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왜 비슷한 것을 실물의 진짜보다 더 귀하게 여길까? / 김시양
명(名, 평판, 명성, 명예 등등)이란 것은 실(實, 실제를 이루는 근본적인 것)의 손(賓, 손님 즉 실질의 것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거의 다 손(賓)을 귀하게 여기고 실(實)을 천하게 여긴다. 이제 사람이 한 개의 옛 그릇을 얻으면 반드시 굳이 어느 시대의 물건이라고 이름을 붙인 뒤에야 남들이 다 그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비록 기와처럼 천한 물건이라도 아름다운 구슬과 동등하게 여긴다. 이제 모래와 돌도 다 혼돈(混沌)의 태초(太初)에 형체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이 그림을 취하는 것은 그것이 실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괴이하게 생긴 소나무와 이상한 대나무나, 기이한 꽃, 오묘한 풀로 세상에 드문 것도 그다지 귀하게 여기지 않아서 비록 부러지거나 썩어도 애석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물건들을 잘 그린 것이 있으면 반드시 열 겹으로 싸서 지극한 보물로 여기고, 혹 훼상하는 일이 있으면 애석해하기를 큰 구슬에 비할 정도가 아니다. 어찌 그 진짜를 사랑하기를 도리어 유사한 것보다도 못하는가. 천하의 일에 이와 비슷한 것이 매우 많으니, 나는 그것을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동파지림(東坡志林)》에 이르기를, “지금 세상에는 진옥(眞玉, 진짜 옥)이 지극히 적어, 비록 황금일지라도 등급이 진옥에 가까울 수는 없다. 오직 모래로 갈아서 만든 것이라야 세상에서 진옥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아직 진옥일 수는 없다. 다만 옥돌의 정순(精純)한 것만이 진옥이며, 모름지기 정주(定州)의 자석(磁石)의 가시가 상처를 낼 수 없는 것이라야 바로 진옥(眞玉)이라고 한다.” 하였다. (단락의 글을 나름 약간 다듬어 정리하면, "지금 세상에는 진짜 옥이 지극히 희귀하므로, 비록 황금일지라도 그 가치를 진옥과 비교할 수 없다. 모름지기 옥돌을 모래로 갈고 다듬고 연마하여 나온 것을 세상에서는 소위 진옥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진옥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이물질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옥만이 진옥이며, 모름지기 정주 지방에서 산출되는 자석의 강하고 뾰족한 끝으로 그 표면에 상처를 낼 수 없는 것이라야 비로소 진옥이라 할 수 있다" )
후대의 노옥공(老玉工)에게 물어도 그것이 정말 그런지를 알지 못하니(오랜 세월 숙련된 전문가인 옥장인일지라도 완벽하게 순정한 옥, 즉 진옥을 접하고 다뤄본 적이 없고, 또 그만큼 희귀하기때문에 <동파지림>의 진옥 판정법이 옳은지 그른지를 모를 만큼 진옥 판정을 하기가 어렵다는 의미), 옥을 알 수 없음이 이와 같다. 지금 정옥(頂玉, 옥으로 만든 장식)한 자는 무려 천(千)으로 셀 만큼 많은데, 모두들 말하기를, “나의 옥은 따뜻하고 윤택하니 바로 진옥이다.” 라고 한다.
아, 그것이 진정 좋은 옥일까. 아니면 진정 옥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김시양(金時讓, 1581~1643), '부계기문(涪溪記聞)' 중에서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남만성 (역) |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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