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이 그 아는 바를 능히 행할 수 있다면 / 홍대용

영남(嶺南, 경상도 지역)은 본디 동국(東國)의 관민(關閩, 송대의 관중과 민중 지역을 가리킴, 즉 학문이 융성한 곳)이라 일컫는다. 회재(晦齋, 이언적)와 퇴도(退陶, 이황)가 앞서 인도하고, 한강(寒岡, 정구)과 여헌(旅軒, 장현광)이 뒤에 잇달았으니, 염락(濂洛, 염계와 낙양으로 도학(道學 성리학)의 근원지, 즉 저명한 성리학자들이 많이 살던 곳)의 시절이 이때에 융성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김우옹(金宇顒)과 정인홍(鄭仁弘)이 앞서 변고를 일으키고 정희량(鄭希亮)과 이인좌(李麟佐)가 뒤에 난리를 일으켰으니, 어진 이와 정직한 자를 모해(꾀를 써서 남을 모함하여 해를 끼침)하는 의론과 하늘을 욕하고 해를 꾸짖는 무리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러므로 빙 둘러있는 72주(州)가 이적(오랑캐)ㆍ금수(짐승)의 지경에 빠져버린 지 아마 백 년이 넘으리라.

이 때를 당해서 주군(周君) 도이(道以)란 사람이 칠원(漆原)에서 생장하였는데, 퇴도(退陶, 이황)의 친구였던 신재공(愼齋公, 주세봉)의 후손으로서 나이는 30이 채 못되고 체구는 7척(尺)이 차지 않았으나 몹시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 조상의 일을 기술(述)하고 회재(이언적)와 퇴도(이황)의 업(業)을 계승하는 데에 뜻을 두었다. 향리(鄕里)가 배격했으나 그는 마음이 더욱 굳었고, 친척이 비웃었으나 그는 뜻이 더욱 돈독했던 것이다. 

천리 길을 가볍게 여기고 여강(驪江) 위에서 스승을 따랐고, 서울 안의 모든 현자(賢者)의 집에 왕래하였다.  그를 본 모든 현자들은 또한 그의 뜻을 기이하게 여기고 그의 정성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는 4년 동안 나그네 생활로 쌀가루를 먹고 박나물을 씹었으나 그래도 부족해서 의복을 팔아 끼니를 이었다. 몸 또한 병이 많았으나 추위와 더위에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후회하지 않았으니, 아! 도이 같은 이는 맹씨(孟氏)가 이른바 ‘호걸의 선비(豪傑之士)’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듣고 보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더니, 계유년(癸酉年) 동짓달에 석실 원중(石室院中)에서 처음 만났었다. 그는 얼굴이 희고 눈동자가 분명하며 기질이 맑고 말씨가 적었다. 한번 보아도 그가 조용하고 욕심이 적은 선비인 줄을 알 수 있었다. 한달이 넘도록 함께 거처했는데, 비록 묵은 병이 간혹 발작되었으나 글 읽는 소리가 아침 저녁으로 그치지 않았으니, 도(道)를 구하는 돈독한 마음과 배움에 나아가는 용맹은 지금 세상에 구하여, 아마 상대될 짝이 적을 것이리라. 나처럼 게으른 자도 매양 자고 싶은 생각이 나고 정신이 흐려질 때에 그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면 문득 경계하고 깨닫게 되었으니, 그대는 나에게 도움된 것이 많았다.

그대는 나를 보잘 것 없이 여기지 않고 상종할 만한 자로 대하고자 하였으나, 나는 감히 당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그러나 나도 또한 전혀 뜻이 없는 자는 아니다. 그 뜻과 도가 진실로 같지 않음이 없어서 잘못을 간하고 착함을 권한다면 나도 끝내 사양하고 싶지 않고, 또한 그대에게도 희망이 없을 수 없다. 

지금 나는 장차 서원(書院)에서 경성(京城)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대도 장차 내년 봄이면 다시 여강(驪江)으로 향하여 그 길로 재(嶺)를 넘어 남쪽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니, 뒷 기약이 막연하다. 어진 자의 증언(贈言 글을 지어줌)하는 일은 비록 감히 할 수 없으나 아녀자(兒女子)의 석별(惜別)하는 태도야 내가 어찌 하겠는가? 장차 우리가 스스로 힘써야 할 것을 가지고 일러줌이 마땅할 것이다.

요순(堯舜)의 덕은 이치뿐이니, 나와 자네도 그 이치가 있고 요순의 능함은 마음 뿐이니, 나와 자네도 그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하면 요ㆍ순이 되고 아니하면 걸ㆍ주(桀紂)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와 자네로서 함께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 요ㆍ순의 성인(聖人)이 된 까닭은 일마다 그 이치에 알맞게 했기 때문이고, 걸ㆍ주의 하우(下愚)가 된 까닭은 일마다 그 이치에 알맞게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 구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할 것인데, 어찌 이르지 못함을 걱정해야 하겠는가? 옛날 학자들은 겨우 한 가지의 일을 알면 즉시 그 일을 행하되, 마치 한번 뺨을 치면, 한 손바닥에 피가 맺히고, 한번 몽둥이로 때리면, 한 가닥에 흔적이 생기듯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학자들은 입만 열면 곧 성선(性善 인성(人性)은 본질적으로 착하다)을 말하고 말만 하면 반드시 정ㆍ주(程朱, 성리학을 확립한 정이와 주희)를 일컬으나 재주가 높은 자는 훈고(訓詁, 글자의 해석)에 빠지고, 지혜가 낮은 자는 명예와 이욕에 떨어지고 있다. 아아! 성인이 좋은 줄을 뉜들 모르랴마는 세상에는 그에 알맞는 사람이 없고, 하류(下流)가 나쁜 줄을 뉜들 모르랴마는 뭇 사람은 모두 그(하류, 즉 잘못되거나 나쁜 방향)에로 돌아가도다. 

이는 다름 아니라 행하지 않은 탓이다. 사람이 능히 그 아는 바를 행한다면 어찌 옛 사람에게 미칠 수 없겠는가? 정일(精一 정밀하고 자세하며 한결같은 것)을 읽으면 정일로 가야하고 경의(敬義 존중하고 삼가하는 마음과 의로운 것)를 읽으면 경의로 하는 것이니, 나는 자네에게 〈행(行 실천하고 행하라는 뜻)〉이란 한 글자를 주는 바이다. 이때에 그대가 《심경(心經)》을 읽는 까닭에 이런 말을 한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년), '주도이에게 주는 서문[贈周道以序] ' 『담헌서(湛軒書)/내집 3권 / 서(序) -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4 

※옮긴이 주
1.도(道) : 유학에서 말하는 도(道) 개념은 중용 1장에서 그 뜻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늘이 부여한(命)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道)를 추구하여 수양하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 이처럼 도(道)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서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도(道)가 아니다." 성리학을 도학(道學), 즉 도덕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를 바탕으로 한다. 나름 요약하면, '선하고 참된 사람다움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 바로 유학에서 말하는 도(道)라 이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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