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虎叱): 호랑이가 양반계급의 위선을 꾸짖다

범은 착하고도 성스럽고, 문채롭고도 싸움 잘하고, 인자롭고도 효성스럽고, 슬기롭고도 어질고, 엉큼스럽고도 날래고, 세차고도 사납기가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 없다.

그러나 비위(狒胃)는 범을 잡아먹고, 죽우(竹牛 짐승 이름)도 범을 잡아먹고, 박(駮)도 범을 잡아먹고, 오색 사자(五色獅子)는 범을 큰 나무 선 산꼭대기에서 잡아먹고, 자백(玆白)도 범을 잡아먹고, 표견(䶂犬)은 날며 범과 표범을 잡아먹고, 황요(黃要)는 범과 표범의 염통을 꺼내어 먹고, 활(猾) 뼈가 없다.은 범과 표범에게 일부러 삼켜졌다가 그 뱃속에서 간을 뜯어먹고, 추이(酋耳)는 범을 만나기만 하면 곧 찢어서 먹고, 범이 맹용(猛㺎 짐승 이름)을 만나면 눈을 감은 채로 감히 뜨질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은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되 범은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아서는 범의 위풍이 몹시 엄함을 알 수 있겠구나.

범이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게 된다. 그리고 범이 한 번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倀鬼, 범이 잡아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나쁜 귀신)가 굴각(屈閣 )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살면서, 범을 남의 집 부엌으로 이끌어 들여서 솥전을 핥으면 그 집 주인이 갑자기 배고픈 생각이 나서, 밤중이라도 밥을 지으려 하게 되며, 두 번째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이올(彛兀 )이 되어 범의 광대뼈에 붙어 살며, 높은 데 올라가서 사냥꾼의 행동을 살피되, 만일 깊은 골짜기에 함정(陷穽)이나 묻힌 화살이 있다면, 먼저 가서 그 틀을 벗겨 놓으며, 범이 세번째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육혼(鬻渾)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 살되 그가 평소에 알던 친구들 이름을 자꾸만 불러댄다.

하루는 범이 창귀들을 모아 놓고 분부를 내리되, “오늘도 벌써 해가 저무는데 어디서 먹을 것을 취한단 말이냐.” 한다. 굴각은, “제가 진작 점쳐 보았더니 뿔 가진 것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검은 머리한 것이, 눈[雪] 위에 발자국이 비틀비틀 성긴 걸음을 하며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서 꽁무니를 못 감추는 그런 놈입니다.” 하고, 이올은, “저 동문(東門)에 먹을 것이 있사오니 그 이름은 ‘의원(醫員)’이라 한답니다. 그는 입에 온갖 풀을 머금어서 살과 고기가 향기롭고, 서문(西門)에도 먹을 것이 있사오니 그 이름은 ‘무당(巫堂)’이라 한답니다. 그는 온갖 귀신에게 아양부려 날마다 목욕재계해서 고기가 깨끗하온즉, 이 두 가지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 잡수시죠.” 했다. 그제야 범이 수염을 거스리고 낯빛을 붉히며,

“에에, ‘의(醫)’란 것은 ‘의(疑)’인만큼 저도 의심나는 바를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해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만 명으로 셀 수 있고, ‘무(巫)’란 ‘무(誣)’인만큼 귀신을 속이고 인민들을 유혹하여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만 명으로 셀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뭇 사람의 노여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그것이 화하여 금잠(金蠶)이 되었으니,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다.” 했다. 이에 육혼은 또,

“저 숲속(유림(儒林))에 살코기가 있사온데 그는 인자한 염통과 의기(義氣)로운 쓸개에 충성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악(樂)은 머리 위에 이고 있고, 예(禮)는 신처럼 꿰고 다닌답니다. 뿐 아니라 그는 입으로 백가(百家)의 말들을 외며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했으니,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碩德之儒 높은 덕망을 지닌 유학자)’라 하옵니다.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오미(五味)를 갖추어 지녔답니다.” 한다. 범이 그제야 눈썹을 치켜 세우고 침을 흘리며 하늘을 쳐다보고 싱긋 웃으면서, “짐(朕)이 이를 좀 상세히 듣고자 한다.” 하였다. 모든 창귀들이 서로 다투어가며 범에게 추천한다.

