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 유성룡

(상략) 옛날 소동파(蘇東坡)는 일찍이 화(和)와 동(同) 두 글자를 논하기를,  “동(同, 한가지, 같음, 함께함, 같은 것들이 무리를 이룸)은 물에 물을 탄 것 같고, 화(和, 조화, 화합, 합침, 화해, 같거나 다른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룸)는 국에 양념을 한 것과 같다.” 하였다. 그러므로 신하들의 습성에 조화롭게 지내는 것은 좋으나, 부화 뇌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마다 진실로 부화 뇌동하는 것을 숭상한다면 천하는 또한 위태하다고 하겠다. 

천하의 사리(事理)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옳고 그름을 가린 뒤에야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밝힐 수 있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밝힌 뒤에야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자신에게 행한다면 나쁜 냄새를 미워하고 미인을 좋아하는 것처럼 자신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바르게 될 것이며, 이것을 남에게 행한다면 선(善)을 보고는 따라잡지 못할 것처럼 하고 악(惡)을 보면 끓는 물에 손을 대는 것처럼 겁내어 온 세상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바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간사한 사심을 품어 이(利)와 녹(祿)을 구하여 한 번 이름을 사림(士林)에 붙이면, 비록 죄악이 낭자하여 직분을 망가뜨려서 온갖 못된 짓을 하더라도 남으로 하여금 감히 말하지 못하게 하고, 한 번이라도 그 잘못을 논하는 자가 있으면 당장에 그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명목으로 공격하니, 옛 사람의 이른바, 선은 작은 것이라도 기록하지 않는 것이 없고, 악은 미세한 것이라도 비평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모든 일은 정밀하게 다루어지고 사물은 그 근본을 다스려서 이름에 따라 실적(實績)을 책임지우며 허위가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정치라는 것이 장차 어떻게 시행되겠는가. (중략)

아, 슬프다. 대개 일찍이 살펴보니, 신하가 조정에 벼슬할 적에 언론(言論)의 차이나 소견의 옳고 그름이 없을 수 없는 것인데,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때에는 소위 옳고 그른 것과 다르고 같은 것이 모두 공정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는 데에서 나와 사심(私心)이 그 사이에 섞여 있지 않다. 그러므로 옳다 하는 것이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며, 그르다고 하는 것이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동의해야 할 것을 동의하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으며, 의견이 같더라도 일찍이 아부하는 의사(意思)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물고기는 강호(江湖)에서 서로 개인 감정을 잊고, 사람은 도의(道義)에서 서로 잊는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힘쓰는 것은 오직 그 근심되는 것을 생각하여 국가 일에 마음을 다하는 데에 달린 것뿐이다.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사심을 써서 속임수를 쓰는 자가 있으면 큰 경우는 형벌을 주고 작은 경우는 내쫓으니, 마치 태양이 중천에 떠 있으면 도깨비가 저절로 날뛰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홍범에 이르기를, “모든 백성들이 당파를 지음이 없고 사람들이 사사로이 아첨함이 없는 것은 오직 임금이 표준을 세우기 때문이다.” 하였다. 표준이 서지 않으면 사람들이 각각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람끼리 서로 찬성하고 반대하여 자기와 같은 편이면 비록 그른 것이라도 옳다 하고, 자기와 다른 편이면 비록 옳은 것이라도 그르다 한다. 그 처음에는 한두 사람으로 시작하여 거기에 좇는 자가 더욱 많아지면 그 틈을 타서 시세가 어디로 향하는가를 보아서 달려가 붙어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세월이 갈수록 날로 많아진다. 이에 온 나라 안이 둘로 나뉘어 각기 자기가 옳게 여기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여 참으로 옳은 것을 가리지 못하고, 각기 자기가 그르게 여기는 것을 그르다 하여 참으로 그른 자도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임금이 그 정상을 살펴, 버리고 취하는 조처를 두려 하면 말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어지럽게 떠들어 현란시키고 번복하여 마치 틈 사이로 싸움을 보는 것 같다. 그러니 어느 겨를에 그 승부와 득실의 있는 바를 알 수 있겠는가. 이때에 아부를 잘하는 자가 있어서 혹은 궁인(宮人)들과 결탁하고, 외척에게 연줄을 놓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몰래 임금의 뜻을 변동시키고, 밖으로는 눈치보며 달려가 붙는 무리들로 하여금 사론(士論, 뭇 선비들의 여론)이라 칭탁(빙자)하여 남을 모함하는 술책을 쓰게 하여 대간(臺諫)과 시종(侍從)들로 하여금 깡그리 자기네를 따르게 하여 안과 밖에 꽉 차게 했으니, 임금이 비록 보고 듣는 것을 바꿔서 바로잡을 계획을 하고자 하여도 소용이 없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면 또한 어찌할 수 없을 뿐이니, 위태롭도다. ...(중략)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망친 전례가 한 수레바퀴의 자국과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져서 마침내 그칠 때가 없으니, 아, 슬픈 일이로다 

-유성룡(1547~1604), ☞'붕당(朋黨)', 「운암잡록(雲巖雜錄)」 / 대동야승(大東野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남만성 (역) |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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