은 난잡한 것을 취하고 진실한 것을 소홀히 하며 시경(詩經)의 <풍(風)>·<아(雅)>의 작가 정신은 멀리 버려두고 사부(辭賦, 산문형태를 띄면서도 운율의 형식에 치중하는 운문)를 가까이 하고 모범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의 창작은 날로 줄어들고, 문채의 수식만을 추구하는 작품은 더욱 왕성해진다. 그래서 뜻이 관직(벼슬)에 깊으면서도 널리 은거생활을 읊었다. 마음은 바쁜 정무(政務 속세의 정치)에 두면서도 속세 밖의 일을 공허하게 서술했으니 이는 진실한 감정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된 것이다.


무릇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래에 오솔길이 생기는 것은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난초를 심어도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은 남자에게는 그러한 정서가 없기 때문이다. 풀과 나무와 같은 미물도 정서에 의지하고 실체에 의거하거늘 하물며 사람에 문장을 지음에 있어서랴.


뜻을 서술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데 말과 뜻이 상반된다면 그 문장이 어찌 족히 믿음이 가겠는가? 이리하여 낱말을 조직하고 문채를 이루는 것은 장차 정리를 밝히고자 하는 것인데, 문채가 난잡하고 표현이 교묘하고 기궤하다면 마음속의 정리는 더욱 가리어질 것이다.


진실로 물총새 깃털 낚시줄에 계수나무 미끼를 달면 도리어 물고기를 놓쳐치는 방법이 되는데 말의 내용이 아름다운 표현에 가린다는 것은 아마도 이것을 말할 것이다. 이리하여 비단옷을 입고 베옷을 덧입는 것은 시경에서 비단옷의 무늬가 너무 화려한 것을 싫어한 것이고, 역경에서 '비괘의 형상이 백색으로 돌아가는 것'(賁象窮白, 분상궁백)은 근본인 원색으로 돌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전체적 윤곽을 설정하여 정리(情理 인정과 도리)를 세우고, 근거지인 주제에 의거하여 심정을 배치하고 심정을 정한 후에 음률을 연결하고, 정리(情理)를 바로 세운 후에 수식을 가하여 형식이 내용을 해치기 않게 하고, 난잡함이 성정을 빠뜨리지 않게 한다. 주색과 남색과 같은 바른 채색이 빛나게 하고 홍색과 자색과 같은 중간색이 제거되어야 문장을 다듬을 수 있게 되어 능력 있는 작가, 지식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贊曰(찬왈), 언어가 문장으로 심원해짐은 진실로 징험할 수 있다. 마음속 정리가 근본으로 형성되어야 문체가 섬세해지고 풍부해지는 것이다. 오나라의 비단은 좋지만 퇴색이 빠르고(吳錦好渝 오금호투) 꽃봉오리는 오래 머물지 않는 요염함에 불과하다.(舜英徒豔 순영도염). 이처럼 수식이 멋지고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거기에 정서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을 되씹으면 반드시 싫증나게 된다.(개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글 필사하며 매끄럽지 못한 문맥만 약간 다듬다)


-유협(劉勰, 465년~521년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문인), '情采第三十一(정채제삼십일)' 『문심조룡 (文心雕龍) 』-


정채(情采):정서(情緖)를 드러내어 표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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