“일음(一陰)ㆍ일양(一陽)을 도(道)라 하옵는데, 저 유(儒)가 이를 꿰뚫으며, 오행(五行)이 서로 낳고 육기(六氣)가 서로 이끌어 주옵는데, 저 유가 이를 조화시키나니, 먹어서 이보다 맛좋은 것이 없으리다.” 범이 이 말을 듣자 문득 추연(愀然)히 낯빛을 붉히며 기쁘지 않은 어조로서,

“아니다. 저 음(陰)과 양(陽)이란 것은 한 기운에서의 죽고 삶에 불과하거늘, 그들이 둘로 나뉘었으니 그 고기가 잡(雜)될 것이요, 오행은 각기 제 바탕이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거늘, 이제 그들은 구태여 자(子)ㆍ모(母)로 갈라서 심지어는 짜고 신맛들에 이르기까지 분배(分配)시켰으니 그 맛이 순(純)하지 못할 것이요, 육기는 제각기 행하는 것이어서 남이 이끌어 줌을 기다릴 것이 없거늘, 이제 그들은 망녕되이 재성(財成)ㆍ보상(輔相)이라 일컬어서 사사로이 제 공을 세우려 하니, 그것을 먹는다면 어찌 딱딱하여 가슴에 체하거나 목구멍에 구역질이 나지 않겠느냐.” 하였다.

때마침 정(鄭)의 어느 고을에 살고 있으면서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척하는 선비 하나가 있으니, 그의 호는 ‘북곽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한 글이 1만 권이요, 또 구경(九經)의 뜻을 부연(敷衍)해서 책을 엮은 것이 1만 5천 권이나 되므로, 천자(天子)가 그의 의(義)를 아름답게 여기고, 제후(諸侯)들은 그의 이름을 사모하였다.

그리고 그 고을 동쪽에는 동리자(東里子)라는 얼굴 예쁜 청춘과부 하나가 살고 있었다. 천자는 그의 절조(節操)를 갸륵히 여기고 제후(諸侯)들은 그의 어짊을 연모하여, 그 고을 사방 몇 리의 땅을 봉하여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 하였다. 동리자는 이렇게 수절(守節)하는 과부였으나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각기 다른 성(姓)을 지녔다. 어느 날 밤 그 아들 다섯 놈이 서로 노래처럼 된 말로서,

강 북편에 닭 울음 소리 水北雞鳴강 / 남쪽엔 별이 반짝이네 水南明星 /방 안 소리 자아하니 室中有聲 / 북곽선생 어인 일고 何其甚似北郭先生也

하고는 성 다른 형제 다섯이 번갈아서 문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선생께 청하기를,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연모하였답니다. 오늘 밤엔 선생님의 글 읽으시는 음성을 듣고자 하옵니다.” 한다. 그제야 북곽선생은 옷깃을 여미고 꿇어앉아서 시(詩) 한 장(章)을 읊었다.

"병풍에는 원앙새요 반짝반짝 반딧불 鴛鴦在屛耿耿流螢 / 가마솥과 세발솥은 무얼 본떠 만들었나 / 維鬵維錡云誰之型 /흥이라  興也" (옮긴이 註: 모양이 다른 솥들을 슬쩍 언급하여 정절로 이름난 과부임에도 성이 다른 다섯 자식을 낳은 것을 환유하고, 원앙과 반딧불로 앞으로 벌어질 남녀간의 사랑행위를 은근 슬쩍 암시하며 짙은 농을 친다)

그 꼴을 본 다섯 아들은 서로 말하기를,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과부의 문엔 함부로 들지 않는다.’ 하였는데 북곽선생은 어진 이라서 그런 일 없을 거야.” “나는 듣자 하니, 이 고을 성문이 헐어서 여우가 구멍을 내었다고 하더군요.” “나는 들은즉,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환생(幻生)하여 능히 사람 시늉을 할 수 있다 하니, 그놈이 필시 북곽선생으로 둔갑한 것일게다.” 하고, 다시 서로 의논하되,

“나는 듣건대, 여우의 갓을 얻는 자는 천금의 장자가 되고, 여우의 신을 얻는 자는 대낮의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여우의 꼬리를 얻는 자는 남을 잘 괴어서 누구라도 그를 기뻐한다 하니, 우리 저 여우를 잡아 죽여서 나눠 갖는 게 어떨꼬.” 하고, 이에 다섯 아들이 함께 어미의 방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북곽선생이 크게 놀라서 뺑소니를 칠 제 남들이 행여 제 얼굴을 알아볼까 해서 한 다리를 비틀어서 목덜미에 얹고 도깨비처럼 춤추고 귀신처럼 웃으며 문밖으로 나와서 들이뛰어 가다가 벌판 구덩이에 빠지니 그 속에는 똥이 가뜩 채워져 있었다. 

