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도(道)란 길을 가는 것과 같다 / 박지원

무릇 도(道)란 길과 같으니, 청컨대 길을 들어 비유해 보겠다. 동서남북 각처로 가는 나그네는 반드시 먼저 목적지까지 노정이 몇 리나 되고, 필요한 양식이 얼마나 되며, 거쳐가는 정자ㆍ나루ㆍ역참ㆍ봉후(烽堠, 봉화가 있는 보루, 즉 주요 거점)의 거리와 차례를 자세히 물어 눈으로 보듯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다리로 실지(實地, 실제하는 땅)를 밟고 평소의 발걸음으로 평탄한 길을 가는 법이다. 먼저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바르지 못한 샛길로 달려가거나 엉뚱한 갈림길에서 방황하게 되지 않으며, 또 지름길로 가다가 가시덤불을 만날 위험이나 중도에 포기해 버릴 걱정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지(知,)와 행(行, 실천)이 겸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행하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헤엄쳐서 물속의 달을 건지거나 북을 치면서 자식을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끝내는 완적(阮籍)처럼 통곡하고 양주(楊朱)처럼 울지 않을 자*가 드물 것이다.

비유하면 서울 방내(坊內)의 자제들이 힘써 농사짓는 것이 귀하다는 말만 듣고서, 역서(曆書)*가 반포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한겨울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얼굴에 땀이 나도록 한다면, 행(行)은 비록 힘썼다고 하겠지만 지(知)에 있어서는 어떻다 하겠는가? (이하생략)

※[역자주]
1. 완적(阮籍)처럼, 양주(楊朱)처럼 : 중국 진(晉) 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은 때때로 마음껏 혼자 수레를 타고 달리다가 길이 끊어진 곳에 이르면 문득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또 전국 시대 때 양주(楊朱)가, 이웃 사람이 잃어버린 양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으므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사람은 갈림길이 갈수록 더욱 갈라져서 찾을 수 없었다고 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양주는 침통해져서 한참 동안 말문을 열지 않고 며칠간 웃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길을 잃고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2. 역서(曆書) : 원문은 ‘不待人時之敬授’인데, 《서경》 요전(堯典)에 요 임금이 천문역법(天文曆法)을 맡은 관원들에게, “해와 달과 별들을 관측하고 기록하여 인민들에게 절기(節氣)를 삼가 가르쳐 주라.〔敬授人時〕”고 명하였다고 한다. 예전에 농사를 지을 때에는 농사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24절기를 표시한 역서(曆書)를 반드시 살펴보았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 발문', 연암집 제3권 /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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