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분고지(焚稿識): 글쓴 원고를 태우다
후세의 군자는 진실로 저술에 능하지 못하다. 비록 능하다 하더라도 무엇을 저술할 것인가. 말할 만한 것은 옛사람이 다 말하였고 그 말하지 않은 것은 감히 말하지 못하는 법이니 저술을 일삼을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선유(先儒)의 술작(述作, 글을 지어 책을 만듦)을 보건대, 세교(世敎, 세상의 가르침)를 부축할 경우에 글을 썼고 뭇사람의 미혹을 분별할 때 썼으며, 성인의 뜻을 발휘하거나 사관의 궐문(闕文, 문장 중에서 빠진 글자나 글귀)을 보충할 경우에 글을 써서 이 몇 가지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았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지은 저술들이 또한 행해져서 학문이 한 시대에 뛰어나고 재주가 뭇사람의 지혜를 겸하지 않음이 없지만, 필생동안 노력하여 천 마디를 삭제하고 하나만을 보존한 자가 오히려 천하에 가득하다. 정순하고 잡박함이 때때로 같지 않지만 그 세속을 바로잡고 의심을 풀어, 경전을 돕고 사책을 보완하는 역할에 이르러서는 분명하여 빠트림이 없었다.
세 치의 붓을 잡고 수천 년 뒤에 저술에 종사한다면 군더더기를 면하기 어렵다. 게다가 천하의 일이란 날마다 더욱 많아지고 교위(巧僞, 교묘하게 속임)가 날마다 더욱 늘어나며, 견문이 날마다 더욱 번다해지니, 흩어지고 집중하지 못한 생각으로 고인(古人, 옛사람)의 전치(專治, 오로지 한 분야만 힘씀)한 공을 아우르고자 한다면 재주가 고인의 열배, 백 배가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육경(六經)을 쓸어버리고 날마다 그 학설을 새롭게 하여, 괴이하고 자잘한 한 곡조의 치우친 지혜를 일으켜 천하의 이목을 놀라게 하는데, 그 귀결점을 살펴보면 성인의 뜻에 이반되지 않은 것이 열에 하나요, 배격하고 파괴하여 성인의 도를 잃은 것은 열에 아홉이니 저술의 화가 참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다.
아, 선비의 저서는 첫째로 후세를 선하게 하고 둘째로 불후((不朽,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또 없어지지 않음)하게 되는 계책을 잃지 않는 것인데, 만약 다시 전인(前人)의 조박(糟粕,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 즉 전혀 새로움이 없음을 의미)*만을 주워 모은다면 이조(梨棗, 배와 대추, 즉 책이나 그림 따위를 인쇄하여 세상에 내보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글을 새기는 판목으로는 배나무와 대추나무가 제일 좋은 데서 유래한다.)를 해치고*, 책벌레만 배불리는 것이니 누구를 위하여 저술하는 것인가? 또 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의 일용(日用)에 보탬이 되기 때문인데, 하필 나의 손에 나온 뒤에야 마음에 흡족하겠는가?
지금 시서육예(詩書六藝)와 백가(百家)의 문장에 결함이 없으니, 만약 합당한 사람만 얻는다면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를 이루 다 쓸 수 없게 될 것인데, 후인이 무엇을 보탤 것인가?
저 곡학(曲學)하는 선비와 소유(小儒, 자기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학문하는, 덕이 낮은 학자)는 천하의 공기(公器)를 우롱하여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루고자 하니, 이것은 이른바 반딧불과 횃불을 주워 모아 태양의 밝은 빛을 보탠다는 것으로 다만 자신의 도량을 알지 못함을 나타낼 뿐이다.
옛날 안연(顔淵)은 묵묵히 누항(陋巷, 좁고 지저분하며 누추한 마을)에 거처하며 한 편의 글도 없었으나 성인이 허여(인정하고 칭찬함)하여 군현(羣賢, 현인이라 칭함 받는 여러 사람들의 무리)의 으뜸이 되었고, 후인들도 또한 저술이 없음을 병통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문장으로 전해지는 경우는 사람됨으로 전해지는 것만 못하니, 문장으로 사람이 전해지는 경우는 때로는 사라지지만, 사람됨으로 사람이 전해지는 경우는 오래되어도 더욱 빛난다. 학자가 다만 유경(遺經, 성인들의 가르침을 기록한 서적)을 안고서 삼가 지키고 독실하게 행한다면 비록 죽은 뒤에 편지 한쪽이나 몇 자의 글이 없더라도 순유(醇儒)가 되는 데는 방해될 것이 없다.
나는 예전 학문을 함에 방법을 알지 못하여 망녕되이 기술함이 있었는데, 얼마 후 안으로 돌아보고 더욱 부족함을 느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에 기술한 것들을 가져다가 불길에 던지고, 필묵을 주머니에 담아서 다시 쓰지 않을 것을 보이고 말하기를 “모영(毛潁, 붓)과 진현(陳玄, 먹)은 실로 이 말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였다.
※[역자 주]
1.전인(前人)의 조박(糟粕) : 《莊子 天道》에 “제나라 환공(齊桓公)이 당상에서 글을 읽고 있을 때, 당하에서 마침 수레바퀴를 깎던 목수 윤편(輪扁)이 환공에게 묻기를 ‘공(公)께서 읽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라고 하자, 환공이 이르기를, ‘성인(聖人)의 말씀이다.’라고 하였다. 윤편이 말하기를 ‘성인이 계십니까?’라고 하니, 환공이 이르기를, ‘이미 죽었다.’라고 하자, 윤편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공께서 읽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 敢問公之所讀者何言邪? 公曰 : 聖人之言也. 曰 : 聖人在乎? 公曰 : 已死矣. 曰 :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라고 한 고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2. 이조(梨棗)를 해치고 : 이조는 배나무와 대추나무로 글을 출판할 때 판각에 쓰인다. 하찮은 글을 판각하여 편찬함은 좋은 나무만 해치게 된다는 뜻이다.
-한장석(韓章錫, 1832~1894), '분고지(焚稿識)',『미산집(眉山集) 제10권/잡저(雜著)』-
▲원글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백승철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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