간신히 휘어잡고 기어 올라서 목을 내밀고 바라본즉 범이 어흥하며 길을 가로막았다. 범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구역질하고 코를 싸 쥐고 머리를 왼편으로 돌리며, “에퀴이, 그 선비 구리도다.” 한다. 북곽선생이 머리를 조아리며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서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여쭈되, 

“범님의 덕이야말로 참 지극하시지요.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남의 아들 된 이는 그 효성을 본받고,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그 거룩하신 이름은 신룡(神龍)과 짝이 되어 한 분은 바람을, 또 한 분은 구름을 일으키시니, 저 같은 하토(下土)의 천한 신하 감히 하풍(下風)에 있습니다.” 한다. 범은 이 말을 듣자 꾸짖는다.

“에에, 앞에 가까이 오질 말렸다. 앞서 내 들은즉, ‘유(儒)’란 것은 ‘유(諛, 알랑거릴 유, 아첨하고 비위맞춤)’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는 온 천하의 모든 나쁜 이름을 모아서 망녕되이 내게 덧붙이더니, 이제 다급해지자 낯간지럽게 아첨하는 것을 그 뉘라서 곧이 듣겠느냐. 대개 천하의 이치야말로 하나인만큼 범이 진정 몹쓸진대 사람의 성품도 역시 몹쓸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착할진대 범의 성품도 역시 착할지니, 너희들의 천만 가지의 말이 모두 오상(五常)을 떠나지 않으며 경계나 권면이 언제나 사강(四綱)에 있긴 하나, 저 도회지나 큰 고을에 코 베이고 발 잘리고 얼굴에 먹바늘을 뜨고 다니는 것들은 모두 오륜(五倫)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사람이란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줄이며 먹바늘이며 도끼며 톱 따위를 공급하기에 겨를이 없었지만 그 나쁜 짓들은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범의 집에는 본래 이러한 악독한 형벌이 없으니, 이로써 본다면 범의 성품이 사람보다 어질지 아니하냐. 그리고 범은 나무와 푸새를 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으며, 강술 같은 좋지 못한 것을 즐기지 않고, 새끼나 기르는 것 같은 자잘구레한 것도 차마 먹지 않는다. 그리고는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을 사냥하고, 들에 나가면 마소를 사냥하되, 아직 구복(口腹)의 누(累)를 입거나 음식의 송사를 일으키거나 한 일은 없으니, 범의 도(道)야말로 어찌 광명 정대하지 아니하냐?

범이 노루나 사슴을 먹으면 너희들 사람은 범을 미워하지 않다가도, 범이 만일 마소를 먹는다면 사람들은 원수라고 떠들어대니, 이것은 아마 노루와 사슴은 사람에게 은혜로움이 없지만, 저 마소는 너희들에게 공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들은 저 마소의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도, 따르고 충성하는 생각도 다 저버리고 다만 날마다 푸줏간이 미어지도록 이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그 뿔과 갈기까지 남기지 않고도 다시 우리들의 노루와 사슴을 토색질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서 먹을 것이 없고 들에서도 끼니를 굶게 하니, 하늘로 하여금 이를 공평하게 처리하게 한다면 너희를 먹어야 하겠는가? 놓아 주어야 되겠는가?

대개 제것 아닌 것을 취함을 도(盜)라 하고, 남을 못살게 굴고 그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적(賊)이라 하나니, 너희들이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며 눈을 부릅뜨고, 함부로 남의 것을 착취하고 훔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심지어는 돈을 형이라 부르고,장수되기 위해서 아내를 죽이는 일까지도 있은즉, 이러고도 인륜의 도리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뿐만 아니라 메뚜기에게 그 밥을 빼앗고 누에한테서 옷을 빼앗으며, 벌을 제압하여 꿀을 약탈하고, 심한 자는 개미 알을 젓담아서 그 조상께 제사하니 그 잔인하고도 박덕함이 너희들보다 더할 자 있겠는가. 너희들은 이(理)를 말하며 성(性)을 논하면서 툭하면 하늘을 일컬으나, 하늘이 명(命)한 바로써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 다 한가지 동물이요,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인(仁)으로써 논한다면 범과 메뚜기ㆍ누에ㆍ벌ㆍ개미와 사람이 모두 함께 길러져서 서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요, 또 그 선악으로써 따진다면 뻔뻔스레 벌과 개미의 집을 노략질하고 긁어 가는 놈이야말로 천하의 큰 도(盜)가 아니며, 함부로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빼앗고 훔쳐 가는 놈이야말로 인의(仁義)의 큰 적(賊)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범은 아직 표범을 먹지 않음은 실로 차마 제 겨레를 해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범이 노루나 사슴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먹는 이만큼 많지 못할 것이며, 범이 마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마소를 먹는 이만큼 많지 못할 것이며, 범이 사람을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저희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이만큼 많지 못할 것이다. 지난해 관중(關中 중국의 섬서성(陝西省) 지방)이 크게 가물었을 때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이 몇만 명이요, 그 앞서 산동(山東)에 큰물이 났을 적에도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이 역시 몇만 명 있었지 않았나? 

