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중도(中道)는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는 것 / 기대승

(상략) 근래에는 대소의 일에 대해 말하는 자가 있으면 과격하다고 하면서 중도(中道)를 얻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랫사람들이 어찌 중도(中道)를 배우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 ‘중(中)’ 자는 가장 알기 어렵습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이 중도가 아니고 선을 드러내고 악을 막는 것이 바로 중도(中道)입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모두 거두어 함께 기르려고 하면 이것은 자막(子莫)의 집중(執中)*입니다. 도에 귀중한 것은 중도(中道)이고 중도에 귀중한 것은 권도(權道)입니다. 한 자 되는 나무를 가지고 말한다면 다섯 치가 중(中)이 되지만, 하나는 가볍고 하나는 무거운 물건을 가지고 말한다면 물건에 알맞은 것이 중도가 됩니다. 모든 일을 과격하게(냉정하고 엄격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도가 아니고,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는 것이 바로 중도입니다.

또 고식지계(姑息之計, 임시변통으로  당장에 쉽고 편한 것을 선택하는 것)*에 빠져 있는 나태한 사람들은 말하기를 ‘매사를 마땅히 공평히 해야 한다.’ 하는데, 신의 생각에는 군자를 후대하고 소인을 박대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니, 군자와 소인을 구별함이 없다면 이것은 크게 공평하지 못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군자와 소인을 마땅히 분명하게 구별한 뒤에야 훌륭한 정치와 교화가 이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만일 향초와 악초를 한곳에 두면 향기는 없어지고 악취만 있게 되며, 곡식밭에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곡식을 해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국가에서는 반드시 군자를 붙들어 세우고 소인을 저지한 뒤에야 국사(國事)가 옳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육지(陸贄)는 상하에 정의(情義)가 통하지 못하는 것을 논하면서 아홉 가지 폐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아홉 가지 폐단이란 윗사람에게 여섯 가지가 해당되고 아랫사람에게 세 가지가 해당됩니다. 남을 이기기 좋아하는 것, 과실 듣기를 부끄러워하는 것, 구변을 구사하는 것, 총명을 자랑하는 것, 위엄을 사납게 부리는 것, 강퍅한 행동을 자행하는 것, 이 여섯 가지는 임금에게 있는 폐단입니다. 아첨하는 것, 이리저리 형세를 관망하는 것, 두려워하고 연약한 것, 이 세 가지는 신하들에게 있는 폐단입니다.

윗사람이 이기기를 좋아하면 반드시 거짓말을 좋아하게 되고, 윗사람이 과실 듣기를 부끄러워하면 반드시 직간(윗사람 혹은 윗 어른에게 잘못된 것을 직접 말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니, 이와 같으면 아첨하는 자들이 임금의 뜻에 순종하기 마련입니다. 윗사람이 구변을 구사하면 반드시 말로써 남을 꺾고, 윗사람이 총명을 자랑하면 반드시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지 않나 걱정하니, 이와 같으면 이리저리 형세를 관망하는 자들이 스스로 편하게 여깁니다. 윗사람이 위엄을 사납게 부리면 반드시 마음을 낮추어 아랫사람을 대하지 않고, 윗사람이 강퍅한 행동을 자행하면 반드시 자책하지 않고 남의 타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와 같으면 두려워하고 나약한 자들이 죄를 피하게 됩니다. 과실을 듣기 부끄러워함과 총명을 자랑함은 예로부터 영명(英明)한 군주들이 특히 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이하생략)

※[역자 주]
1. 자막(子莫)의 집중(執中) : 자막은 노나라의 대부(大夫)다. 집중(執中)은 두 가지의 중간을 헤아려 행하는 것이다. 맹자는 “양주(楊朱)는 자신의 지조만을 위하고, 묵적(墨翟)은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한다 하여 각기 한쪽에 치우쳐 있다. 그런데 자막은 양주와 묵적의 중간을 헤아려 중(中)을 잡았으니 도(道)에 가깝다. 그러나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변통하지 못하고 오직 중간만 취한다면 이 역시 도에 해롭다.” 하였다. 이 말은 이후 변통할 줄 모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孟子 告子下》


-기대승(奇大升, 1527~1572), '논사록 윤 6월6일' 부분, 고봉전서(高峯全書)/ 논사록 하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역) | 2007 


※[옮긴이 주]
1. 논사록: 논사록은 기대승 선생이 임금에게 학문과 도리를 강연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명종 1회, 선조 18회의 강연기록을 담고 있다.
2. 고식지계(姑息之計): 고식(姑息)의 고(姑)는 아녀자를, 식(息)은 어린 자녀를 뜻한다. 즉, 식견과 경험이 제한되어 세상물정이 어둡고, 자칫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여자와 어린 아이의 말을 따라 행하는 계책'이다. 그 의미는 '우선 당장 눈앞에 보이는 편한 것만을 택하는 임시변통의 꾀나 방법.'을 말한다. 비슷한 의미로, 미봉책(彌縫策), 인순고식(因循姑息), 목전지계(目前之計)등이 있다. 춘추시대 제자백가서 중의 하나인 '시자(尸子)'가 그 출전이다. ‘은나라 주왕은 노련한 사람의 말은 버리고, 아녀자나 어린애들의 말을 들어 사용했다(紂棄老之言 而用故息之語)' 에서 유래하였다. 예기(禮記), 단궁상((檀弓上))에는 고식(姑息)을 '일시적인 임시변통'의 의미로  직접 사용되었다. ‘군자는 사람을 사랑하기를 덕으로 하고, 소인은 사람을 사랑할 때는 임시변통으로 한다'하였다. 양웅(揚雄)의 ‘揚子法言(양자법언)’에는 ‘눈앞의 이익밖에 모르는 계책(姑息)은 덕을 해친다. 따라서 군자는 말을 삼가고, 좋아함을 신중히 해야하며, 때가 오면 서둘러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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