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의열녀전서(三韓義烈女傳序):글은 자기 뜻을 드러내는 것
글을 짓는 체가 셋이 있으니, 첫째는 간결한 것이요, 둘째는 진실한 것이요, 셋째는 바른 것이다. 하늘을 말할 때 하늘이라고만 하고, 땅을 말할 때 땅이라고만 하는 것을 간결하다 하고, 나는 것은 물에 잠길 수 없고 검은 것은 희게 될 수 없는 이것을 진실이라 하고,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을 바른 것이라 한다.
그러나 미묘한 마음이 글로써 드러나는 것이니, 글이라는 것은 자기 뜻을 드러내어 남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결하게 말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말을 번거롭게 하여 창달하고, 진실되게 말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사물을 빌려 비유하며, 바르게 말을 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뜻을 뒤집어서 깨닫게 하니, 번거롭게 하여 창달하는 것은 속됨을 싫어하지 않으며, 빌려다 비유하는 것은 기이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뒤집어 깨닫게 하는 것은 격한 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으니, 이 세 가지가 아니면 쓰임이 통하지 않아 본체(문장의 요지)가 확립될 수 없는 것이다.
요(堯) 임금이 말하기를, “넘실거리는 홍수는 큰 해가 되어, 산을 안고 언덕을 넘어 넓고 넓어서 하늘에 닿을 듯하다.” 하였으니, ‘아 저 홍수’라는 한마디 말이면 충분할 것을 넘실거린다고 하고 또 크다느니 넓다느니 하였으니, 말이 넘쳐나는데도 다시 손과 눈으로 돕고 있으니, 또한 속되지 않은가?(옮긴이 註: 이는 '저속하다'는 뜻이 아니라 평범하고 일반적이어서 누구라도 알 수 있게 쉽게 풀어 썼다는 의미의 '속됨'이다)
《시경》에, "직녀는 종일 일곱 필을 짠다지만 / 雖則七襄 포백(布帛)의 문채를 이루지는 못하누나 / 不成報章 저 견우를 보면 / 睆彼牽牛 수레를 멍에 메워 끌지는 못하누나 / 不以服箱" 하였으니, 별이 베를 짜거나 수레를 몰지 못하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아는 것이니, 이 어찌 기이한 말이 아닌가?(옮긴이 註: 이는 '문장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재여(宰予)가 상기(喪期, 상복을 입는 기간)를 단축하려 하자 공자가, “네 마음이 편안하면 그렇게 하여라.” 하였다. 재여가 이 말을 옳다고 그대로 믿어 그 상기를 단축하였다면 어찌 되겠는가? 이것 역시 격동시킨 것이 아니겠는가.(옮긴이 註: 이는 스스로 시비를 깨닫도록 자율적인 동기부여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삼대(三代 하(夏)ㆍ은(殷)ㆍ주(周)) 이전은 순박함을 잃지 않았으며, 성인은 중화(中和)의 극치이므로 말을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 속된 것도 창달(자유롭게 표현하여 전달함)하는 데 적당하여야 비루한 데로 흐르지 않으며, 신기한 것은 비유가 잘 맞아 허탄한 데에 빠지지 않으며, 격동시키는 것은 깨닫게 되기를 기약하되 어그러지는 데 떨어지지 않아야 된다. 이것을 소리에 비유하면 크게는 뇌성벽력으로부터 작게는 모기나 파리 소리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들어 헤아리면 어찌 천 가지 만 가지에 그치겠는가? 선대 왕들이 음악을 만들 때 음은 다섯에 지나지 않았고, 율(律)은 열둘에 지나지 않은 것은, 절도를 취하여 알맞게 한 것이다.
신성한 임금들이 모두 가 버리고 도는 어둡고 정치는 피폐하여 천하의 변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말에 능한 선비로서 장주(莊周), 굴원(屈原),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의 무리들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초야에 묻혀 살며 종신토록 곤액을 당하여, 비통한 근심, 감개한 울분이 가슴에 맺혀 마음을 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글을 읽으면 왕왕 긴 노래와 같이 통곡하는 듯하고 비웃으며 욕하는 것 같아서, 진실로 그 뜻을 표현하자면 비루하고 허탄하고 어긋나는 말들이 입에서 튀어나와 절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준 높은 것은 경전에 버금가기도 하나 총담, 패설, 배우의 잡희(雜戱)같이 낮은 것들도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슬프다,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인가? 삼물(三物, 육덕(六德)ㆍ육행(六行)ㆍ육예(六藝)이 위로 행해지지 않고 사과(四科, 덕행(德行)ㆍ언어(言語)ㆍ정사(政事)ㆍ문학(文學)의 교화(교육)가 아래에 들리지 않아, 방탕하고 방자함을 금할 수 없으니, 마치 강하(江河)가 터져 사방으로 넘쳐 흐르는 것은 신성한 우(禹)가 다시 나오더라도 단지 그 성질에 순응하여 내려가도록 할 뿐이지, 끝내 물길을 돌려 이것을 막아 동쪽으로 물길을 이끌고 북쪽으로 나누어 옛길을 따라 가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융통성이 없고 마음이 바르지 않은 선비들이 재잘거리면서 법도의 잣대만을 가지고 그 결과를 의논하려 하니, 정말 분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종친 죽계자(竹溪子)는 천하의 기이한 선비요, 그가 지은 《삼한의열녀전》은 천하의 기이한 글이다. 죽계자는 약관(弱冠)에 문장이 이루어졌으나 늙어서 머리가 세도록까지 때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가 이 글을 쓴 것은 곧 장주ㆍ굴원ㆍ태사공의 무리들과 더불어 함께 달려서 앞을 다투려는 것이고, 한유(韓愈) 이하는 거론하지도 않았으니, 그 뜻이 비장하고 애석하다.
나의 학문은 죽계자의 덕을 돕기에 부족하고 나의 힘은 죽계자의 재주를 천거하기에는 부족하니, 내가 죽계자에게 어떻게 하겠는가? 오직 세상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고금 문장의 본체와 작용의 변화는 살피지 않고, 비루하고 허탄하고 어그러졌다고 문제 삼는다면, 내가 비록 글은 못하나 능히 죽계자를 위하여 변론할 수 있을 것이다.
-김매순(金邁淳,1776~1840) ,'한 대산 김매순 문(韓金臺山文)', 『여한십가문초 제9권』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한조 (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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