그러나 서로 잡아먹음이 많기야 어찌 저 춘추 전국 시대만 하였으랴. 춘추 그 때엔 명색이나마 정의를 위해서 싸운다는 난리가 열일곱 번이요, 원수를 갚는다고 일으킨 싸움이 서른 번에 그들의 피는 천리를 물들였고 죽어 자빠진 시체는 백만이나 되었다. 그러나 범의 집에선 물이나 가뭄의 걱정을 모르므로 하늘을 원망할 것도 없고, 원수와 은혜를 모두 잊고 지내므로 다른 물건에게 미움을 입지 않고, 천명을 알고 그에 순종하므로 무당이나 의원의 간교함에 혹하지 않고, 타고난 바탕 그대로 지녀서 천명을 다하므로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아니하니, 이것이 곧 범이 착하고도 성스러운 것이다. 

그뿐일까? 그 한 곳의 아롱진 것을 엿보더라도 족히 그 문(文)을 온 천하에 보일 수 있겠고, 척촌의 병장기(兵仗器) 하나 지니지 않고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만을 쓰는 것은 이로써 무(武)를 천하에 빛내는 것이었다. 범과 원숭이를 그릇에 그린 것은 효(孝)를 천하에 넓히는 것이었으며, 하루에 한번 사냥하여 까마귀ㆍ솔개ㆍ참개구리ㆍ말개미 따위와 함께 그 대궁[餕 먹다 남은 음식]을 나눠 먹으니, 그 인(仁)이야말로 이루 다 쓸 수 없겠고, 고자질하는 자는 먹지 않으며, 병폐한 자도 먹지 않고, 상제된 자도 먹지 않으니,그 의(義)야말로 이루 쓸 수 없지 않겠느냐? 

그런데 너희들이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저 틀과 함정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저 새 그물과 작은 노루 그물과 물고기 그물과 큰 물고기 그물과 수레 그물과 삼태 그물 따위들을 만들었으니, 이는 애당초 그물을 뜬 자야말로 뚜렷이 천하에 화근을 퍼뜨린 놈일 것이다. 게다가 큰 바늘이니, 쥘 창이니, 날 없는 창이니, 도끼니, 세모난 창이니, 한 길 여덟 자 창이니, 뾰족 창이니, 작은 칼이니, 긴 창이니 하는 것들이 생기고, 또 화포(火礮)란 것이 있어서 터뜨린다면 소리가 화산(華山)을 무너뜨릴 듯 그 불 기운은 음양을 누설하여 그 무서움이 우레보다 더하거늘, 이러고도 그 못된 꾀를 마음껏 부리지 못하여서 이제는 보드라운 털을 빨아서 아교를 녹여 붙여 날을 만들되, 끝은 대추씨처럼 뾰족하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게 하여, 오징어 거품에다 담그었다가 세로 가로로 멋대로 치고 찌르되, 그 굽음은 세모창 같고, 날카로움은 작은 칼 같고, 열쌤은 긴 칼 같고, 갈라짐은 가지창 같고, 곧음은 살 같고, 팽팽하기는 활 같아서, 이 병장기가 한 번 번뜩이면 모든 귀신들이 밤중에 곡(哭)할 지경이라니, 그 서로 잡아먹기로도 가혹함이 뉘라서 너희들보다 더할 자 있겠느냐.” 한다. 

북곽선생이 자리를 떠나 한참 엎드렸다가 일어나 엉거주춤하더니, 두 번 절하고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전(傳)에 이르기를 비록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목욕재계를 한다면 상제(上帝)라도 섬길 수 있다 하였사오니, 이 하토(下土)에 살고 있는 천신(賤臣)이 감히 하풍(下風)에 섭니다.” 하고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듣되, 오래도록 아무런 분부가 없으므로 실로 황송키도 하고 적이 두렵기도 해서, 손을 맞잡고 머리를 조아리며 쳐다본즉 동녘이 밝았는데, 범은 벌써 어디론지 가버리고 말았다. 

마침 아침에 밭갈러 온 농부가, “선생님, 무슨 일로 이 꼭두새벽에 벌판에다 대고 절은 웬 절이시옵니까.” 하고 묻는다. 북곽선생은, “내 일찍이 들으니, 

하늘이 높다 하되謂天蓋高  / 머리 어찌 안 굽히며不敢不跼  / 땅이 비록 두텁단들  謂地蓋厚 / 얕게 디디지 않을쏘냐 不敢不蹐 하였네그려.” 하고는 말 끝을 흐려 버렸다.

-박지원, '호질(虎叱)', 『열하일기(熱河日記)』 관내정사(關內程史)-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가원 (역) ┃ 1968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