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물감을 발라야만 색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완정(玩亭, 이서구李書九)씨의 시론은 너무도 특이하다. 시(詩)의 성율(聲律)은 말하지 않고 시의 색채(色彩)만을 말한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시(詩)의 글자는 대나무와 부들에 비유할 수 있고, 시의 글월은 엮은 발과 자리에 비유할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글자는 그저 새까맣게 검을 뿐이고, 대나무는 말라서 누렇고, 부들은 부옇게 흴 뿐이다. 그런데 쪼갠 대나무를 엮어 발을 만들고 부들은 엮어 자리를 만들되, 줄을 맞추고 거듭 겹쳐서 짜면, 물결이 출렁이듯 무늬가 생겨나서 잔잔하기도 찬란하기도 하다. 그래서 원래의 누런 빛이나 흰빛과는 다른 새로운 빛깔을 만들어낸다. 그렇듯이 글자를 엮어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배열하여 글월을 이루었을 때에는 마른 대나무와 죽은 부들이 만들어내는 조화에 그치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