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분고지(焚稿識): 글쓴 원고를 태우다

후세의 군자는 진실로 저술에 능하지 못하다. 비록 능하다 하더라도 무엇을 저술할 것인가. 말할 만한 것은 옛사람이 다 말하였고 그 말하지 않은 것은 감히 말하지 못하는 법이니 저술을 일삼을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선유(先儒)의 술작(述作, 글을 지어 책을 만듦)을 보건대, 세교(世敎, 세상의 가르침)를 부축할 경우에 글을 썼고 뭇사람의 미혹을 분별할 때 썼으며, 성인의 뜻을 발휘하거나 사관의 궐문(闕文, 문장 중에서 빠진 글자나 글귀)을 보충할 경우에 글을 써서 이 몇 가지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았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지은 저술들이 또한 행해져서 학문이 한 시대에 뛰어나고 재주가 뭇사람의 지혜를 겸하지 않음이 없지만, 필생동안 노력하여 천 마디를 삭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